실제 자금의 흐름은 어떨까. <일요신문>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부터 2015년까지 ‘고액 정치후원금 명단(총 2만 2835건)’을 받아 분석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연간 300만 원 초과 기부자 명단을 모든 국민에게 공개하고 있다. 명단이 의원별로 분류돼 있어 의원을 정해 후원자와 액수를 찾아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자료가 워낙 방대해 이번 분석 대상은 정권을 잡아 ‘힘’이 있을 법한 여당 정치인으로 한정했다. 이 가운데도 지면의 제약과 여론의 평가, 시의성, 국회의원 경력 등을 반영해 22인을 추렸다(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제외). 이들 22인에게 정치후원금을 건넨 기업인 또는 사회 고위층 가운데 후원 횟수나 저명도가 높은 인물을 위주로 소개한다.
정치후원금이 합법적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후원자들의 상황과 맞물려 의심어린 시선도 존재한다.
김광수 나이스그룹 회장과 최 아무개 씨는 2008~2014년까지 매년 500만 원씩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을 후원했다. 이들은 같은 당 이철우 의원에게 2008~2010년 1500만 원을 후원했고, 현경병 의원에게는 1000만 원을 냈다. 당시 송영길 민주당 의원과 송영선 친박연대 의원은 나이스그룹 측으로부터 각각 500만 원을 받았다.
지난 4일 나이스그룹 측은 <일요신문>에 “최경환 의원 후원 사실을 몰랐다”고 밝혔다. 최경환 의원의 전직 보좌관은 “나이스그룹이 (최경환 의원 지역구인) 청도와 자매결연을 맺어 가까워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최 의원의 현직 보좌관은 “전직 보좌관이 그렇게 얘기했으면 맞을 것이다”고 밝혔다.
앞서 최 의원은 ‘대학 후배’인 안홍철 전 한국투자공사 사장으로부터 정치후원금을 받았다. 한국투자공사 감사로 재직 중이던 안 전 사장은 2008년 최 의원에게 380만 원을 후원했고, 2009년에는 350만 원, 2011년에는 360만 원을 냈다.
안 전 사장은 2013년에는 액수를 높여 500만 원씩 최 의원과 유정복 의원(현 인천시장), 서병수 의원(현 부산시장)을 후원했다. 공교롭게도 2014년 안 전 사장은 한국투자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최 의원의 전직 보좌관은 “인사청문회 당시 다 끝난 얘기”라며 “(최 의원이) 안 전 사장과 하숙도 같이 했을 만큼 가까운 사이라 후원한 것으로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김홍국 하림 회장은 2013년과 2014년 김재원 의원에게 총 900만 원을 후원했다. 액수는 크지 않지만 후원금을 건넨 시점이 논란의 소지가 있다. 2012년 10월 김재원 의원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하림 특혜 의혹’을 연이어 제기했다. 국정감사 이후 논란은 잦아들었다.
국감 다음해인 2013년 8월 김 회장은 김 의원에게 400만 원을 후원했다. 김 회장은 같은 당 김명연 의원과 정미경 의원에게도 각각 400만 원, 450만 원을 후원했다. 김 회장은 다음해 김 의원에게 또 다시 500만 원을 냈고, 2015년에는 후원자를 바꿔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 계좌에 입금했다. 하림 측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김재원 의원실 측도 “그런 사실이 있는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신원 파악이 되지않은 후원자도 많았다.
대선조선은 채권단 공동관리를 앞둔 2011년과 2012년에도 5명의 의원에게 3500만 원을 냈다. 현기환 당시 의원(현 청와대 정무수석)이 1000만 원, 김형오 국회의장이 1000만 원을 받았고, 서병수 의원은 500만 원, 유재중 의원은 500만 원을 받았다. 500만 원은 조경태 의원의 몫이었다.
정몽석 현대종합금속 회장은 대선이 지난 다음해에 후원을 몰아서 하는 경향을 보였다. 정 회장은 2008년 이상득 의원, 한선교 의원, 권영세 의원, 이병석 의원에게 각각 500만 원씩 후원했다. 이 가운데 이명박 정부 임기 동안 후원금을 한 번 더 받은 이는 이병석 의원이 유일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정 회장은 서병수 의원, 유일호 의원(현 경제부총리), 나성린 의원에게 각각 500만 원씩 후원했다. 현재까지 이들 중 정 회장으로부터 한 번 더 후원을 받은 이는 유일호 의원이 유일하다.
최근 1조 원대 갑부로 등극한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은 두 정치인에게만 후원했다. 2008년 유정복 의원에게 500만 원을 후원한 신 회장은 2009년부터 유정복 의원과 조원진 의원에게 각각 500만 원씩 후원하고 있다. 단 유 의원은 인천시장이 되면서 후원이 중단된 상태다. 조 의원 측은 “지역구는 대구지만 서울에서 자주 활동하니까 두루두루 아는 사람이 많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한양정밀 측은 “답변해 줄 사람이 없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고액 후원자 가운데는 사회지도층에 속하면서도 사법처리를 받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례가 적지 않았다. 박순석 신안그룹 회장은 2015년 서청원 의원에게 500만 원을 후원했다. 같은 해 그는 억대 원정도박 등 혐의로 구속됐다. 또 최근 절도죄로 실형이 확정된 이경률 서울의과학연구소 이사장은 서청원 의원에게 2014년 500만 원을 후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유업 납품비리 사건에 연루된 H 사 대표 최 아무개 씨는 2012년과 2014년 각각 권성동 의원에게 500만 원씩 후원했다. 권성동 측은 “H 사(후원)는 처음 들었다”고 밝혔다.
한 정치인의 출판기념회에 마련된 후원금 모금함.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이종현 기자
이번 분석 대상 22명 가운데 고액 후원을 가장 많이 받은 이는 윤상현 의원이다. 2008년부터 내리 후원금 한도를 채운 최재원 서울아산병원 건강증진센터 소장을 비롯해 허용수 GS에너지 부사장 등 후원자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윤상현 의원은 김신한 대성산업가스 대표, 강정석 동아쏘시오홀딩스 대표로부터도 후원을 받았다.
대기업 오너가 직접 친박계 의원을 후원한 사례는 찾기 어려웠다. 범롯데가인 신준호 푸르밀 대표가 윤상현 의원을 한 차례 후원하고,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이 2009년과 2012년 권영세 의원과 윤상현 의원을 후원한 게 전부다. 2008년에는 박정원 신임 두산그룹 회장이 한선교 의원을 후원했지만 2010년 박 회장은 아버지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과 함께 류지영 의원을 후원했다.
그나마 있는 후원도 단발성에 그치는 일이 많았다.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은 2013년 유일호 의원과 김회선 의원에게 각각 500만 원씩 냈지만 이후로는 공식적인 후원 기록이 없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혼소송 중인 임우재 삼성전기 고문은 2014년 6월 이우현 의원을 한 차례 후원(500만 원)했을 뿐 다른 후원 내역이 확인되지 않았다.
‘몰아주기 후원’도 눈에 띄었다. 2011~2013년 신풍제지 임원들은 원유철 의원에게 총 3500만 원을 후원했다. 이들은 해당 기간을 제외하고 어떤 의원도 후원하지 않았다. 원유철 의원의 보좌관은 “신풍제지가 지역구 사업체는 맞는데, 정확한 사정은 확인하고 연락 주겠다”고 했지만 답이 없었다.
방송 출연으로 유명세를 치른 권영호 인터불고 회장은 2012년에만 최경환 의원(360만 원), 주호영 의원(360만 원), 서상기 의원(360만 원), 이완영 의원(360만 원), 김재윤 민주당 의원(460만 원)을 후원했다. 당시 인터불고의 경영사정은 좋지 않았다.
후원자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직군은 변호사와 교수였다. 이들 중 상당수는 후원 전후 대기업 사외이사나 주요 학회의 임원을 맡았다. 장 아무개 씨는 2014년 홍문종 의원을 후원하고 이듬해 한 대학교 총장이 됐다. 오비이락일 수 있지만 유권자들 눈에도 그렇게 보일지 의문이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