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놓고 돈 먹기에 ‘벤치워머’ 전락
올해 초 메이저리그 독점 중계권을 4년간 4천8백만달러(약 4백80억원)란 거액에 계약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IB스포츠는 지난 4월 아시아축구연맹(AFC)으로부터 2006~2012년까지 AFC가 주관하는 모든 경기의 국내 중계권을 7년 단위로 계약, 독점중계권마저 확보했다. 이번 계약으로 IB스포츠는 AFC가 주관하는 2010년 월드컵 아시아예선, 2012년 런던올림픽 아시아 예선을 비롯해 아시안컵, AFC 챔피언스리그 등을 독점중계할 수 있게 됐다. 또 자회사인 케이블 ‘Xports’ 채널을 통한 방영권 외에 지상파 3사, 케이블과 위성, DMB, IPTV, 전광판 등 모든 플랫폼에 대한 재방송권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그동안 풀단을 구성하여 중계권을 공동 확보, 중계해 왔던 지상파 3사는 국민적 관심이 높은 월드컵 예선 등의 경기를 중계하기 위해선 IB스포츠로부터 중계권을 다시 사들여야 하는 입장에 처했다. 지난 4년간 9백80만달러(약 1백억원)에 중계권을 사들인 지상파 3사는 더 큰 금액을 지불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IB스포츠측에서 중계권 재판매 금액으로 3천만달러(약 3백억원)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급한 입장에 처한 지상파 3사는 이례적으로 스포츠국장단 긴급회의를 열고 이에 대한 공동 대처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들은 IB스포츠의 중계권 독점은 국민의 ‘볼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보편적 시청권(Public View Right)’ 관련입법을 추진하는 한편 거액의 독점 중계권 계약은 심각한 외화 낭비의 우려가 있다며 다각도로 IB스포츠측을 압박하고 있는 상태다.
KBS 스포츠중계제작팀 이동현 팀장은 “영국과 독일 등 유럽국가에서는 시청자들의 볼 권리를 위해 월드컵 같은 국가적 관심 경기는 지상파 방송에서 중계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MBC 오창식 스포츠국장은 “국내 방송사의 과열경쟁으로 외화를 낭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방송 3사가 풀단을 구성해 중계권을 같이 사 오고 있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에 IB스포츠측은 “기본적으로 모든 가용한 매체에 중계권을 개방하고자 한다”며, “AFC와의 계약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액수를 거론하기는 힘들지만 일부에서 알려진 3천만달러 수준은 아니다. 지난 2002년 지상파 방송 3사가 공동으로 계약한 4년간 9백80만달러의 조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사태가 커지자 방송위원회측에서도 다각적 검토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볼 때 지상파 3사가 말하는 것처럼 IB스포츠측에 법적 제재를 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방송위의 한 관계자는 “외국사례를 정밀 분석하고 있다”면서도 “법적인 절차가 마련되더라도 현재까지의 계약에 대해 소급적용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이번 사태가 지상파 방송들의 안이한 대처로 벌어진 것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런 갈등이 불거질 것이 뻔히 보이는 데도 왜 거액을 투자해 중계권을 확보하는 것일까. 이는 투자한 금액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4월 개국한 엑스포츠(Xports)채널의 경우 메이저리그 중계에 따른 광고 수입이 개국 4개월 만에 케이블TV 1위로 올라선 것으로 알려졌다. 광고 매출이 4월엔 5천7백만원에 불과했지만 5월엔 3억5천만원, 6월엔 12억원, 7월엔 13억원으로 신규 업체로는 이례적인 폭발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수치라면 광고 수입만으로도 투자금액(연간 1백20억원)을 간단히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엑스포츠의 김진규 광고국 팀장은 “올해는 적자를 기록할 것 같지만 내년부터는 광고 수입만으로도 투자금액 회수는 가능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더욱이 월드컵 아시아예선과 같은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경기의 경우 지상파 3사가 메이저리그 경기처럼 중계권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중계권 재판매 수익까지 고려하면 IB스포츠의 수익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기존 지상파 3사와 AFC 계약과는 달리 IB스포츠측은 모든 미디어에 대한 판매권을 확보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수입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광판을 통한 경기방영과 이에 따른 스폰서십을 유치할 수 있는 ‘Public viewing’에 대한 권리를 확보했으며, 현재 가용가능한 모든 미디어뿐 아니라 향후 생기는 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중계권 재판매 권리도 확보했기 때문에 이에 따르는 부대 수입까지 고려하면 투자금액 회수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IB스포츠의 판권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조용노 팀장은 “지상파가 종전에 계약했던 것보다 기간, 내용을 고려할 때 훨씬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했다”며 “중계권 재판매, 해외 마케팅, 다양한 스포십 유치 등 더 많은 수익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하며 “현재 지상파 3사가 주장하는 내용은 재판매 금액을 낮추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이번 일련의 사태로 IB스포츠가 얻게 될 인지도와 스포츠 시장에 미치게 될 영향력은 금액으로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 따라서 현재까지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IB스포츠의 독점 중계권 확보에 따른 거액의 투자는 일단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발빠른 행보로 독점적 권리를 선점한 IB스포츠와 밥그릇(?)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지상파 3사 간의 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들의 밥그릇 싸움이 아닌 국민들에게 질 높은 스포츠 중계를 하기 위한 다각적 노력을 원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볼 권리’ 충족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시각이다.
최혁진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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