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후예>는 단순히 높은 시청률과 송중기, 송혜교를 향한 인기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국내 드라마 제작 방식은 물론 장르와 소재의 한계를 뛰어넘은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한중 동시 방송 드라마라는 의미도 상당하다. 그동안 중국어권 나라에 방송돼 인기를 얻은 한국 드라마는 많았지만 <태양의 후예>는 국내 방송 시간과 차이를 두지 않고 실시간으로 방송하는 첫 번째 작품이다. 게다가 초반부터 모아지는 반응은 뜨겁다. “새로운 이정표로 삼을 만한 드라마의 등장”이라는 평가가 따른다.
송중기, 송혜교의 ‘태후 신드롬’이 연예계를 강타하고 있다. 사진은 드라마 화면 캡처.
#방송 전 회당 25만 달러 수출
지난 2월 24일 방송을 시작한 16부작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촬영도 시작하기 전 중국 동영상 사이트 아이치이(愛奇藝)에 판매됐다. 회당 판매가는 25만 달러로 알려졌다. 우리 돈으로 약 3억 2000만 원에 이른다. 이 같은 선판매에는 주인공 송혜교와 송중기의 파급력과 앞서 <상속자들> <신사의 품격> 등 그동안 여러 한류드라마를 집필해온 김은숙 작가의 이름값이 주효했다.
거액의 중국 자본이 투입돼 시작부터 스케일이 달랐던 <태양의 후예>의 총 제작비는 약 130억 원에 이른다. 드라마가 다루는 이야기의 스케일도 그 못지않다. 우르크라는 가상의 국가에서 벌어진 대지진 한복판에 놓인 군인과 의사가 발휘하는 인류애, 이들이 나누는 사랑을 그렸다. 사실 TV 드라마로는 엄두를 내기 어려운 규모이지만 중국의 투자로 총 제작비 가운데 30~40%를 확보할 수 있었다.
<태양의 후예>가 선택한 한중 동시 방송은 사실 ‘모험’에 가까웠다. 현재 아이치이는 <태양의 후예>가 KBS 2TV에서 방송하고 한 시간 뒤에 곧바로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유료로 제공한다. 일주일이 지나면 무료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아이치이는 유료 사용자를 최대한 끌어들이려고 따로 VIP 회원 서비스까지 마련해 놓았고, 이에 대한 현지 시청자의 반응 역시 폭발적이다. 8일 현재까지 아이치이의 공식 집계는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현지 매체들은 <태양의 후예>가 1회와 2회로 얻은 조회수가 총 4억 건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물론 2년 전 SBS가 방송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국내 방송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중국의 여러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유료 서비스가 아닌 불법 다운로드 형식의 무료 공개였다. 특히 <별에서 온 그대>가 아이치이에서 기록한 누적 조회수는 약 25억 건. 이와 비교한다면 <태양의 후예>가 1, 2회로 기록한 조회수 4억 건은 의미를 더한다.
‘태양의 후예’는 사전제작과 한중 동시 방송으로 한류 드라마의 새 방향을 제시했다.
#시청률 20% 넘어 30% 향해
지금까지 중국에서 한류 열풍을 만든 드라마들은 전부 국내 방송에서부터 인기를 얻은 히트작이었다. 가장 최근 성공한 한류드라마로 꼽히는 <별에서 온 그대>와 <상속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내에서 얻은 높은 시청률이 중국 한류로 직결된다는 ‘공식’으로 본다면 <태양의 후예>는 이미 성공궤도에 올라섰다.
요즘 지상파 방송3사의 밤 10시대 미니시리즈의 시청률은 고작 10%대 주위를 맴돈다. 스타가 출연하고 실력을 인정받은 제작진이 참여하고도 10%를 넘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는 방송 3회 만에 23.4%(닐슨미디어 집계·전국기준)를 기록했다. 4회에서는 시청률이 더 올라 24.1%를 나타냈다. 최근 2년 동안 방송한 지상파 방송3사 미니시리즈의 최고 시청률인 <별에서 온 그대>의 28.1%를 곧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방송 관계자들은 <태양의 후예>의 시청률 30% 돌파 역시 시간문제로 전망하고 있다.
‘태양의 후예’는 중국 동영상 사이트가 1회와 2회로 얻은 조회수가 총 4억 건을 넘어섰다.
#사전제작 성공…드라마 제작 환경 변화 예고
<태양의 후예>는 사전제작 드라마의 첫 번째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16부작 가운데 아직 절반도 방송되지 않았지만 국내외에서 모아지는 뜨거운 반응을 고려할 때 사전제작의 성공이란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동안 시도된 사전제작 드라마는 대부분 트렌드와 동떨어진 이야기로 시청자의 공감을 얻지 못했고, 한편으로는 파급력이 덜한 연기자를 기용하는 등 한계를 노출해왔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중국을 겨냥해 제작 규모를 키웠고, 현지 투자 유치 성공으로 인지도 높은 톱스타 캐스팅에 성공하면서 작품의 완성도까지 높였다. 대지진과 구호 과정을 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컴퓨터 그래픽 작업에도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던 배경 역시 사전제작 덕분이다.
물론 <태양의 후예>가 사전제작으로 완성될 수밖에 없던 또 하나의 이유는 중국 투자 유치와 한중 동시 방송에 있다. 점차 까다로워지는 한국드라마에 대한 중국의 심의를 여유롭게 통과하기 위해서는 미리 작품을 완성해 놓는 방법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이런 방식은 출연 배우는 물론 극본을 써야 하는 작가에게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김은숙 작가는 “쓰는 입장에서 영상으로 촬영한 장면을 확인한다면 배우들의 감정이 빨리 파악되지만 사전제작은 텍스트만으로 배우들의 감정을 짚어내는 작업이라 상당히 어려웠다”고 했다.
쉽지 않은 작업임에도 <태양의 후예>가 마지막까지 완성도를 지켜내고 중국에서 더 큰 폭발력을 보인다면 이런 사전 제작 방식은 국내 드라마 시장에 정착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시간이 쫓겨 밤샘 촬영을 반복하는 ‘생방송 스케줄’과 그에 따른 완성도 저하 등 고질병에 시달려온 국내 드라마 환경이 <태양의 후예>를 기점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기대감 역시 모아지고 있다. 그 바통을 이어받을 드라마들도 준비에 한창이다. 김우빈과 수지가 출연하는 KBS 2TV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 역시 100% 사전제작과 한중 동시 방송을 목표로 막바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