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범행은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됐다. 대표 김 아무개 씨(50)는 지인들과 함께 정식으로 법인 등록하고 부산시 해운대구에 사무실까지 냈다. 명함과 전단지를 만들어 홍보하자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기 시작했다. 홍보는 주로 SNS와 온라인에서 이루어졌다. 1750만 원이라는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에 벤츠를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밴드와 카카오톡 등 SNS에 모여 정보를 공유했다.
벤츠 자동차 공동구매를 빙자해 불법 다단계 영업을 한 일당이 검거됐다. 사진은 사기에 사용된 홍보물들. 사진제공=부산지방경찰청
구매 방식은 전형적인 불법 다단계였다. 회원 가입비 1750만 원을 지불하고 회원이 된 후 본인이 2명을 회원으로 영업해오는 방식이다. 영업해온 2명이 각각 2명을 추가로 영업해 총 7명의 구성이 완료되면 벤츠 승용차를 받을 수 있다. 피의자들은 3단계 영업방식이 끝난 7명을 ‘포지션 박스’라고 불렀고 최초의 회원은 ‘졸업’한다고 표현했다. 졸업한 회원은 벤츠 승용차나 현금 5800만 원을 받는다. 그러나 7명이 각각 1750만 원을 내면 총 금액은 1억 2250만 원으로 5800만 원보다 훨씬 많은 돈이다. 차액은 업체가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확인된 회원은 176명이고 이들로부터 61억 원을 받았다. 회원들은 평범한 회사원부터 시작해 대학생과 유흥업소 종사자까지 다양했다. 이 가운데 59명은 졸업을 완료해 현금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정당한 방법으로 졸업을 한 건 아니었다. 피의자들은 다단계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각 지역에 리더들을 배치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지역은 부산 외에 서울, 대전, 광주, 김해 등 5개 도시다. 리더들한테는 추가 급부를 주거나 박스 구성 완료가 되지 않았음에도 미리 졸업시켜주는 특혜를 제공했다. 몇몇 회원은 가입을 철회해 가입비를 환불받았다. 그러나 일부 회원은 환불 시스템을 교묘히 이용했다. 이들은 차명계좌를 이용해 박스 구성을 완료한 것처럼 졸업하고 현금을 받았다. 이후 차명계좌로 등록된 회원 명의는 환불받아 추가 이익을 챙겼다.
위부터 벤츠 자동차 공동구매 가입자 리스트와 7명으로 구성된 포지션 박스. 김씨 일당은 3단계 영업방식으로 7명의 포지션 박스가 구성되면 최초 회원에게만 돈을 지급했다. 사진제공=부산지방경찰청
그러나 벤츠 승용차를 실제로 받은 회원은 한 명도 없었다. 김 씨 일당은 홍보 당시 벤츠와 공식계약을 했다고 밝혔으나 이는 거짓이었다. 계약을 맺지 않았기에 벤츠 승용차를 다량 공급받을 수 없었고 이들이 자체로 보유한 벤츠 승용차 역시 한 대도 없었다. 경찰에 따르면 회원 대부분은 큰 반발이 없었다. 오히려 한 회원은 현금을 받고도 “불법 다단계로 고소하겠다”며 김 씨를 협박해 추가적인 금액을 요구하기도 했다. 졸업한 회원들에게 준 현금 역시 다른 회원으로부터 받은 현금을 돌려막기 한 것이다.
아직 졸업을 못한 117명의 회원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이들이 가입비로 낸 금액은 27억여 원이다. 그러나 업체가 자본금이 없고 현재 보유하고 있는 현금 역시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 씨는 최근 계좌에 있던 돈을 전액 인출해 현재 계좌 잔고가 0원이다. 또한 3억여 원으로 금을 매입해 자금을 세탁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의 변제여부에 달려있고 이는 형량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며 “그러나 법적으로 돈을 돌려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경찰은 3월 7일 김 씨 등 5명을 사기 및 유사수신 관련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장래에 출자금의 전액 또는 초과하는 금액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고 출자금을 받는 것은 불법이다. 따라서 이들이 벤츠 승용차를 내걸고 가입비를 받은 것 자체가 이미 불법이다. 경찰은 또한 각 지역의 리더 8명에 대해서도 구속 영장을 내렸다. 이들 중 일부는 자진출두해서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공동구매를 이용한 불법다단계가 전국적으로 퍼져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방식의 다단계는 경남 거제시에서 다른 업체가 먼저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 일당은 이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거제경찰서 관계자는 “현재 거제에서 활동 중인 업체에 관한 수사도 많이 진행된 상태이며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박성룡 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팀장은 “이번 사건의 규모는 유사수신 범죄치고 큰 편이 아니다. 과거 조희팔의 경우 4조 원이 넘었다”며 “그러나 유사 범죄의 확산을 막기 위해 빠르게 수사했다. 경찰 입장에서는 1년 후 규모가 커졌을 때 체포하면 더 좋은 그림이 나오겠지만 대국민 홍보가 먼저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경찰이 공동구매를 매개로 한 유사수신 범죄를 수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이번 사건은 다른 다단계 사건보다 빠르게 확산됐다. 자본금이나 사업설계 등이 없고 온라인으로 손쉽게 가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공동구매 열풍도 한몫했다고 박 팀장은 밝혔다. 그는 이어 “이러한 다단계가 전국적으로 퍼져 있을 것”이라며 “전국적인 규모를 정확히 알기는 어려우나 가입이 어렵지 않은 만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