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기재부가 경제지표가 부진함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경제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박 대통령과 유일호 기재부 장관의 악수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기획재정부는 지난 2월 ‘그린북(최근 경제동향)’에서 “소비 등 내수가 양호한 흐름을 지속하고 있고, 생산·투자도 기저효과로 개선되는 모습”이라며 한국 경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가계의 소비지출 증가가 기업의 생산활동 확대로 이어지는 경기 선순환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야기와는 달리, 경제지표를 살펴보면 경제 여건이 악화되고 있음은 명약관화하다.
우선 가계·기업의 심리지표는 내리막을 탄 지 오래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8로 전월 대비 2포인트 떨어졌다. CCSI는 100을 기준값으로, 이보다 높으면 낙관적으로, 낮으면 비관적으로 경기를 판단하고 있다는 뜻이다. CCSI 수치는 지난해 11월 105를 고점으로 하향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CCSI를 구성 항목 중 지금의 경기판단을 보여주는 현재생활형편CSI와 현재경기판단CSI는 각각 90과 65를 기록, 현재 가계의 생활형편이 좋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의 형편도 괜찮아 보이지 않는다. 기업의 경기판단을 보여주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제조업의 경우 63으로 전월대비 2포인트, 비제조업은 64로 전월대비 4포인트 각각 하락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4분기와 비슷한 수준이다. 매출과 생산·신규수주 모두 하락했다.
심리지표는 물론 실물지표로도 기업경기가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알 수 있다. 국내 생산활동의 단기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1월 광공업생산은 전월 대비 1.8% 하락하며 감소세로 돌아섰다. 서비스업생산도 0.9% 떨어졌다. 같은 달 설비투자는 6.0% 감소했고, 건설투자(1.3%)도 부동산경기 위축과 더불어 상승폭을 줄여나가고 있다.
승용차 판매 부진 등의 영향으로 내수도 1.4% 감소했다. 한국 경제의 중심인 수출 역시 글로벌 수요 부진의 영향으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자료를 보면 2월 수출액은 364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2% 급감, 14개월째 미끄럼을 탔다. 수출이 이처럼 오랜 기간 줄어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제지표가 부진함에도 기재부의 반응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경제주체의 심리 위축을 막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정부가 경기 하락을 인정했다간 자칫 시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기론이 위기를 부르듯, 시장에 불확실성이 커지면 실제 경제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할 수 있다. 일종의 낙인효과를 방지하겠다는 계산에서다. 그러나 경기 하강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체감경기와 동떨어진 정부의 발표는 오히려 정책 신뢰를 떨어트릴 수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정부의 긍정론에 동조하는 모양새다. 사진은 한국은행 전경과 이주열 한은 총재(작은 사진).
“우리 경제에 하방리스크가 너무 크다. 투자·소비·수출 모두 안 좋은데, 정부는 민간보다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심리 안정을 주자는 것이겠지만, 저성장 기조는 이어질 것이다. 성장을 끌어올릴 만한 동력도 없다. 모멘텀(상승동력)이랄 것이 없다.”
한 증권사 연구위원이 밝힌 한국 경제에 대한 솔직한 평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수출·고용·소비·산업생산 등 주요 경제지표의 부진으로 경제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고 평가했고, 현대경제연구원도 ‘수출 불황이 내수 불황으로 전염되고 있으며, 방치할 경우 장기간 경기 회복이 지연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올해 한국 경제의 목표 성장률을 3.1%로 잡았다. 목표 달성을 위해 재정을 조기집행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재정 조기집행은 기본적으로 ‘상저하고’ 전망을 토대로 한다. 현재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고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재정을 상반기에 조기집행했음에도 성장률 목표 3.0%를 달성하지 못했다.
정부가 긍정론을 펼치는 또 다른 이유로 4·13 총선을 앞둔 정략적 조치라는 분석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7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최근 경제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긍정적인 측면도 많다”고 했다. “대외여건이 매우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만큼 하고 있는 것은 당초 소비절벽이나 고용절벽을 걱정했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은 수준”이란 평가도 내놨다.
지난 1월 16일 국회 시정연설과 같은 달 22일 수석비시관회의에서 “안보·경제의 이중 위기다. 경제와 노동개혁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켜 달라”며 “연초에 대내외 경제여건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당초 예상보다 훨씬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말한 것과는 대조적인 발언이다. 국회의 핵심 쟁점이던 테러방지법이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한 이후 말이 바뀐 셈이다. 정국이 테러방지법에서 총선으로 전환함에 따라 대통령의 메시지도 바뀌었다는 얘기다.
‘문제없다’는 메시지만 반복하기론 한국은행도 지지 않는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0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대내외적으로 많은 불확실성이 있지만, 국제유가 반등과 미국 경제지표 호전은 수출 여건, 금융시장 안정에 도움을 줄 것”이라며 긍정론을 펼쳤다. 다만 한은의 ‘괜찮다’는 메시지는 기재부와는 다소 성격 차이가 있다.
한은은 1.5%까지 떨어진 기준금리를 현실적으로 더 내릴 수 없는 처지다. 기준금리는 한은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정책 수단. 그러나 대내외 수요 부진으로 발생한 경제난을 대내 정책인 통화정책으로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한은이 돈을 아무리 풀어도 얼어붙은 시장 심리는 녹지 않는다. 기준금리를 내렸다가 외국인 투자자금이 대거 이탈,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1.5%에서 9개월째 유지하는 것은 쓸 수 있는 정책 카드가 더 이상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한은은 긍정론을 펼친다. 경제를 비관적으로 평가했다간 안팎으로부터 거센 기준금리 인하 압력을 받을 수 있다. 현재로선 시장의 심리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이 총재는 중앙은행의 경기부양 역할보다는, 물가상승을 억제하고 과잉 유동성을 통제하는 전통적 통화주의자에 가깝다. 정부가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긍정론을 펼치고 있다면, 한은은 정책 여력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셈이다.
김서광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