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일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는 김수남 검찰총장.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실례로 이영렬 지검장의 경우를 보자. 이 지검장은 지난 1월 11일 ‘뜬금없이’ 기자실에 직접 내려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 사건을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10시 기자실에 인사하러 오겠다고 입장을 전했다가 다시 57분이 지나 인사하러 내려오면 강영원 사건 항소 입장을 직접 밝히겠다고 한 것이다. 이 지검장은 그로부터 3분 뒤 기자실에서 법원 판결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소 입장을 표명했다.
지검장이 직접 나서 법원 판결에 반발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따라서 이 지검장이 총대를 멘 배경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담당 부장검사가 항소 입장 보도자료를 돌리고, 기자들에게 추가 설명을 하기로 했다가 김 총장의 지시로 이 지검장이 직접 입장을 밝히게 됐다는 얘기가 나왔었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중간간부 인사 전이라 3차장 자리가 공석”이라며 “그래서 담당 부장검사가 하기로 했지만 김 총장 지시에 의해 이 지검장이 직접 나선 것으로 안다”고 전했었다. 1조 원대의 국민 혈세가 낭비됐는데도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김 총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우 수석 개입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한 후 대검찰청에서 간부회의를 하는 날 박정식 반부패부장이 회의에 불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박 부장이 우 수석과 전화통화로 강영원 사건 대응 방안을 조율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우 수석이 법원 판결에 검찰이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주문했고, 그에 따라 담당 부장검사가 아닌 이 지검장이 직접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캐나다 정유업체 하베스트(Harvest Trust Energy)를 부실 인수한 혐의로 기소된 강 전 사장 사건은 우 수석이 민정비서관에서 민정수석으로 승진한 뒤 전 정권을 타깃으로 진행한 첫 번째 청와대발 사정수사였다. 따라서 법원 판결에 가장 승복하지 못한 이는 검찰이 아닌 오히려 우 수석이라는 판단이 이 얘기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에 대해 검찰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그런 얘기가 사실이라면 우 수석이 검찰 업무에 사사건건 다 개입한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에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사실이 아니더라도 이런 얘기가 자꾸 나오는 것 자체가 검찰이나 청와대 모두에게 좋지 않다”고 말했다.
우병우 민정수석.
실제로 김 총장을 좀 안다는 사람들은 그를 ‘여우’라고 부른다. 그만큼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설사 총장이 되기 전이나 총장 임기 초에야 우 수석에게 끌려 다니는 측면이 있었다 해도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특히 최근 검찰이 가열차게 시행한 부장검사 주임제를 우 수석 견제장치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팀제로 운영되는 부장검사 주임제의 경우 협의체 형식으로 사건을 처리할 수밖에 없어 사건과 관련한 외부 입김이 조금이라도 작용할 경우 보안유지가 어렵다는 점이 감안된 판단이다. 또 사건처리 결과가 팀원들의 의견 수렴을 통해 나올 수밖에 없는 만큼 ‘윗선’의 지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구태가 반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주임검사-부장검사-차장검사-검사장으로 이어지는 상명하복식 사건처리 때는 외부 입김이 작용해도 차장이나 검사장이 아는 선에서 끝났지만 부장검사 주임제 하에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이 제도는 겉으로는 일선 검사들에게 일 잘하라고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또 다른 수가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 한상대 전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을 할 때 특정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에게 보고하지 못하도록 한 일이 있었는데 부장검사 주임제 하에서는 그런 우려가 줄어들 수 있다”며 “여우같은 김 총장이 다음에는 어떤 수를 내놓을지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김성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