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을 위해 질주하는 KEB하나은행.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KEB하나은행은 올 6월 전산 통합 이후 사실상 통합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전산 통합을 전후로 옛 외환은행 지점을 비롯한 모든 지점은 ‘KEB하나은행’이라는 새 간판으로 교체될 예정이다. 또 옛 하나‧외환은행 직원 간 교차 인사 발령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KEB하나은행은 무리하게 통합 일정을 맞추기보다는 조금 늦더라도 철저히 준비해 고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최근 함 행장이 지난 취임사에서 공언한 ‘화학적 통합’이 순조롭지 않다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먼저 옛 외환은행 직원들은 여전히 불만과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외환은행 측은 우여곡절 끝에 통합에 합의했다. 동시에 두 가지 대전제를 조건으로 내세웠다. ‘특정 은행 출신에 따른 차별이 없을 것’과 ‘통합 후 2년 동안은 내부적으로 각 은행의 원래 체제대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법인 통합 반년이 지난 현재 옛 외환은행 일부 직원들은 “경영진이 ‘외환 길들이기’에 나섰다”고 성토하고 있다. 암묵적인 압력과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 일례로 지난해 선발된 310여 명의 KEB하나은행 신입행원들은 연수가 끝나고 모두 옛 하나은행 지점으로 발령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신입행원들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다. 이는 외환 직원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에 대해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전산 시스템에 강점을 가진 외환은행 인력을 구조조정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신입행원을 모두 옛 하나은행 지점으로 발령 낸 것이 맞다. 이는 통합 전산에서 옛 하나은행의 여‧수신 시스템을 쓸 것이기 때문에 신입행원이 겪을 혼란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외환발 불만이 옛 하나은행 직원들에게까지 옮겨가는 모양새다. 옛 하나은행 노동조합이 정년 연장과 전직원 임금피크제 적용에 합의한 것. 이로써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이 관리자급(부지점장 이상)에서 ‘전 직급’으로 확대됐다. 문제는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것보다 퇴직금을 받고 퇴사하는 쪽이 금전적으로 훨씬 유리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아 회사에 남은 직원은 단 한 명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피크제로 구조조정을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퇴직 후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직원들도 상당수 있다. 이들의 의견도 적극 반영했다”고 해명했다.
일각에서는 직원들에게 불리한 조건에 쉽사리 합의해준 하나은행노동조합(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하나은행지부)에 대한 불만도 나오고 있다. 김창근 노조 위원장은 내리 3선 연임 중이다. 임기는 지난해까지였지만 향후 노조 통합에 대비해 외환은행노동조합 위원장 임기에 맞춰 올해까지 위원장을 맡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문제가 돼 결국 3월 28일 임기 1년짜리 위원장 선거를 치르기로 합의했다.
금융노조의 한 관계자는 “이번 임금피크제 합의도 그렇고 주요 시중은행 중에서 하나은행의 처우가 왜 가장 낮은지를 생각해 보라. 노조가 조합원들의 이익을 적극 주장하기보다는 사측의 요구에 쉽게 순응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하나은행 노조 관계자는 “담당자가 없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김 위원장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 같은 일은 ‘서울은행 라인’ 탓에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함영주 KEB하나은행 행장, 김창근 노조 위원장 모두가 옛 서울은행 출신이다. 서울은행 출신이 최고 경영진부터 노동조합까지 포진해 있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직원은 “서울, 보람, 충청 그리고 최근 외환까지 여러 은행 출신들이 뒤섞인 하나은행에서 현재 실세는 옛 서울은행 출신들이다”며 “하나은행은 김정태 왕국이다. 쟁쟁한 후보들을 누르고 어떻게 함영주 행장이 발탁됐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은행장에게 리더십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한 시중은행장 출신 인사는 “금융지주마다 사정이 다르지 않나. 어느 은행에 누구 은행장이 권한이 있다 없다 하는 것을 내가 답할 계제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내가 은행장으로 있을 때는 (지주사 회장이 아닌) 내 소신대로 은행을 경영했다”고 밝혔다.
정재훈 기자 julia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