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지난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아무개 씨(35)와 김 아무개 씨(여·21)는 애인 사이로 안양시 동안구에 위치한 한 오피스텔에서 동거에 들어갔다. 김 씨가 마지막으로 발견된 시점은 지난 2월 12일. 당시 오피스텔 CCTV에 이 씨와 김 씨가 같이 들어가는 장면이 포착됐다. 그날 이후 김 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남성 실루엣.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신고가 들어온 건 지난 2월 17일이다. 김 씨의 언니는 “15일 이후 김 씨와 연락이 안 된다”며 경찰에 신고한 것. 사건을 맡은 안양동안경찰서는 당시 김 씨를 미귀가자로 보고 추적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이 씨에게도 연락이 갔다. 그러나 이 씨는 경찰과의 통화에서 “12일 김 씨와 말다툼이 있었는데 그 길로 짐을 싸서 나갔다”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이에 경찰은 이 씨를 용의선상에서 배재한 채 이 씨를 찾아 나섰다. 경찰이 김 씨의 휴대전화 최종 위치 값을 추적한 결과 서울시 마포구로 나타났다. 이에 관할 경찰서에 공조를 요청했으나 별다른 답변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2월 20일까지도 김 씨가 언니와 친구 등에게 연락을 취하지 없자 2월 22일부터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오피스텔 CCTV 검사에 나섰다. 경찰은 김 씨가 오피스텔로 들어가는 장면은 있지만 나오는 장면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사건 발생 다음 날인 14일에는 이 씨가 대형 박스를 카트에 싣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모습까지 발견됐다. 박스 중간에는 여기저기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이에 경찰은 김 씨를 미귀가자에서 실종자로 전환했으며 이제 본격적인 추적이 시작됐다.
이 씨가 소환된 건 2월 26일이었다. 그러나 이 씨는 다른 여성을 김 씨로 지목했고 대형박스에 대해서는 “이사한 직후여서 폐전선을 버리기 위해 박스를 날랐다”고 진술했다. 또한 이 씨는 문제가 된 2월 14일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거나 밥을 먹었다는 등 일관된 본인의 행적을 주장했다. 오피스텔 내부 조사에 혈흔반응도 나타나지 않으면서 결국 경찰은 2월 28일 이 씨를 석방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29일 경찰은 추가 조사를 위해 이 씨와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처럼 이 씨가 잠적하면서 경찰은 이 씨를 참고인에서 용의자로 특정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전국 소배 및 추적에 나섰다.
이때부터 경찰과 이 씨의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이 씨는 당시 천안으로 이동했다. 찜질방과 PC방 등을 전전하면서 숙식을 해결했다. 이에 안양동안경찰서는 해당 관할 경찰서에 협조를 요청했다. 위협을 느낀 이 씨는 지난 3월 5일 이 씨 모친이 거주하는 대구로 이동했다. 이를 파악한 경찰은 대구지방경찰청에 협조를 요청하는 한편 관내 찜질방과 PC방 수색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씨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지난 11일 경찰은 언론에 이 사건을 공개했다.
대구지방경찰청.
결국 이 씨는 3월 14일 오후 9시께 대구의 한 찜질방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대구 시내 찜질방과 PC방을 하나하나 수색한 결과였다. 붙잡힌 이 씨는 범행 일체를 자백했으나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월 13일 오후 5시께 이 씨는 김 씨와 말다툼끝에 목을 졸라 살해했다. CCTV에 포착된 박스에는 김 씨의 시신이 있었다. 또한 이 씨는 범행을 저지른 후 대형박스와 시멘트를 준비하는 등 완전범죄를 준비했다. 이 씨는 15일 김 씨의 휴대전화를 사용해 김 씨 언니에게 “홍대로 놀러 가겠다”는 위장 문자메시지까지 보냈다. 김 씨가 평소에도 홍대를 자주 찾았기에 주변인들은 이에 별 의심이 없었던 것. 김 씨의 시신을 나른 차 역시 렌터카였으며 이 차량은 조사를 받기 직전인 2월 24일 반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씨는 사건 당일 광명시 주택 밀집지역에 깊이 50cm의 땅을 파 김 씨를 암매장했다. 김 씨의 사체를 발견한 경찰은 “정확한 사망 원인 규명을 위해 부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사건에 있어 경찰에 대한 비판의 시각도 있다. 신고한지 5일이 지나서야 CCTV를 분석했고 용의자인 이 씨를 쉽게 풀어줬다는 것. 그러나 안양동안경찰서 관계자는 “보통 성인 여성의 미귀가는 단순 가출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휴대전화 위치가 마포구로 나타나 관할 경찰에 공조 요청을 하다 보니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이어 “당시에는 이 씨를 용의자로 볼만한 충분한 근거가 없어 인권 측면에서 고려한 것”이라며 “잠적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이 씨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 및 사건 경위를 조사 중이며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