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혼외자가 31억 원 이상의 빚을 물려받으면서까지 상속소송을 재기해 의문이 인다. 일요신문DB
고 이맹희 명예회장의 아들 이재휘 씨가 태어난 것은 지난 1964년. 1960년대 주연으로도 활동한 영화배우 박 아무개 씨가 친모다. 이 씨가 이복형제인 이재현 회장을 비롯해 이 명예회장의 부인인 손복남 CJ 고문, 장녀 이미경 CJ 부회장, 차남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를 상대로 서울서부지법에 유류분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은 지난해 10월 말. 이 씨는 “이맹희 회장의 상속재산을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재현 회장은 물론 손복남 고문 등 피고들이 생전에 아버지(이 명예회장)로부터 많은 재산을 증여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아버지의 상속재산이 남아있는 사실도 알게 됐다”면서도 단순히 돈 때문은 아니라는 게 이재휘 씨 측의 입장. “이재현 회장 등이 자신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게 했으며 상속재산분할 협의 등 일체의 법적 절차에서도 소외시켰다”며 소장에 집안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이 씨는 이미 법적으로도 이맹희 명예회장의 아들이다. 지난 2006년 친자관계확인소송을 냈고 DNA 검사 등을 통해 대법원에서 ‘친자가 맞는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끌어냈다. 이 씨의 어머니 박 씨는 이를 근거로 지난 2010년 7월 이 명예회장에게 양육비 청구소송도 제기했다.
당시 박 씨는 “이맹희 씨와 1961년에 만나 3년간 동거해 아들을 낳았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이병철 삼성 회장이 크게 화를 내 관계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고 아들은 홀로 키워야 했다”며 “호적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성인이 됐을 무렵 친아버지인 이맹희 회장과 부산에서 몇 차례 만났고, 이맹희 회장의 이름이 박힌 지갑과 볼펜, 시계 등을 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박 씨는 총 4억 8000만 원의 양육비를 청구했고 재판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재판 후에도 이 씨와 CJ 측은 왕래가 없었다. 이맹희 명예회장의 병색이 깊어졌음에도 만나지 못했고, 장례식장에도 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이 씨가 결국 ‘소송’ 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이맹희 명예회장의 혼외자 친자소송을 최초 보도한 <일요신문> 638호(왼쪽)와 1심 결과를 보도한 703호 지면.
이재현 회장 측은 이 명예회장의 빚이 너무 많아 불가피하게 한정승인을 신청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이 명예회장의 재산사항을 파악해보니 수십 년 동안 해외에서 체류해서 재산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그나마도 재산보다 부채가 훨씬 많아 한정승인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반면 “남긴 재산이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 몫으로 남겨진 빚 31억 6000만 원(1억 1000만 원의 자산과 부채 32억 7000만 원)을 고스란히 승계하기로 한 이 씨 측은 생각이 다르다. 이 씨의 변호인은 “이재현 회장 등의 꼼수다. 한정승인이라는 방법을 통해 상속세를 내지 않으려는 것”이라면서도 “이 명예회장의 상속재산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 소가를 2억 100원(2억 원이 넘으면 사건이 합의부에 배당된다)으로 했다”며 “소송을 통해 재산규모를 파악한 뒤 청구액을 변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를 이맹희 명예회장의 재산으로 볼 수 있을까. 이 씨 측은 고 이병철 회장이 물려준 CJ그룹 등이 이맹희 명예회장을 보고 준 것인 만큼 이에 대해서도 몫을 요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맹희 명예회장이 2012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상속 분쟁에서 과거 이병철 회장이 ‘괘씸죄’에 걸린 이 명예회장 대신 부인 손복남 고문과 아들 이 회장에게 현 삼성화재 차명주식을 줬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강조한다. 이 주장대로라면 2000억~3000억 원은 충분히 요구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하지만 CJ 측은 “이재현 회장은 어머니인 손복남 고문으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았을 뿐 생전 이맹희 명예회장로부터 받은 재산이 단 한푼도 없다”며 “고 이병철 회장 역시 이맹희 회장이 아니라 손복남 고문을 통해 유산을 남긴 만큼 혼외자인 이재휘 씨가 주장할 수 있는 유류분은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아직 첫 공판도 시작되지 않았지만 법조계에서는 CJ 측이 다소 유리한 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법원 관계자는 “재산 내역이 나와야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민사 재판은 원고(이재휘 씨) 측에서 입증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며 “CJ 측에서 그런 자료를 순순히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이길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전관 출신의 한 변호사 역시 “원고 측 주장대로라면 2000억 원이 훌쩍 넘는 돈을 타낼 수 있을 텐데 재판부 입장에서는 엄청난 확신이 서지 않으면 결정하기 힘든 금액 규모”라고 첨언했다. 그러다보니 ‘합의’ 가능성도 점쳐진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CJ 측 변호인과 이 씨 측 변호인은 한정승인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이 씨 측은 합의를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터무니없는 소송이라고 일축하면서도 CJ 측은 원치 않는 소송이라는 기색이 역력하다. CJ의 한 관계자는 “재판은 이기겠지만 공판이 진행되는 과정에 알려지지 않은 오너 일가 뒷이야기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며 “회장님 재판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혼외자녀에 따른 재벌가 비화가 언론에 오르내리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남윤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