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국제업무지구 조감도.
사건이 배당된 뒤 얼마 안 된 지난 2월 24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 수사관들이 허 전 사장의 최측근인 손 아무개 씨의 서울 여의도 사무실과 자택 등에 들이닥쳤다. 이 때 검찰이 확보한 것은 박스 3개 분량의 서류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검찰은 당시 삼성물산에 맡겨진 2900억 원대 용산 기지창 철거 공사 가운데 127억 원 규모의 폐기물 처리 일감이 코레일의 압박으로 손 씨 회사에 하도급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에 따르면 손 씨가 만든 W 사는 사업 초반부터 회사 돈을 빼돌리기로 하고 자금 거래를 세탁했다고 한다. W 사는 또 다른 건설업체와 하도급 계약을 맺은 것처럼 위장하고 허위 세금계산서까지 발행한 것.
하도급 대금인 것처럼 빼돌려진 돈은 손 씨에게 돌아갔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비자금이 20억 원 규모라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당시 W 사 회계 경리 담당 직원은 “손 씨가 윽박질러서 업무가 힘들었다. 마음대로 수표, 현금을 달라고 하거나 송금을 지시해서 몇 달 사이에 20억 원이 손 씨에게 전달됐다”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삼성물산도 수상한 점을 느꼈지만 뒤에는 코레일이 있었다. 당시 W 사의 규모가 영세하고 폐기물 사업 경험이 없는 점을 감안해 공문을 요청하자 코레일은 정식 공문을 보내 지원하는 한편 “손 씨에게 일감을 줘라”고 했다. 검찰은 자료 분석과 주변 참고인 조사를 마친 뒤 손 씨에게 소환을 통보했다. 하지만 손 씨는 검찰의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도주를 시작했다.
마치 영화와 같았다. 손 씨는 자신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을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한 뒤 도망치며 ‘대포폰’만 사용했다. 여기저기 모텔을 전전하며 검찰의 추적을 피했다. 도주 과정에서 중요한 내용이 담긴 메모지를 찢어 숨기기도 했다. 결국 손 씨는 모텔에서 도주를 도와주던 전직 코레일 직원과 함께 검거됐다. 검거 당시 손 씨는 얼굴을 숨기기 위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검찰이 밝혀낸 손 씨의 비자금 사용처는 ‘카지노’였다. 손 씨는 카지노에서 8억 원이 넘는 돈을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손 씨는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카지노에서 돈을 쓴 것은 인정했지만 그 외의 혐의는 모두 부인했다. 손 씨 측 변호인은 “체포된 날 자진 출석하기 위해 과거 일을 함께했던 사람과 예전 기억을 복기한 것이고 증거인멸하려 했다는 메모지 역시 나중에 억울함을 증명할 자료”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법원은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손 씨를 구속했다.
손 씨는 검찰 조사에서 “허준영 전 사장에게 전달된 돈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중간에 수의계약 체결 과정에서 코레일이 입김을 발휘하는데 당시 용산 개발사업을 진두지휘하던 허준영 전 사장이 이를 모를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하며 “직접 돈을 받았는지, 비자금을 조성하는 걸 알고 도움을 준 건지는 수사를 통해 드러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남윤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