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제5국에서 이세돌 9단(오른쪽)이 알파고와의 경기에 임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기원
세기의 대국은 지난 9일부터 15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렸다. 총 5국 중 이 9단은 1승을 거뒀다. 이 9단은 대국료로 17만 달러(약 2억 230만 원)를 지급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파고 개발사인 딥마인드는 알파고가 이전 바둑 프로그램과 다르다고 밝혔다. 구글에 따르면 알파고는 기존의 빅데이터 안에서 최선의 수단을 찾는 것에서 벗어나 컴퓨터가 스스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기존 알고리즘에 기계가 사람처럼 학습할 수 있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더한 것.
하지만 이번 대국이 애초 ‘사기 바둑’이었다고 의혹을 제기하는 법조인이 있다. 법무법인 한얼 전석진 변호사는 대결이 시작되기 한 달 전인 지난 2월 9일 자신의 SNS에 “구글은 전 세계 바둑인에게 사과해야 한다“며 이 9단의 필패를 예상하는 글을 남겼다. 전 변호사는 ”바둑 규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훈수를 둘 수 없다는 원칙 △일 대 일 대결 원칙 △시간 규정 원칙을 위배했다는 것. 광케이블로 인터넷에 연결돼 컴퓨터 자원을 무한정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바둑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요지다.
전 변호사는 “기존 인공지능은 먼저 학습 후 결과를 가지고 하나의 컴퓨터에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을 뜻한다“며 “그러나 구글이 제안한 게임은 실시간으로 변하는 상황에 맞춰 컴퓨터 프로그램을 실시간으로 다시 훈련시킨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새로운 학습과 새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다. 이미 둔 수를 보고 나서 그 다음 수를 계산하겠다는 것인데 이렇게 하면 경우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사기’는 말이나 행동으로 또는 거짓이나 오해스런 언동으로 또는 마땅히 공개했어야 할 것을 숨김으로써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이라며 “구글은 일반인들이나 인공지능 전문가들도 모르는 방법을 동원했으므로 우월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면서 구글이 사기 계약을 했다고 주장했다. “일방 당사자가 우월한 지식을 갖고 있을 때 쉽게 사기가 인정된다“면서 “침묵도 사기에 해당하는데 구글은 본인이 제기한 의문 중 어느 하나도 설명한 바가 없다. 이는 침묵에 의한 기망이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바둑은 인간의 영혼이 담긴 게임인데 이를 무한 조합 계산에 의한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무려 2600년의 역사를 지닌 바둑을 모욕했다”고 밝혔다.
강민구 부산지방법원장 또한 이번 대국에 대한 생각을 지난 11일 SNS에 “개인적으로 엄격한 법적 의미의 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계약 체결은 불공정한 계약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 9단은 절대 이길 수 없다고 단언했다.
강 법원장은 “기계와 인간의 대결이 아닌 인간과 인간의 대결이라고 봐야 한다”며 “정교한 소프트웨어를 조율한 집단적인 천재 프로그래머들과 이세돌 개인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다. 한 개인 천재가 다수의 천재 집단에 이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강 법원장은 이번 상황을 마치 과거 전자계산기가 처음 나올 때 암산 왕이 패한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비유했다. 이어 구글이 이번 게임으로 얻은 기업 이미지 마케팅 효과를 들며 “터무니없는 불공정한 계약”이라고 말했다. 실제 구글은 이번 대결로 인해 주가가 4.39% 상승해 약 10조 원이 넘는 금액의 이익을 얻었다.
다만 사기 의혹에 대해서 강 법원장은 “지금까지 체스 게임을 비롯한 모든 게임들은 독립형 컴퓨터와 개인이 전쟁을 하는 경우였다”며 “엄밀하게 이야기해 이번에도 기계로 작동하는 것은 차이가 없고 다만 계산 속도만 차이난다. 이 9단 측에서는 구글이 명시적으로 밝힌 클라우딩 시스템 체제에서도 당연히 승리한다는 것을 전제로 계약에 임했을 것이다”라며 오히려 “계약 체결 시 숨긴 바가 없는 구글로서는 사기라는 것에 억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하지만 참으로 아쉬운 계약 체결이었다”면서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법무법인 중원 김형곤 변호사는 “사기라고 보긴 어렵지 않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계약 조건을 자세히 모르지만 서버를 이용해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예측 가능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기원 관계자는 “현재의 논란은 한국기원의 공식입장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1200대 CPU가 돌아간다’ ‘실시간 정보 공유’ ‘알파고에 대한 정보는 없지만 이 9단에 대한 정보는 있다’는 논란들은 계약 전 충분히 검토했던 사항”이라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