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 참석해 총선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김종인 더민주 대표의 총선전략 1단계인 ‘친노계 실세 제거’는 실무진의 오랜 준비 끝에 나온 작품이다. 김 대표는 3월 정국 초반 국민의당에 야권통합 승부수를 던졌다. 김 대표가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야권이 단합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야권통합을 전격 제안한 것이다.
김 대표의 핵심 측근은 야권통합 제안에 대해 “즉흥적인 것은 아니다. 오랜 고민 끝에 나온 것”이라고 단언했다. 연대 방식은 높은 수준의 연대·연합 방식인 야권통합이다. 하지만 통합 대상은 국민의당으로 한정했다. 김 대표 구상에 정의당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야권통합을 위한 전제조건인 친노 패권주의 청산에 대한 각론 없이 최종 목표부터 던진 셈이다.
이에 일각에서 김 대표의 노림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김 대표의 야권통합 제안 이후 가뜩이나 내부 알력설로 분열 위기를 겪던 국민의당은 사분오열됐다. ‘독자파’인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와 ‘통합파’인 천정배 공동대표·김한길 의원이 충돌했다.
물밑에선 김한길계인 최재천 무소속 의원이 나섰다. 최 의원은 더민주를 탈당했지만, 안철수계와의 갈등으로 국민의당에 합류하지 않은 상태다. 최 의원은 김 대표의 통합 제안 다음 날인 3일과 11일 ‘천·김’과 만나 야권통합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논의 결과는 김 대표에게 전달됐다. 이 과정에서 김 의원은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직을 사퇴(11일)했고 천 대표는 당무를 거부(11일)했다가 복귀(15일)했다. 야권통합을 둘러싼 견해차 탓이다.
김한길 의원은 더민주와의 통합을 염두에 둔 반면, 천정배 대표는 ‘수도권 연대’에 한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안철수 대표와 천정배 대표가 지분 나눠먹기를 고리로 공조 행보에 나섰다는 말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한 달 뒤 총선 결과에 야권 지도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며 사실상 독자노선을 천명한 뒤 불출마 선언을 했다. 김종인 대표의 통합 승부수 이후 국민의당 권력구도가 새 국면을 맞은 셈이다.
김 대표는 야권통합 승부수로 두 가지를 선점했다. 하나는 ‘국민의당 갈라치기’다. 김종인 발 통합안으로 국민의당 ‘3두(안철수·천정배·김한길) 체제’는 완전히 틀어졌다. ‘안철수의 새정치’도, ‘천정배의 뉴 DJ(김대중 전 대통령) 플랜’도, ‘김한길의 야권통합’도 무력화됐다. 국민의당 핵심 지지층인 중도·무당파의 이탈은 심화됐다. 한때 20%대에 달하던 정당 지지도는 10% 초반으로 추락한 지 오래다. 호남 지지율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정치권 안팎에선 김 대표가 국민의당 내부 분열을 이용, 총선 구상의 마지막 단계인 ‘중도 확장’을 위해 길을 텄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다른 하나는 ‘친노 패권주의’의 이슈화다. 김 대표가 야권통합을 제안하자, 국민의당은 “친노 패권주의 척결이 우선”이라는 성명을 잇달아 냈다. 자신들의 탈당 명분이었던 친노 패권주의 청산을 고리로 더민주에 융단 폭격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당 3두체제는 분열됐고 야권통합은커녕 연대도 사실상 무산됐다.
김 대표는 분열된 국민의당 내부의 공간을 치고 들어갔다. 지난 10일 강경파인 정청래 의원을 시작으로, 14일 친노계 좌장인 이해찬 의원을 낙천했다. 범주류인 정세균계 전병헌 강기정 오영식 의원도 공천에서 배제됐다. 친노계와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 생)의 상징인 인사들을 줄줄이 내친 것이다.
그 결과, 김 대표는 친노 패권주의 청산의 주도권을 잡는 분기점을 마련했다. 국민의당의 연대 거부로 일여다야 구도에 대한 책임을 안 대표에게 덧씌우는 한편, 친노 청산을 고리로 한 당내 주도권 및 호남 경쟁의 주도권마저 잡았다. 김 대표의 공천전략에 내부 주도권 확보 및 중도층 갈라치기 전략이 깔렸다는 얘기다.
이해찬 더민주 의원. 일요신문DB
국민의당 한 의원은 “결국 (이해찬 의원을) 살아 돌아오게 할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며 “(김종인·문재인이) 짜고 치는 것처럼 그렇게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더민주가 이 의원 지역구인 세종시에 무공천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을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16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이해찬 컷오프에 대해 “문 전 대표와 상의하거나, 협의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 대표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안팎에선 더민주 내부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이목이 쏠렸다. 복수의 당 관계자들 말을 종합하면, 김 대표의 최측근은 김헌태 총선기획단 정세분석본부장을 중심으로, 정장선 총선기획단장, 이용재·곽수종 정무특보 등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을 지낸 김 본부장은 손학규 전 상임고문의 당대표 시절 전략기획위원장을 맡았다. 정 단장도 대표적인 손학규계다.
전두환·노태우 정부 때 청와대에서 일했던 이용재 특보는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의 사람으로 분류되며, 곽수종 특보는 안 대표가 창당을 주도하던 2014년 새정치연합 총무팀장을 지냈다. 김 대표가 ‘친문(친문재인)계’에 당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 마련에 나섰다는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다.
이 지점은 김 대표에게 꽃놀이패다. 이해찬 의원 컷오프를 통해 일단 당내 주도권을 확보했다. 친노의 상징적 인물만 제거, 친문계가 당 최대 주주로 부상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줬다. 자신의 실무 라인 최측근에 손학규계 등 당내 비주류 인사를 꽂았다. 특히 손학규계로 분류되는 오제세 전혜숙 의원 등을 단수 공천했다. 친문계와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가운데 손학규계 포섭을 통해 ‘김종인계’를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임종석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 박원순계는 경선에서 대거 탈락했다. 범주류 한 관계자는 “김 대표가 정치를 계속할지는 알 수 없지만, 과거 비대위처럼 선거 뒤 역할론을 그만둘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관훈토론에서 “(이번 총선에서) 107석이 안 되면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 목표치를 제시하는 배수진을 친 것이지만, 목표 달성 시 장기적인 역할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비노계 한 관계자는 “김종인 역할론의 분수령은 20대 총선 비례대표 당선권 부여”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친노 실세 제거→호남 지지율 복원→박근혜 정부와의 경제정책 경쟁→중도 확장’이라는 총선 4단계 중 2단계까지 안착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당 산하 유능한경제정당위원회를 중심으로 ‘이명박근혜’ 8년의 경제 실정으로 정권 심판론에 불을 붙이면서도 경제공약을 통해 중도층 확장 전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 측 관계자는 “새누리당 집권 8년간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에 대한 비판과 함께, 정의와 풍요가 있는 포용성장, 남·북-북·중 교역 등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피력해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전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