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박주영 선수에 대해 ‘위기론’과 ‘거품론’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스웨덴전 모습. | ||
작년부터 나타난 위기의 징조
핌 베어벡 대표팀 수석코치는 지난해 유럽 축구전문 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박주영에 대해 “기회를 기다리기보다는 경기에 좀더 관여해야 한다. 골을 많이 넣는다는 것만으로는 유럽에서 뛰기에 부족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 같은 인터뷰를 한 배경을 지난해 11월29일 파주 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있었던 지도자 교육과정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설명했다.
“박주영이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극을 줄 필요가 있었다. 박주영은 한국에서 가장 가능성이 큰 선수 중 한 명이지만 분명한 것은 좀 더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베어벡 코치는 박주영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소속팀에서처럼 기다렸다가 공을 받아 골을 넣는 일은 유럽에서는 있을 수 없다. 좀 더 많이 뛰고 볼 터치도 다듬어야 하며 전술적인 이해도를 더욱 향상시켜야 한다.”
박주영은 남다른 숙제를 안고 지난 1월16일 아드보카트호의 해외 전지훈련에 나섰다. 초반 흐름은 좋았다. 그리스전과 핀란드전에선 잇달아 골맛도 봤다.
그러나 핀란드전 후 있었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공식 인터뷰에선 묘한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개인적으로 오늘 경기의 최우수선수(MVP)는 백지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최측이 선정한 핀란드전 MVP는 결승골을 넣은 박주영이었다.
박주영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홍콩 칼스버그컵 덴마크전서부터였다. 박주영은 오른쪽 윙포워드로 나서 왼쪽의 정경호(광주), 중앙의 조재진(시미즈)과 호흡을 맞췄다. 한국은 이 경기에서 조재진이 한 골을 넣었지만 3 대 1로 완패했다. 박주영에 대해서는 “유럽의 큰 선수들을 상대로는 몸싸움도 돌파도 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전훈 후반부터 정경호에 밀려
박주영은 한국이 3 대 0으로 완승한 LA 갤럭시전에서도 이렇다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또한 코스타리카전과 멕시코전에선 정경호에게 밀리며 선발 출전 하지 못했다. 코스타리카전에선 후반 18분 김남일(수원)의 교체멤버로 투입됐다. 멕시코전 땐 내내 벤치를 지키다가 후반 인저리타임(47분)에 이호(울산)의 교체멤버로 그라운드를 밟았다.
장모상을 당한 아드보카트 감독 대신 지휘봉을 잡은 베어벡 코치가 박주영에게 던지는 ‘자극의 메시지’가 분명했다. 이때쯤 국내에선 모 라디오방송사의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박주영 거품론’이 불거져 논란이 확산됐다.
논란의 당사자였던 강신우 대한축구협회 기술국장은 지난 20일 간담회에서 ‘박주영 비판 논란’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시간을 가졌다.
“박주영을 비판하고 싶은 의도는 없었다. 선수들 간의 경쟁이 심한 상황에선 어린 선수들이 부담을 가질 수도 있다. 경험상으로 이동국이나 고종수가 직전 월드컵에서 반짝 뛴 것을 가지고 다음 월드컵 때 그 선수들을 주축으로 인정했는데 사실 그 선수는 주축이 아니었다. 그 선수들을 주축이라고 할 경우 결국 해당 선수들에게 부담으로 돌아간다. 과거 마라도나의 경우에도 그 같은 상황 때문에 배려 차원에서 월드컵 엔트리에서 제외시켜 주는 일도 있었다.”
돌려 생각해보면 강 국장의 발언엔 박주영이 독일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도 담겨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치열한 포지션서 너무 얌전
그동안 박주영 거품론에 동조했던 축구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대강 이렇다.
“박주영은 소속팀 FC 서울에서 뛸 때와는 달리 대표팀에선 팀 플레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정경호나 이천수가 근성을 드러내면서 악착같은 플레이를 펼치는 것과 대조적으로 박주영의 플레이는 너무 얌전하다. 박주영이 지난 시즌 K리그에서 넣은 골 중 상당수는 FC 서울이 박주영을 위해 만들어 준 결과물이다.”
시리아와의 2007아시안컵 예선에선 다시 한번 박주영의 위기 상황이 드러났었다. 당초 박주영은 선발이 유력했다. 경쟁자인 정경호가 왼쪽 허벅지 근육 부상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드보카트 감독은 박주영 대신 정경호를 선발로 기용했다. 정경호는 특유의 스피드를 앞세워 전반 4분 김두현(성남)의 선제골을 도왔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후반 8분 정경호의 페이스가 떨어지자 박주영을 교체 투입했다. 박주영은 인저리타임까지 40분을 넘게 뛰었지만 눈에 띄는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앞선 2경기에서 아주 잘해줬기 때문에 (선발 라인업에) 변화를 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며 박주영에 대해서는 “아직 좀더 보여줘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주영의 위기는 경쟁자인 정경호와 이천수(울산)가 전훈을 통해 약진하면서 더 두드러져 보였다. 독일행 아드보카트호 승선 티켓을 놓고 가장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포지션이 바로 공격수 자리인 것이다.
3월1일 앙골라전이 분수령
한 축구인은 박주영이 지금과 같은 측면 공격수로는 대표팀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전망을 내놨다. 박주영의 플레이 특성상 측면 공격수로 아드보카트 감독이 지시하는 전술을 소화해내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대표팀이 독일월드컵까지 4-3-3 포메이션을 가져간다고 가정할 때 차라리 박주영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쓰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이 포지션은 이번 전훈기간 김두현과 백지훈(서울)이 각축을 벌였던 자리다.
하지만 이 포지션에서도 박주영이 경쟁력을 갖기까지는 한 가지 선결해야 될 문제가 있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대표팀 내 포지션이 먼저 결정돼야 한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지난 연말 국내 평가전 후 인터뷰에서 박지성의 위치에 대해 “박지성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쓰기 위해서는 그에게 볼을 잘 배급해줄 수 있는 최소한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필요하다”며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박지성은 측면 공격수를 맡는 것이 가장 좋다”는 말을 했다.
이번 전훈에서 아드보카트 감독은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과 이호를 동시에 기용하는 전술을 실험했고, 어느 정도 성과도 거뒀다. 만일 아드보카트 감독이 자신의 가정대로 박지성을 김남일-이호와 호흡을 맞추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한다면 박주영의 입지엔 또 다른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3월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앙골라전에 더욱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상운 국민일보 체육부 기자 swc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