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 15일 신한금융투자 본점을 방문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직접 가입하고 직원들을 격려했다. 사진제공=금융위원회
금융회사들과 정부가 내세우는 ISA의 혜택은 세금이다. 소득에 붙는 15.4%의 세금을 200만 원까지 면제해주고, 200만 원(자격요건에 따라 최고 250만 원)이 넘는 수익에 대해서는 일반 소득세율보다 낮고, 세율이 높은 종합소득과세가 적용되지 않도록 9.9%의 분리과세를 적용한다. 제약조건도 있다. 근로소득자 납입한도가 연 2000만 원이며, 5년간(일부의 경우 3년) 계좌 내 포트폴리오 변경만 가능하고 해지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계좌를 유지하면서 매년 수수료를 내야 한다. 계좌 내에서 상품에 투자할 때마다 내는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것도 아니다. 즉 일반 금융상품 투자조건과 같은데, 다만 비과세 혜택의 대가로 금융회사에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수수료를 내는 만큼 실질적인 혜택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금융투자협회가 집계한 증권업계 운용수수료를 보면 고객이 직접 포트폴리오를 택하는 신탁형은 연 0.1~0.3%다. KDB대우증권(6월까지)과 현대증권은 신탁형의 경우 수수료를 무료로 정했다. 운용을 증권사에 맡기는 일임형은 초저위험상품이 0.1~0.3%, 저위험은 0.2~0.4%, 고위험은 0.5~0.7%, 초고위험상품은 0.8~1.0% 수준이다.
가장 안전한 투자처는 역시 나라에서 발행하는 채권이다. 은행 예금이자도 국고채 투자수익을 기반으로 한다. 지표채권인 만기 5년짜리 국고채 금리는 지난 14일 기준 1.662%다. 투자비용 등을 감안할 때 실제 수익률은 1.5% 정도다.
2000만 원을 채권에 투자한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자소득은 약 30만 원이다. ISA 수수료율이 0.1%면 2만 원, 0.2%면 4만 원, 0.3%면 6만 원이다. 반면 이자소득에 따른 세금은 약 4만 6200원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투자수익이 낮다면 직접투자보다 오히려 더 손해일 수 있다. 즉 수수료 부담을 넘어설 정도의 수익이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14일 NH농협은행 대전중앙지점에서 ISA에 가입하는 모습. 아래는 같은 날 한국투자증권 본사에서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가운데)이 ISA 1호 고객으로 가입하는 장면. 사진제공=국무총리실·금융투자협회
주식투자 수익의 경우 애초부터 비과세다. 굳이 ISA를 통해 주식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주식을 빼면 고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처는 파생상품이다. 주가연계증권(ELS)이 대표적이다. 공모 ELS의 수수료율은 보통 투자금액의 0.5~1%다. ISA 수수료를 냈지만 ELS 투자 때 또 수수료를 내야 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ELS도 원금보장형의 경우 비교적 원금은 안전하다. 이 때문에 ISA에서는 원금보장 ELS인 ELB를 선호하고 있다. 기초자산 가격변동에 따라 최대 7~8%의 수익도 가능하지만, 은행이자보다도 못한 수익에 그칠 확률도 적지 않다. ELS에서 충분히 수익을 내지 못한다면 절세혜택은 줄고, 수수료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반대로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5년간 1인당 최대 1억 원의 돈을 꽁꽁 묶어 놓을 수 있다. 우선 수익률이 좋으면 좋은 대로 수수료 수익이 지속되고, 수익률이 나쁘면 계좌 내 포트폴리오를 교체하면서 상품판매 수수료를 늘릴 수 있다. 밑질 것 없는 장사인 셈이다. 상품 출시 초기 각종 혜택을 쏟아내고 있는 것도 일단 잡아 놓으면 5년간 꼼짝없이 묶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ISA 판매 첫날인 지난 14일 가입자 숫자는 총 32만 2990명이다. 금액은 1095억 원. 기존 세제혜택 상품이던 재형저축은 첫날 198억 원 규모 27만 9180계좌를 기록했고, 소득공제장기펀드는 16억 6000만 원에 1만 7373계좌를 기록했다. 이 같은 차이는 ISA가 상품으로 더 좋아서라기보다는 상품 자체의 특성 때문이다. 사전 예약판매 분이 이날 하루 몰린 덕분도 크다.
재형저축은 연소득 5000만 원 이하, 소득공제 장기펀드는 총급여가 5000만 원을 넘지 않는 근로자만 가입이 가능했다. 서민들은 금융상품 가입 여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ISA는 일반 근로소득자와 사업소득자도 가입할 수 있다. 가입한도도 연간 2000만 원, 5년간 최대 1억 원까지 가능하다. 맞벌이 부부가 2명의 성년 자녀를 둔 경우라면 연간 8000만 원, 5년간 4억 원까지 투자가 가능한 셈이다.
그런데 투자자들이 영리하게(?) ISA에 접근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14일까지 팔린 ISA를 형태별로 보면 신탁형이 32만 2113명으로 일임형의 877명보다 훨씬 많았다. 신탁형의 총 가입 금액은 1077억 원, 일임형은 18억 원이었다.
신탁형 위주로 판매되는 이유는 일임형에 비해 저렴한 수수료와 기존 신탁을 통한 ELS 투자자의 ISA 가입, 환매조건부채권(RP) 특판 등의 효과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탁형은 소액으로도 계좌 개설이 가능하고, 개설 시점 이후에도 편입 상품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선호된 것으로 보인다.
은행을 통한 가입자 수는 총 31만 2464명으로 전체의 96.7%를 차지했다. 금액 비중은 73.2%(802억 원)으로 가입자 비율보다는 작았다. 은행권 관계자는 “기존 예·적금 고객이 예금이자 비과세 혜택만을 노리고 ISA에 가입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은행들이 판매하는 ISA는 투자포트폴리오를 투자자가 정하는 신탁형이다. 수수료 부담이 적다. 내달부터는 은행들도 일임형 상품을 판매할 수 있지만, 예금 중심의 은행 고객들이 안전성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일임형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고 귀띔했다.
정부가 이 상품을 내놓은 목적이 서민과 중산층에 있지만, 여유자금이 많지 않은 서민 중산층이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원금손실 가능 상품에 투자할 이유는 별로 없다. 게다가 은행들은 ELS 등 파생상품과 관련한 전문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사실도 이미 널리 알려졌다. 최근 인력 숫자는 맞췄지만, 금융당국이 자격요건을 완화시켜 준 덕분이다. 실제 상품에 대한 경험과 지식은 증권사만 못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증권사 역시 마찬가지다. 14일까지 증권사를 통한 가입자 수는 1만 470명(3.2%)이었으며, 금액으로는 293억 원(26.7%)을 기록했다. 신탁형이 9593계좌 274억 원으로 1계좌당 평균 286만 원이다. 일임형은 877계좌 18억 원, 1계좌당 209만 원에 그쳤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들은 ISA 시행 전부터 신탁형 가입자를 대상으로 RP 특판 등 ‘수익을 주는’ 마케팅을 벌였다. 증권사 ISA의 주력 포트폴리오인 ELS 등 파생상품은 최저가입금액이 존재한다. 기존 ELS 고객이 비과세와 특별금리 RP 혜택만을 노리고 수수료가 싼 신탁형에 가입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풀이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