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내 직업을 뺏을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퍼지고 있지만, 인류와 로봇이 공생하는 이로운 사회가 펼쳐질 것이라는 낙관론도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지난 2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렸던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참가자는 중앙은행총재도, CEO도, 그리고 정치인도 아니었다. 바로 우리나라의 로봇인 ‘휴보(HUBO)’였다. 그만큼 AI에 대한 관심이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뜨거운지가 잘 나타나는 대목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보스 포럼에서 발표된 ‘미래의 직업 보고서’에 따르면 로봇과 AI의 발달로 인해 노동 시장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15개 주요국에서는 5년 안에 510만 개의 일자리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다 많은 피해를 입는 것은 남성보다는 여성이다. 가령 남성은 세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동안 한 개의 일자리가 새롭게 창출되는 반면, 여성은 다섯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동안 한 개의 일자리가 생겨난다. 이유인즉슨 여성들은 주로 판매직, 사무직, 행정직과 같은 저성장, 혹은 이미 쇠퇴기에 접어든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래의 직업 보고서’가 지적한 ‘기술의 발달로 인해 가장 위협을 받게 되는 직업군’들은 사무직, 행정직, 제조 및 생산직이다. 이 가운데 의료 서비스직은 원격의료시스템의 발달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며, 에너지 및 금융직 종사자 역시 로봇이 업무를 대체함으로써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고 ‘미래의 직업 보고서’는 밝혔다. 반면 데이터 분석가, 영업 전문가 등과 같이 특정한 숙련 기술이 필요한 직업은 로봇으로 대체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봇의 발달로 인해 위태로운 직업들로는 과연 무엇이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만일 지금 당신이 책상 앞에 앉아 사무를 보고 있거나, 택시 운전을 하고 있거나, 혹은 벽돌을 운반하는 막노동을 하고 있다면 잠시 일을 멈추고 이렇게 자문해보라. “로봇이나 기계가 나보다 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정답은 ‘그렇다’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많은 연구진들이 비슷한 예상을 내놓고 있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은 2025년까지 모든 일자리의 4분의 1이 스마트 소프트웨어나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예견했으며, 옥스퍼드대학의 연구진들은 현존하는 영국 내 일자리의 35%가 향후 20년 안에 자동화로 인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보고서 작성이나 엑셀 파일 작성 등과 같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하는 사무직 종사자들의 경우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무 업무의 경우, 기계가 인간보다 더 빨리, 그리고 자동으로 업무를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전화번호나 주소만 보고도 보험금이 중복 청구됐는지를 재빨리 판단하는 식이다.
그런가 하면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는 기술의 발달로 쇠퇴하게 될 대표적인 직업으로 은행창구직을 꼽았다. 이미 ATM 기계의 도입으로 대량 줄어든 일자리가 앞으로는 로봇의 도입으로 더 빨리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택시 운전사의 경우에는 이미 어플을 기반으로 하는 ‘우버’와의 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우버’ 자체가 아니다. 앞으로 ‘우버’는 아예 운전 기사를 사라지게 할 경쟁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이름하여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다. 더 이상 운전 기사가 필요없는 무인 택시가 고객을 목적지에 안전하게 데려다 주게 되는 것이다.
코넬대학의 컴퓨터공학 교수인 바트 셀만은 “2~3년 안에 반자동 또는 자동 시스템이 우리 실생활 깊숙이 침투해 들어올 것이다. 자율주행 승용차, 자율주행 트럭, 자율주행 정찰 드론, 자동 주식거래 시스템 등이 그렇다”라고 말했다. 또한 가정용 로봇을 비롯한 다양한 인공지능 비서들도 생활 속에서 도우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셀만 교수는 “우리는 로봇과 일종의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로봇을 믿으면서 함께 동료처럼 일하게 될 것”이라고도 예상했다. 그러면서 그는 “단지 우려되는 것은 AI의 발전 속도가 얼마나 빠를까 하는 것이다. 앞으로 AI가 얼마나 똑똑해질지 알 수 없다는 점은 걱정이 된다”라고 덧붙였다.
사실 이미 공장에서부터 시작된 자동화 시스템은 이제는 가정, 병원, 상점, 레스토랑, 심지어 전투지에까지 침투한 상태다. 알파고처럼 인간의 뇌를 모방한 ‘인공 신경망’과 같은 분야의 발전은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점차 허물기 시작하고 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는 2016년 경제보고서를 통해 시급 20달러(약 2만 3000원) 이하인 일자리는 아마 로봇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로봇이 저임금 직종을 대체하게 될 확률은 무려 83%라고 덧붙였다. 반면 시간당 20~40달러(약 2만 3000~4만 7000원)를 버는 경우에는 31%, 그리고 40달러 이상을 버는 경우에는 4%만이 위험하다고 보고했다.
더욱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전문가도 있다. 미 라이스대학 컴퓨터과학자인 모쉐 바르디는 2050년까지 향후 30년 안에 전세계 인구의 50% 이상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가 하면 경영 컨설턴트인 ‘딜로이트’는 상점 판매원을 비롯한 소매점 직원들이 가장 위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딜로이트’ 부회장인 앵거스 놀스-커틀러는 “기계의 행진은 이미 진행 중에 있다. 막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반면 교사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에 속한다. 단, 교육기관 행정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위험하다. 초중고등학교, 대학교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머지 않아 컴퓨터 시스템의 도입으로 일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딜로이트’는 15년 안에 간병인 자리 역시 로봇에게 내줘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인을 돌보고 노인과 친구가 되어주는 로봇은 이미 상당 수준 개발되어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AI의 영향을 받지 않는 안전한 직업들로는 무엇이 있을까. 사람과 소통하면서 감정을 교류하는 직업들이 대표적이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가령 피트니스 지도자의 경우 로봇에 의해 대체될 확률이 10% 정도에 불과하다. 피부미용사 역시 마찬가지다.
CSIRO에 따르면 2035년 새롭게 인기를 얻을 여섯 개의 유망 직종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빅데이터 분석가다. 특히 사이버 보안 분야의 빅데이터 전문가는 상당히 전망이 좋으며, 이밖에 암호화 전문가, 데이터 클라우드 전문가, 자동화 전문가도 인기 직종이 될 것이다.
둘째로는 정보를 해석하고 단체나 기업의 자문 역할을 하는 서포트 애널리스트가 있다. 셋째, 원격 조종 전문가 역시 유망직에 속한다. 하늘, 바다, 땅에서 직접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에 앉아 원격으로 기계를 조종하는 파일럿, 선장, 운전기사 등이 여기에 속한다. 넷째, 사회성이 좋고 사람을 잘 응대하는 고객관리 전문가들의 수요도 증가할 것이다. 이에 앞으로 CEO라는 직책은 CXO(최고경험관리자)로 대체될 것이며, 슈퍼마켓, 소매점, 쇼핑센터에서 고객의 구매 내역을 개선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다섯째, 건강 도우미다. 식습관으로 인한 질병의 증가나 비만 인구의 증가로 인해 개인 피트니스 트레이너가 더욱 필요하게 될 것이다. 여섯째로는 온라인 도우미가 있다. 소셜미디어사이트가 인기를 얻으면서 나타난 부작용들, 가령 따돌림이나 아이디 해킹, 사기 행각 등으로 인한 피해 사례가 증가하면서 온라인 도우미가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온라인 도우미는 개인 및 기업의 온라인 인간관계를 관리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로봇 때문에 인기를 얻거나 새롭게 창출되는 일자리도 많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점친다. 호주 고용부 장관인 미셸리아 캐시는 “앞으로 어떤 직업은 필연적으로 자동화될 것이다. 하지만 기술의 변화는 다른 면에서 새로운 일자리와 기회를 만들 것”이라면서 낙관론을 펼쳤다. 그러면서 20년 후에는 특히 디지털 리터러시(디지털 기기 사용능력)와 소셜 스킬(사회적 기술)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맨파워그룹’의 조나스 프라이싱 CEO 역시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일자리가 파괴되기보다는 결국에는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뒤셀도르프 공항의 주차대행 시스템을 예로 들어보자. 차에서 내린 후 터치스크린의 버튼만 누르면 기계가 자동으로 주차를 해주는 주차대행 로봇 서비스는 주차공간 절약, 시간 절약 등 다양한 이점이 있다. 하지만 주차대행 일자리를 로봇에게 빼앗겼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다. 보스턴의 기술연구회사인 ‘포레스터’의 J.P. 가운더는 “일자리가 없어진 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됐다”라고 말했다. 자동차를 들어올리는 지게차를 유지관리 및 보수하는 것은 엄연히 인간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일들은 화이트칼라 직종이 아니다. 이는 블루칼라인 수리공들의 진화다. 로봇을 고치는 것은 자동판매기를 고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자리 전환이지, 일자리 대체는 아니다”라고 정의 내렸다. 기계를 설계하고 프로그램을 짜고 수리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기계나 로봇을 훈련시키는 것(딥러닝) 역시 인간의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카네기멜론대학의 컴퓨터공학과 학장인 앤드류 무어도 이에 동의하면서 “로봇과 AI는 인간이 일하는 방식을 바꿀 뿐 일자리를 없애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 그는 비율의 문제는 염려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지는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자리 문제 외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AI 관련 문제는 아마 ‘살상용 로봇’의 개발일 것이다. 영화 <터미네이터> 속의 T-800가 현실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전투용 로봇의 개발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으며, 미래에 AI 로봇이 전쟁터를 휩쓸고 다닐 경우 인간을 공격할지 모른다며 경고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대학의 컴퓨터공학 교수인 스튜어트 러셀은 “인간이 조종하는 드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조종하지 않는 자동 무기를 말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하면서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명령 없이 이동을 하거나 목표물을 공격하는 그런 무기 말이다”라고 말했다.
웨스트잉글랜드대학의 앨런 윈필드 전자공학과 교수는 “전투지에서 로봇의 반응을 예측하기란 어렵다. 혼란스러운 전투지에 로봇을 투입할 경우 로봇은 아마 더욱 혼란스럽게 반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오작동해 인간의 통제를 받지 않을 경우 그 영향력은 상당히 파괴적일 것이라고 그는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