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종국 | ||
지난해 2월 두바이국제대회서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후 교체 멤버로 출장했을 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희열을 만끽했다고 고백했던 송종국. 그런 그가 지금은 대표팀 엔트리는 물론 베스트11에 거론될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달리기를 잘해 육상 대표로 소년체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당시 육상계의 유망주로 꼽히며 달리기 선수로 성장하는 듯싶었지만 중 1 여름 특활시간 박진섭(현 울산 현대)과 함께 재미삼아 축구부에 들어갔던 것이 송종국의 인생을 결정짓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축구부 입단 사실을 안 부모의 반대가 거셌다. 무엇보다 운동선수를 뒷바라지할 수 없는 어려운 가정 형편이 한몫했다. 건축업을 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해 집안이 기울기 시작했고 등록금 내기도 빠듯한 처지에 운동선수를 지원할 만한 여력이 없었던 것. 다행히 축구부 감독이 후원자까지 대동하고 부모를 설득하는 바람에 송종국의 축구인생은 계속될 수 있었다.
충북 단양의 산골마을 대가리가 송종국의 출생지다. 한 마디로 ‘촌놈’이 출세한 셈. 어린시절 산과 들을 놀이터 삼아 뛰어 놀았던 그가 축구선수로 성공가도를 달리리라고는 부모도, 또 큰형 종환씨도 전혀 상상조차 못했다고 한다. 태권도를 전공한 종환씨는 현재 동생이 소속돼 있는 에이전트사의 마케팅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대표팀에서의 눈부신 활약으로 CF에서도 주가를 높였다. 언뜻 따져보면 돈을 꽤 벌었을 것 같은데 사정은 그렇지 않단다. 돈벌이는 월드컵 이후부터라고. 월드컵에서의 뛰어난 활약을 발판삼아 해외무대로 진출하려는 야심이 현실로 이뤄질 경우 송종국은 전세살이를 면치 못하는 가족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줄 꿈에 부풀어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축구장을 벗어난 송종국의 옆에는 항상 여자친구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 여자친구가 보이지 않아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헤어졌다”고 짧게 대답했다. 운동선수가 운동도 잘하면서 여자친구와의 만남도 잘 유지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아픔도 내색하지 않고 월드컵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온 송종국. 그에게 월드컵 무대는 도전이자 의무요, 도박이자 모험이다. 그래서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