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부인 김수아씨(왼쪽), 장모 이정희씨와 함께 한 심재원. 이종현 기자 | ||
일주일전 귀국할 당시만 해도 엔트리 재발탁에 대한 부푼 희망을 안고 대표팀에 합류했던 심재원(25·독일 프랑크푸르트)은 약속과는 달리 스코틀랜드전에 출전하지 못하면서 불안한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20일 저녁 훈련을 마치고 히딩크 감독과 단독 면담을 가진 자리에서 “힘든 상황 중에도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 들으며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감독으로부터 두번이나 버림을 받은 심재원은 22일 잉글랜드전 이후 대표팀을 나와 진로문제를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14일 독일에서 귀국한 심재원과의 공항 인터뷰 내용이다.
귀국전 독일의 집을 처분하고 들어왔다. 유난히 많은 짐보따리를 가지고 온 것도 집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정규리그를 끝으로 구단과 계약이 종료됐고 바람대로 독일이나 유럽에 계속 남을 수 있을지, 아니면 친정팀 부산으로 복귀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한달 전까지만 해도 그의 유럽 잔류는 절망적이었다. 잦은 대표팀 호출로 인해 팀과 좋지 않은 감정이 쌓이게 됐고 대한축구협회와 소속팀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돼 행동반경이 극히 좁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 더욱이 국내 친정팀이 요구하는 이적료 1백만달러는 유럽에 잔류할 수 없게 만드는 ‘화약고’였다.
그런 까닭에 솔직한 심정으론 부산팀에서 이적료를 조금이라도 양보해준다면 유럽에서 계속 활동할 수 있는 청신호가 될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도 내비친다.
심재원은 3주, 2주, 심할 때는 1주일에 한번씩 대표팀 합류 요청을 받았다. 무엇보다 1부리그 진입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던 구단 관계자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처음엔 이해를 해주던 코칭스태프도 계속되는 차출에 끝내는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11월엔 아예 그를 불러놓고 다시 한국에 들어갈 경우 월급을 지급하지 않겠다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한국에 다시 가서 문제를 원만히 해결해 놓고 돌아오라는 압력도 받았다.
지난 북중미 골드컵 때는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골드컵 대회에 참가하려면 아예 팀을 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게다가 독일 진출 초기부터 매니저를 맡았던 김동승씨와도 매끄럽지 못한 악연을 맺게 돼 선수가 직접 구단을 상대하는 최악의 사태를 겪기도 했다.
“골드컵대회 후 돌아갔더니 이미 수비수를 보강했더라고요. 내가 안올 줄 알았다는 거였어요. 이후 계속 뛰질 못했어요. 손가락도 다치고 허벅지 근육마저 부상당하고 정말 운동하기 싫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죠.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렇게 그만두면 한국 사람을 우습게 볼 것 같아 이 악물고 참았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 알민 그라츠 감독이 새로 부임하면서 그의 미래에 조금씩 불씨가 되살아나는 듯했다. 하루는 감독을 찾아가 처음으로 속에 있는 말을 꺼냈다. “게임 수당도 받지 않겠다. 뛰게만 해달라. 최선을 다해 실력을 보이겠다.”
“정말 절박했어요. 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 벤치만 지키고 있으니 얼마나 속이 터지겠어요. 엔트리 경쟁이 치열한 상태에서 후반이라도 뛰어 건재함을 과시해야 하는데 통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거예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감독을 찾아간 거죠.”
▲ 독일 진출전 부산 아이콘스에서 활약할 당시의 심재원. | ||
프랑크푸르트 구단에선 용병들 중 폴란드 출신의 크리스탈로비치와 중국의 양천, 그리고 한국의 심재원 등을 월드컵 출전 선수라고 소개하며 3명의 팬사인회를 개최하는 등 대대적인 홍보를 하기도 했었다. 그 또한 엔트리에 들어가는 걸 당연시했던 터라 팬사인회 참가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자신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순간 창피했다고 한다. 프랑크푸르트 축구팬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이틀동안 꼼짝 않고 누워만 있었다. 밥은 물론 물조차 거부했다. 사랑하는 아내 김수아씨(22)와 6월에 태어날 아기가 아니었다면 그 고통스런 시간들을 견뎌내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다행히 마지막 5경기에 연속 출장하며 한국 용병의 진가를 발휘했다.
“히딩크 감독이 원망스럽기도 했어요. 지난 우루과이전에서 실수했던 게 두고두고 상처로 남을 만큼 저에 대한 평가를 야박하게 하셨죠. 그러나 쓴 약을 달게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월드컵에서 뛰게만 해준다면 못할 게 없을 것 같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던 그였다.
히딩크에 대한 짝사랑이 원망으로 변해 그를 사정없이 흔들고 있었다.
[심재원 유럽잔류 부산구단 입장] ‘밑지는 장사’ 절대 안한다
심재원은 과연 유럽에 남을 수 있을 것인가. 부산아이콘스는 심재원을 프랑크푸르트팀에 임대할 당시 한 시즌 임대 후 완전이적 조항을 옵션으로 걸었는데 지난 3월31일 시한이 지날 때까지 옵션 행사에 대한 의사가 통보되지 않자 부산 아이콘스에선 심재원의 복귀를 당연시하고 있다.
부산 구단의 한 관계자는 “지난 4월초 프랑크푸르트에서 재정 악화로 인해 옵션 행사를 못하겠다는 최종 의사를 전해왔다. 선수가 아무리 남고싶어도 그 팀에서 내보내겠다는데 어쩔 도리가 없다”고 밝혔다.
심재원은 인터뷰에서 부산팀이 요구하는 높은 이적료를 삭감해달라고 간접 제안했지만 부산은 꿈쩍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구단 관계자는 “좋은 조건이라면 못 보낼 이유가 없다”면서도 “완전이적만 가능하다. 재임대는 꿈도 꾸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부산팀은 안정환 문제도 골칫거리다. 안정환도 심재원처럼 외국 잔류를 희망하고 있는데 어렵게 자리를 잡은 만큼 성공하기 전까진 귀국을 원치 않고 있는 것. 심재원, 안정환에다 월드컵 이후 외국 진출을 꾀하는 송종국까지 모두 소속팀 선수지만 하나같이 문제점들을 안고 있어 부산 구단은 골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하지만 부산의 입장은 단호하다. 구단관계자는 “이번엔 절대 양보할 수 없다. 언론에서 아무리 욕을 해도 안된다. 그런 일이 생겨도 무조건 우리 방식대로 밀고 나갈 것”이라며 의지를 확고히 다졌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