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이나 개인채무자의 회생을 위해 2006년 4월 도입된 통합도산법(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 올해로 10년째를 맞는다. 이 법률로 인해 빚에 허덕이던 사람들이 파산이나 회생 절차를 거쳐 재기의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연예인들도 마찬가지다.
# 이은하부터 심형래, 윤정수까지
1970~1980년대 왕성하게 활동했던 가수 이은하가 최근 개인 파산 절차를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거액의 빚을 감당할 수 없어 지난해 파산신청을 냈고, 서울중앙지법이 이를 받아들여 같은 해 8월 파산 선고와 함께 현재 면책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은하는 ‘밤차’, ‘봄비’ 등의 노래로 대중에게 친숙한 가수다. 지금도 중장년층에게는 인기 많고, 돈도 많이 번 가수로 인식되고 있다.
이은하가 빚더미에 앉은 이유는 건설 관련 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보증으로 떠안은 빚과 한때 자신이 직접 운영하던 연예기획사 운영 실패 탓이다. 이은하의 채무는 약 10억 원으로 알려지고 있다. 법원은 이은하에게 개인 회생 절차를 권유해, 빚을 탕감 받는 대신 일정 기간 채무를 갚아 나가도록 했다.
사실 이은하의 개인파산은 같은 전철을 밟았던 연예인들과 비교하면 ‘미약한’ 수준이다. 코미디언 심형래가 2013년 3월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을 때 갖고 있던 빚은 179억 원에 달한다. 영화 흥행 실패와 무리한 사업 확장에 따른 결과였다. 개인파산으로 빚을 탕감 받기까지 그의 인생은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심형래가 탕감 받은 179억 원은 연예인 개인파산 규모로는 가장 크다.
파산 이후 심형래는 한 방송사 인터뷰에서는 “면책 받은 179억 원의 10배인 1700억 원을 사회에 공헌할 기회를 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면책 받고 3년이 지난 현재 심형래는 이를 실현하기라도 하듯, 재기를 준비하고 있다. 이달 19일 심형래는 중국의 영화·드라마 제작사인 화인글로벌영상그룹으로부터 5억 위안(900억 원)을 투자받아 영화 <디워2>를 만든다고 밝혔다. 중국 베이징에서 제작발표회까지 연 그는 “올해 6월쯤 촬영을 시작해 내년 여름 개봉하겠다”고 알렸다. 국내에서의 사업 실패와 그에 따른 어려움으로 중국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은 셈이다.
연예인이 개인파산에 이르는 데는 주변 측근을 믿고 서준 ‘빚보증’의 여파가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개그맨 윤정수가 대표적이다. 1992년 SBS 개그콘테스트로 데뷔한 그는 20년간의 연예계 생활 동안 적지 않은 돈을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렇게 모은 돈은 지인의 빚보증과 사업실패가 맞물리면서 순식간에 날아가고 급기야 2013년 9월 파산 신고를 해, 12월 법원의 승인을 받았다. 당시 윤정수는 한 방송에 출연해 “무리한 사업과 잘못된 보증으로 20년간 벌어 놓았던 돈, 집, 사람 모두를 경매로 날려버렸다”고 밝혔다.
빚보증을 잘못 서 개인파산 한 윤정수. ‘자기야’ 방송 화면 캡처.
윤정수의 개인파산은 대중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심형래처럼 사업을 크게 벌이지도 않은 데다 착실하게 방송활동을 해온 개그맨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윤정수가 빚보증 탓에 파산에 이르게 됐다는 사실은 그를 향한 ‘동정론’까지 만들어냈다. 파산신청이 오히려 대중의 마음을 흔드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이런 동정 여론을 바탕으로 현재 윤정수는 파산하기 전보다 더 왕성한 방송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동료 개그우먼 김숙과 가상의 부부로 출연하고 있는 JTBC <님과 함께>로 얻는 인기는 상당하다. 덕분에 윤정수는 CF모델까지 됐다. 현재 모델로 활동하는 브랜드가 서너 편이다.
# 송대관과 박보검, 가족 때문에…
가족의 사업을 돕다가 채무에 시달리게 된 연예인도 있다. 가수 송대관은 부인의 사업 부실에 따른 부채로 개인파산 절차를 밟았다. 송대관의 아내는 상당한 규모로 부동산 관련 사업을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송대관은 대출금 채무 연대보증을 섰다가 빚을 졌다. 2013년 6월 개인회생을 신청한 그는 비슷한 시기 서울 이태원에 갖고 있던 주택 등 모든 재산을 처분해 빚 일부를 탕감 받았다. 평생 무대에서 노래한 송대관의 안타까운 상황을 걱정하는 여론도 많았다.
또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바둑기사 최택으로 출연해 스타덤에 오른 박보검 역시 집안 사정 탓에 20대 젊은 나이에 파선선고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그는 부모의 채무 연대보증으로 진 빚 때문에 지난해 3월 법원의 파산선고를 받았고, 이후 채권자의 동의를 얻어 이를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창 주목받는 청춘스타의 파산 사실로 인해 팬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박보검은 집안 사정으로 지난해 파산선고를 받았다. 사진제공=블러썸엔터테인먼트
연예인들도 예외일 수 없다. 파산선고를 한 연예인 전부 이를 통과한 것은 아니다. 가수 박효신은 전 소속사와의 전속계약 문제 탓에 법적인 공방을 벌였고 이를 통해 15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소속사 분쟁을 겪는 연예인에게 내려진 배상액 가운데 상당히 높은 액수다. 이에 박효신은 갚을 능력이 없다며 2012년 법원에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하지만 박효신이 내놓은 회생 계획안은 결국 채권자를 설득하지 못했고, 법원은 회생 중단 결정을 내렸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