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그러던 것이 3월 들어 변화가 시작됐다. 3월 3일 갑자기 3만 원을 넘어서더니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호재는 없었다. 그러나 붉은 화살표는 켜졌다. 오르는 종목엔 올라타야 한다. 너도나도 코데즈컴바인 주식을 사려는 통에 지난 15일엔 15만 1000원까지 솟구쳤다. 보름 만에 559%나 오른 것이다. 16일 장중에는 18만 4100원까지 치솟았다. 잠깐이지만 카카오를 제치고 코스닥 시가총액 2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코데즈컴바인 주가 급등 초기엔 증권가 전문가들도 속 시원하게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재무상태가 좋거나 펀더멘탈(기초체력)이 탄탄한 종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규 해외수주나 신상품 출시, 갑작스런 유명세 같은 이슈도 없었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합리적인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조금의 ‘명분’만 뒷받침되면 돈은 몰리는 데 몰리는 법이다.
코데즈컴바인 주가가 오른 명분은 유통 주식이 적다는 점이다. 코데즈컴바인의 상장주식 수는 총 3784만여 주. 대주주인 코튼클럽과 채권단은 이 중 3759만여 주를 보유 중이다. 이 주식은 보호예수로 묶여 있다. 실제 주식시장에서 유통할 수 있는 물량은 0.6%인 25만여 주에 불과하다. 유통 주식량이 적어 사려고 해도 살 수 없는 종목인 셈이다.
품절주 트렌드를 극명하게 보여준 코데즈컴바인 홈페이지 캡처.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이런 종목을 두고 ‘품절주’라고 한다. 코데즈컴바인뿐만 아니다. 경기침체 속에 워크아웃에 들어간 회사가 많아지면서 이런 품절주는 적잖게 생겼고 이런 종목에 투자하는 트렌드까지 생겨났다. 대표적인 사례인 승화프리텍의 경우 지난 1월 상장폐지로 정리매매에 돌입하자 42억 원에 불과했던 시가총액이 순간 1조 4969억 원까지 커지는 기현상을 연출했다.
상장폐지 전 정리매매는 기존 투자자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앞으로 휴지조각이 될지 모르니 투자자로선 최소의 투자금이라도 건지기 위한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물론 사려는 사람은 없다. 거래 금액도 100원 단위가 일반적이다. 승화프리텍은 지분을 10% 넘게 갖고 있던 개인주주 2명이 장외거래를 통해 회사 대표에게 넘긴 매각가는 주당 333원이었다.
그런데 정리매매 시작과 함께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 4만 원대로 치고 올랐다. 물론 투자자들은 당혹감을 나타냈다. 이때도 유통 주식 수가 적다는 점이 원인이었다. 당시 승화프리텍은 감자를 거치면서 주식 수가 크게 줄었고, 대주주의 지분은 보호예수에 묶여 처분할 수 없었다. 발행주식 수 3700만 주 중에 20만여 주만 거래할 수 있었다. 정리매매의 경우 30%의 상하한가 제한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투기성 자금이 대거 유입됐고, 주가 상승을 지켜본 개미투자자들의 추격 매수가 뒤따랐다.
상장폐지 종목인 승화프리텍의 시가총액은 순간 코스닥 10위권으로 올라섰다. 증권가에서는 일부 투기 세력이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여 ‘매수주문-취소주문’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주가를 뻥튀기했다고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승화프리텍을 고가에 판 투자자들은 큰돈을, 마지막에 주식을 안고 있던 투자자는 거액의 피해를 입었다. 위험한 ‘폭탄 돌리기’였던 셈이다.
가구업체 팀스도 3월 중순부터 급등하며 1만 원대 중반이었던 주가가 3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회사 측도 공시를 통해 ‘주가가 급변할 요인은 없다’며 당혹감을 나타냈다. 팀스의 상장주식 수는 200만 주, 유통주식 수는 25만 주 정도다.
마찬가지로 품절주로 분류되는 천일고속과 신라섬유도 덩달아 뛰었다. 천일고속 주가는 3월 초 6만 원이었던 것이 11만 원선까지 치솟았다. 천일고속의 상장주식 수는 142만 주, 유통주식 수는 21만 주밖에 안 된다. 나머지 85%의 지분은 오너 일가가 지키고 있다. 신라섬유는 1만 3000원에서 10거래일 만에 2만 4500원으로 100% 가까이 올랐다. 신라섬유는 485만 주를 상장했으며, 이 중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82%를 보유하고 있다.
근래에는 품절주 테마가 유가증권시장으로도 옮겨 붙는 분위기다. 자본잠식 해소로 3월 중순 관리종목에서 해제된 대한전선 주가는 3000원에 못 미쳤던 것이 2거래일 만에 70% 가까이 올랐다. 재무구조 개선 효과도 있지만, 실제 유통되는 주식 수가 2.74%에 불과하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
한국거래소는 이 같은 주가 급등을 작전 세력이 주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일부 의심 가는 투자자와 외국계 증권사의 계좌를 살펴보고 있다는 전언이다. 거래소는 조사가 끝나면 금융당국에 그 내용을 전달할 예정이다. 또 유통 주식이 10만 주 미만으로 떨어지거나 유통 주식 비율이 낮으면 거래를 정지하는 내용의 시장관리 방안도 내놨다.
그러나 문제를 잡기엔 너무 늦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미 폭탄 돌리기에 무수한 피해자가 발생했고, 보상의 길도 없다. 시세를 조종한 세력은 돈을 챙겨 떠났다. 과거에도 품절주 투자가 있었지만, 거래소가 이에 대한 사전 준비 없이 안일한 대응을 했다는 비판도 있다. 지난 1999년 대구백화점은 워크아웃 중에 우선주가 29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유통 가능한 주식 수는 4280주에 불과했고, 하루 거래량은 10∼400주밖에 되지 않았다.
최근 인터넷 주식투자 카페에서는 ‘세력주’와 ‘테마주’ 키워드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유가증권시장이 ‘박스피(박스권+코스피)’라 놀림 받을 정도로 1900~2100선에서 갇혀 있어서다. 많은 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로선 이슈의 흐름을 탈 수 있는 종목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테마주 투자는 지난 3~4년 새 국내 주식시장에 자리 잡은 가장 큰 흐름이다. 세력을 비롯한 여러 투자자의 시선이 테마를 찾아다닌 끝에 코데즈컴바인처럼 위험성 높은 종목까지 찾아온 것이다. 투자자의 수익 갈구와 박스권에 갇힌 증시, 시장의 풍부한 유동성, 바닥난 테마, 이를 이용하려는 누군가의 의지가 어우러져 나타난 결과다.
올해 들어 이런 품절주 폭탄 돌리기가 여의도 증권가를 흔들고 있다. 이미 ‘전문가’들 사이에선 유행이 끝났을 수도 있다. 시장은 빠르게 변화하는데, 당국의 대응은 늦기만 하다. 언제나 도둑은 빠르고 경찰은 늦은 셈이다.
김서광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