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위치한 역술인 이 씨 자택. 일요신문DB
최 씨는 지난해 9월에도 이 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당시 최 씨는 자신의 회사가 대기업 협력업체로 선정될 수 있도록 이 씨가 힘을 써주겠다며 돈을 받아 가로챘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이 씨는 최 씨 측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상해를 입기도 했다.
최 씨는 이 씨가 현 정권 유력 인사들을 언급하면서 도와주겠다고 해 11억 원을 건넸지만 일이 성사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돈도 돌려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이 씨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정권 실세를 보고 돈을 건넸다는 얘기다. 이 씨는 검찰 수사에서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정당국 주변에선 이 씨 사건이 정치권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 씨가 정윤회 씨를 비롯해 친박 인사들과 가깝다는 점 때문이다. 이 씨가 청탁성 민원을 실제로 넣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단순한 사기 사건은 권력형 비리로 확전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기서 잠깐. 이 씨가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권력형 비리까지 거론되는 것일까. 이 씨가 세간에 알려지게 된 것은 정 씨를 통해서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정 씨를 만나고 있었다는 소문을 언급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 대한 명예훼손 고발 사건에서 검찰은 정 씨를 불러 그 진위를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정 씨가 참사 당일이던 4월 16일 역술인 이 씨를 만났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씨와 정 씨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1998년 박근혜 대통령이 오랜 칩거를 깨고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던 때로 알려져 있다. 박 대통령이 지역구를 두고 고민하는 것을 본 정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학계 인사를 통해 용하기로 소문 난 이 씨를 소개받았다. 이 씨는 정 씨에게 “어디를 나가도 당선될 것”이라며 박 대통령 고향인 대구 달성 출마를 권유했다고 한다.
이 씨는 극히 소수의 인사들만 고객으로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엔 재벌 일가와 정치권 인사들이 포함돼 있다는 후문이다. 한 대기업 총수가 이 씨 관상 평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백지수표를 제시했다는 일화도 있다. 한 역술인은 “이 씨가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과거 몇 차례 정권 동안 실세들과 가깝다는 소문은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유명세를 탔다”고 귀띔했다.
이 씨가 정치권을 통해 부적절한 민원을 해결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받아들여진다. 앞서의 사기사건 고소인 최 씨로부터 돈을 받은 이 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친박 인사들을 통해 대기업에 압력을 넣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 씨는 최 씨 앞에서 실세들과 전화통화를 하는 등 친분을 과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세월호 참사 때 정 씨가 이 씨를 만났다는 뉴스가 보도된 후에도 이런 말이 나왔다.
당시 기자와 만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 씨가 ‘정 씨가 세월호 참사 당일 만났다는 역술인이 바로 나’라며 오히려 현 상황을 이용하고 있더라. 정 씨에게 줄을 대기 위한 정·재계 인사들이 이 씨를 방문했을 수 있다. 인사 청탁과 같은 부적절한 얘기가 오갔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씨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 정권 인사들과 특별히 친분을 쌓은 적이 없고 이권 청탁을 한 적도 없다. 정윤회를 소개해달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내가 다 거절했다”며 부인했다.
검찰도 이 부분에 대한 확인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는 “실패한 로비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즉, 이 씨가 실제로 움직였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이 씨가 실세들 이름을 언급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지 않고서야 최 씨가 11억 원이라는 거액을 선뜻 이 씨에게 줬겠느냐. 이 씨와 정치권 간 연결고리도 살펴볼 것”이라고 전했다.
친박 핵심부는 일단 부담스러운 모습이다. 이 씨가 거론될 경우 또 다시 ‘정윤회’라는 이름이 언론 지상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는 까닭에서다. 한 친박계 의원은 “정 씨 관련된 사안은 너무 민감하다. 우리도 금기시하는 이름 아니냐. 청와대도 껄끄러워할 것이다. 민정 라인이 좀 더 철저하게 이 씨에 대한 관리를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박 대통령 대선 캠프 출신 원로 인사는 이 씨가 일방적으로 정 씨 등의 이름을 팔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그는 “이 씨는 과거에도 정권 실세 이름을 대며 민원을 해결해주겠다고 돈을 받아 사법처리를 받은 적이 있다. 이번에도 비슷한 사례 아니겠느냐”면서 “단순한 사기 사건에 불과한 것을 정치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