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순 서울시장 ‘흐림’
지난 3월 23일 오후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로에 위치한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후보 선거사무소 전경. 임준선기자 kjlim@ilyo.co.kr
지난 3월 23일, <일요신문>과 만난 박원순 서울시장의 최측근의 말이다. 그는 “무대 자체가 달랐다. 박 시장은 서울시장 ‘커리어’가 정치 경력의 전부다”며 “주변부 권력이었던 박 시장이 처음으로 핵심부 권력에서 ‘합’을 겨뤄본 것이다. 당연히 한계가 있다. 힘을 못 써서 좀 안타깝지만 실망하긴 이르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이번 총선 공천 경쟁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박 시장이 지원사격을 했던 측근들이 대부분 공천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임종석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은평을)은 강병원 전 노무현대통령 비서실 행정관에게 경선에서 졌다. ‘정치 신인’ 강 전 행정관이 ‘박원순맨’ 임 전 부시장을 꺾고 파란을 일으킨 것. 임 전 부시장은 2014년 6·4 지방선거 때 박원순 캠프의 총괄팀장을 맡았다. 캠프에서 함께 뛰었던 권오중 전 서울시장 비서실장(서대문을)도 경선에서 탈락했다.
이외에도 ‘박원순 키즈’들은 대부분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장백건 전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상임감사(서울 중·성동갑)도 홍익표 의원에게 패배했다. 민병덕 변호사(경기 안양 동안갑), 오성규 전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이사장(서울노원갑), 강희용 전 서울시의원(서울 동작을) 등도 마찬가지다. 유일하게 생존한 이들은 단 두 사람.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성북을)과 천준호 전 서울시장 비서실장(강북을)이 주인공이다.
박 시장의 대권가도에 ‘빨간 불’이 켜진 셈이다. 박 시장이 유독 고전한 이유는 뭘까. 앞서 최측근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박 시장처럼 아예 밖에 있다가 정치를 행정으로 시작한 경우는 없다. 총선 무대와 행정 무대는 좀 다르다. 지금까진 더민주 당원의 자격으로 도와준 것뿐이다. 박 시장이 정치적으로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나 싶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노무현 대통령을 초기부터 만나 여의도 정치권에서 조직을 다졌고 청와대도 거쳤다. 즉 자기 그룹이나 세력이 있지만 박 시장의 정치 경력은 채 5년도 안 된다. 박 시장도 이번 총선 때문에 고민이 많을 거다.”
# 안희정 충남도지사 ‘쨍쨍’
안희정 충남도지사.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지난 24일 충남지역에 도전장을 던진 한 후보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일찌감치 공천을 확정지은 그는 “안 지사의 선거대책본부 임원 또는 비서실장 경력들이 경선 당시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다”며 “안 지사가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김종인 체제에서 그럴 여지가 없다. 다만 측근들이 많이 약진했기에 안 지사의 정치적 ‘파워’가 세졌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안 지사는 그야말로 ‘만점’ 성적표를 받았다. 본선이 남아 있어 섣불리 판단할 수 없지만 ‘안라인’이 저력을 보인 것. 안 지사의 대학동창이자 최측근, 정재호 전 청와대 비서관(고양 덕양을)이 공천을 확정지었다. ‘문재인계’ 문용식 더민주 덕양을 지역위원장과 ‘손학규계’ 송두영 전 지역위원장을 꺾고 본선 무대에 오른 것이다.
안 지사의 비서실장 출신 조승래 전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대전 유성을)도 승기를 잡았다. ‘친안 인사’ 박수현 의원(충남 공주·부여·청양), 김종민 전 청와대 대변인(충남 논산·계룡·금산), 나소열 전 서천군수(충남 보령·서천), 이후삼 전 충남도 정무비서관(충북 제천·단양) 등도 공천을 거머쥐었다.
안 지사의 대권 기상도는 ‘맑음’이다. 안 지사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다른 측근의 분석이 눈길을 끈다.
“수도권에서 선거운동을 해보면 안 지사에 대한 거부감을 찾을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를 꺼내면 어르신들이 얼굴을 찌푸릴 때도 많다. 문재인 대표도 마찬가지다.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안 지사 얘기만 꺼내면 그런 불편함이 사라진다. 중립지대인 충청도 출신이란 점도 작용 하는 것 같다. 호남 민심이 더민주에 완전히 돌아섰을 때도 안 지사만큼은 예외였다. 안 지사가 두루두루 호감을 가지는 인물이란 뜻이다.”
# 원희룡 제주도지사 ‘폭설’, 남경필 경기도지사 ‘우박’
원희룡 제주도지사.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다른 예비후보들은 전멸했다. 선거 초기부터 ‘원희룡 마케팅’을 펼친 현덕규(제주을) 강영진(서귀포) 예비후보 역시 경선에서 탈락했다. 박정하(강원 원주갑) 윤석대(대전 서구을) 정근(부산진갑) 예비후보도 다르지 않았다.
특히 제주갑 지역은 원희룡 마케팅을 둘러싸고 후보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장성철 국민의당 후보는 지난 14일 “총선 이후 양치석 후보의 원희룡 마케팅 때문에 제주사회가 도지사를 중심으로 갈등과 분열이 생겨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강창일 후보는 지난 25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양 후보는 원 지사를 선거에 이용하려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양치석 후보 측은 “원희룡 도지사는 외롭다. 우리가 원도정의 힘을 입어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원 지사의 도정이 성공해야 제주의 발전이 있다”고 해명했다.
한편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기상도엔 ‘우박’이 내리고 있다. ‘남 라인’으로 분류되는 박수영 전 경기도 행정1부지사(경기 수원정)의 공천으로 간신히 체면치레를 했을 뿐이다. 남 지사의 최측근 이종훈 의원(성남 분당갑)은 컷오프를 당해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승철 전 경기도의회 의원(수원병)도 경선 탈락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대선후보가 총선에 자기사람을 심는 것이 유불리에 영향은 있을 수 있지만 대선가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 자체는 성립할 수 없다”며 “대선주자들이 대선후보로 성장할 수 있는 내공을 갖추고 있다면 자신 주변에 여의도에 입성한 최측근이 몇 명이 있느냐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치력 또는 리더십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런 능력이 있다면 대선후보감으로 있는 사람에게 개별 국회의원들이 자연스레 붙는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