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최근 기수 A 씨와 B 씨가 승부조작에 가담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들은 사설경마장 운영자 김 아무개 씨로부터 승부조작 대가로 각각 5000만여 원을 건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제공=한국마사회.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대전 신미주파 조직원 이 아무개 씨를 지난 10일 구속기소했다. 이씨는 지난해 7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사설경마장 운영자들을 모집하고, 이들에게 실제 경마 동영상을 전송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 씨는 사설경마장 운영자 김 아무개 씨 등으로부터 현금 1600만여 원을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사설경마장 운영자 김 씨는 한국마사회법 위반 등 혐의로 지난해 12월 14일 재판에 넘겨졌다. 김 씨는 2010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약 3200회에 걸쳐 223억여 원의 사설 마권을 판매한 혐의를 받았다. 또 김 씨는 경마 승부조작에 가담하는 대가로 기수 이 아무개 씨에게 28회에 걸쳐 1억 2000만여 원을 건넨 혐의도 받고 있다.
최근 검찰은 이 씨뿐 아니라 기수 A 씨와 B 씨도 승부조작에 가담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들은 김 씨로부터 승부조작 대가로 각각 5000만여 원을 건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검찰은 A 씨와 B 씨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도주의 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지난 1월 검찰은 A 씨와 B 씨 등 승부조작에 가담한 전·현직 기수 6명을 불러 조사를 진행했다. 이들은 당시 조사에서 혐의를 대부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장이 청구된 A 씨의 경우 승부조작에 관여한 횟수는 11차례에 달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조직폭력배와 사설경마장 운영자, 6명의 기수가 얽힌 이 사건은 그 파장이 서울 마방(말의 훈련소)으로까지 번졌다. 서울 경마장에서 마필관리사로 재직한 권 아무개 씨는 지난 2014년 한 마주(말의 소유주)로부터 수천만 원의 금품을 받고 경마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최근 구속됐다. 검찰은 권 씨가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로부터 돈을 건네받아 약 20억 원을 사설도박에 쓴 사실도 함께 확인했다.
3월 초 검찰은 권 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권 씨가 삭제한 메시지 내역을 일부 복구했다. 검찰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권 씨는 다수 ‘고객’에게 구체적인 경마정보를 제공하고 금품을 건네받았다. 그동안 권 씨는 서울 경마장 소재 마방에서 경주마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다. 권 씨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마 비리 수사 확대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윗선’으로의 수사 가능성은 낮게 보면서도 “공직기강을 다잡으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앞서 검찰은 공기업 성격이 강한 농협, 포스코, KT&G 등을 수사한 바 있다.
현재 검찰은 권 씨에게 돈을 준 또 다른 마주들을 상대로 수사를 확대 중이다. 마주는 말을 마사회 경주에 출전시키고 우승상금을 챙길 수 있다. 혈통에 따라 다르지만 좋은 경주용 말은 아파트 한 채 값을 상회한다. 일반 경주용 말도 시세는 수천만 원에 이른다. 이 같은 이유로 말의 소유주는 대부분 재력가라고 전해진다.
권 씨에게 수천만 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마주는 말 4필을 소유한 것으로 확인된다. 지난 한 해 동안 이 마주는 2억 5000만여 원의 수입을 올렸다. 올 들어서는 3개월 동안 7600만여 원의 수입을 기록했다. 이 마주의 승부조작 연루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지난 24일 “이 사건과 관련해 또 다른 마주 C 씨가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며 “C 씨가 여러 말을 소유하고 경주에 내보냈다. 단 (전달된) 금품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 마주들을 포함해 모두 10~12명을 수사선상에 올렸다. 승부조작 등에 얽힌 돈은 대략 40억 원을 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마사회 안팎에선 직원 연루설이 증폭되고 있다. 마사회 내부에 정통한 한 인사는 “일명 ‘맞대기 도박’을 위해선 내부 직원들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게다가 마사회는 6명의 기수가 승부조작에 관여하며 단속망의 허점을 드러냈다. 용역을 준 마방에서는 반입이 금지된 휴대전화가 자유로이 이용됐다. 마사회 PR팀 관계자는 지난 25일 “검찰 수사에 대해선 조심스런 입장” 이라며 “확인해 본 바 내부 직원은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자세한 언급은 어렵다”고 해명했다.
올 들어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공개 브리핑을 하지 않았다. 내부 직원의 연루 가능성에 대해 감사원 측은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관계자는 “진행 중인 수사라 외부 보안을 신경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윗선’으로의 수사 가능성은 낮게 보면서도 “공직기강을 다잡으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보탰다. 앞서 검찰은 공기업 성향이 강한 농협, 포스코, KT&G 등을 수사한 바 있다. 이들 기업에 대한 수사와 달리 승부조작 수사는 강력부가 맡고 있어 마사회를 직접 겨냥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현명관 마사회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이른바 ‘7인회’ 멤버로 주목받은 원조 친박이다. 수사팀으로서도 마사회를 수사하는 건 정치적인 부담이 상당하다. 실제 검찰은 지난 ‘정윤회 국정개입 파문’ 당시 승마업계와 관련한 여러 의혹에 대해 함구했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정치적 방향성이 있는 건 우리가 하기 어렵다”고 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