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엔 남다른 출신과 잘생긴 외모로 주목을 받았지만 이젠 본인의 실력으로 ‘이름값’을 하고 있는 듯하다.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인기요? 전 젊은 여성보다는 아줌마 팬들이 더 많아요. 일본에선 정말 그랬어요. 나이 어린 분들은 별루 저 안 좋아해요.”
J리그의 나고야 그램퍼스 시절 때 알게 된 한 여성 팬이 일 때문에 한국에 들어왔다가 일부러 안영학을 보기 위해 혼자서 부산까지 찾아왔다. 클럽하우스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얘기를 나눈 뒤 여성 팬과 작별 인사를 고한 안영학에게 여성팬들로부터 인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하자 여자가 아닌 아줌마들 팬이 더 많다고 변명(?)을 했다.
안영학은 에이전트 소속의 담당 매니저와 아파트에서 동거 생활을 한다. 남자와 생활하는 부분에 대해 잔뜩 궁금증을 갖고 있는 기자에게 자신은 여자와 사는 것보다 남자랑 사는 게 더 편하다고 말한다. 이유는 트러블이 없어서라고. 그래서 기자가 여자랑 살아봤냐고 ‘농담처럼’ 물었더니 정색하며 막연한 상상에서 나온 생각이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향수병이나 J리그에 대한 그리움 등은 안영학과 큰 관계가 없어 보였다. 한국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역시’ 경기장을 찾는 관중들이었다. J리그에 비해 워낙 관중 수가 적다보니까 아쉬움이 큰 듯했다.
K리그 선수들의 플레이에 대한 소신있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 선수들은 몸싸움이 상당히 거칠어요. 바로 뒤에서 태클을 하기도 하고 터프한 플레이를 즐기는 것 같아요. 처음엔 적응이 쉽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저도 절로 터프해지더라구요. 가끔 심판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판정을 내릴 때가 있어요. 그럴 경우엔 가볍게 항의하고 맙니다. 웃으면서 말이죠. 심하게 어필하면 경고 받잖아요.”
▲ 지난 25일 경기에서 골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기뻐하는 안영학. 연합뉴스 | ||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게 한국에서 많은 걸 배우고 있기 때문이에요. 터프하게 축구하는 부분을 포함해서요. 그렇게 플레이하려면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체력을 더욱 키워야 하거든요. 한국 생활이 제일 좋은 게 뭔지 아세요?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거죠. 절 불러낼 사람도, 절 만나러 올 사람도 없기 때문에 오로지 축구만 생각할 수 있어요.”
J리그 시절 노정윤, 안정환, 유상철, 조재진, 최태욱 등과 경기장에서 상대팀 선수로 만난 적이 있다는 안영학에게 가장 인상적인 플레이어를 꼽아달라고 주문했다.
“글쎄요, 한국 선수들이 워낙 투지나 몸싸움 등에서 월등하기 때문에 다 기억에 남아요. 특히 제가 만난 선수들은 승리에 대한 집념과 의지가 무척 강했어요. 아, 안정환 선수(요코하마 시절)는 제가 막질 못했어요. 워낙 드리블하면서 치고 나가는 능력이 탁월해 수비가 안 되더라구요.”
안영학은 소속팀의 후배들이 J리그 진출에 대해 의견을 물을 땐 솔직한 생각을 전해준다고 한다. 어느 리그든 다른 나라의 리그를 접해 보는 게 자신의 축구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한국에 없는 것이 일본에 있는 것처럼 일본에 없는 것이 한국에 있잖아요. 저도 그래서 한국에 온 거구요.”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고 있는 안영학이 한국 선수 중에서 존경하는 사람은 홍명보 대표팀 코치다. J리그에서는 물론 2002년 월드컵 당시 그의 성실한 플레이와 안정적인 수비 등에 매료됐다는 안영학은 같은 포지션에선 김남일의 플레이를 최고라고 꼽았다. 김남일의 별명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진공청소기’ 아니에요? 공격수들을 꼼짝 못하게 만든다는 뜻이잖아요. 전 김남일 선수의 플레이가 참 좋아요. 터프하면서도 성실하고 게임을 풀어가는 데 여유가 느껴지구요, 경험 있는 선수만이 할 수 있는 패스의 정확도 등은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예요.”
그렇다면 안영학이 김남일보다 나은 건 없을까?
“음… 도전자로서의 마음? 김남일 선수에 비해 경험도 적고 실력도 떨어지니까 도전할 게 계속 생기잖아요. 도전에 대한 의지 등은 김남일 선수보다 제가 훨씬 더 크겠죠.”
프리미어리그 경기가 생중계되는 덕분에 안영학은 이영표와 박지성의 경기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며 좋아했다. 축구 선수가 보는 이영표, 박지성은 어떤 선수냐고 물었다.
“힘과 스피드요. 기술은 당연히 있구요. 플레이에 자신감이 넘쳐나요. 멘털이 남다른 선수들인 것 같아요. 아주 자랑스러워요. 저도 유럽리그를 꿈꾸고 있기 때문에 두 선수의 활약에 용기를 갖게 됐어요.”
▲ 2002년 남북통일축구대회를 위해 한국을 찾았던 안영학(맨 왼쪽). | ||
때가 때인지라 월드컵과 관련된 질문이 빠질 수 없었다. 기자가 “외국에선 한국의 4강 신화를 홈 그라운드의 이점과 심판 판정 덕분이라고 보기도 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다. 안영학이 반응이 재밌다.
“어휴, 전 그럴 때마다 열 받아요. 한국 선수들이 얼마나 열심히 뛰었고 강한 정신력을 보여줬는데요, 나고야 있을 때 2002년 월드컵이 벌어졌거든요. 그때 몇몇 동료들이 한국의 성적을 그런 식으로 비웃어서 절대 아니라고 맞받아친 적이 있어요.”
안영학은 일본의 동료 선수들이랑 월드컵 우승팀 알아맞히기 내기를 했다고 한다. 선수들은 일본이 아닌 프랑스, 브라질 등에 돈을 걸었고 안영학만 한국을 우승팀 후보로 꼽았다. 한국이 예상 외의 선전을 하면서 16강에까지 진출하자 동료들이 모두들 ‘이러다 영학이 대박나는 거 아니냐’며 놀라워했다는 후문이다.
“왠지 한국팀이 일을 낼 것 같았어요. 제가 간절히 응원하면 더 좋은 성적을 낼 것도 같았구요. 4강에서 독일과 붙었을 때는 저도 떨리던데요.”
안영학은 인터뷰가 있는 날 월드컵대표팀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평가전이 있다며 경기 보면서 응원할 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팀의 예상 성적을 ‘재미삼아’ 물어봤다. “만약 한국이 16강까지 오르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이번엔 원정 경기잖아요. 특히 홍명보, 황선홍 등 선수들에게 정신적으로 도움이 된 선수들이 모두 빠져 좀 어려움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첫 골요? 흠 박지성 선수요? 아니 박주영 선수요. 박주영 선수는 골 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가장 결정적일 때 한 골씩 터트리더라구요, 그건 타고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안영학은 대표팀 선수 중에서 박지성에 대한 부러움이 한가득이었다. 가장 닮고 싶은 모델이란다. 박지성의 자서전 성격의 <멈추지 않는 도전>을 읽은 뒤론 색다른 감동까지 받았다. 어려운 단어는 국어사전을 찾아가면서 읽었는데 박지성의 축구 인생을 새롭게 알게 돼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박지성 선수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대표팀에서 가장 많은 부담을 갖고 있는 선수일 거예요.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중심을 잃지 말고 박지성 선수다운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응원할 게요. 박지성 선수는 물론, 한국팀을요.”
언제까지 한국 생활을 계속할 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의 축구팬들에게 ‘시시하지 않는 축구선수로, 괜찮은 축구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는 안영학은 이젠 더 이상 호기심의 대상으로 자리하지 않았다. 축구를 사랑하고 한국을 아끼면서 ‘눈치보지’ 않고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응원할 수 있는 스물여덟 살 청년이었다. 축구는 세계 속에서 통하는 하나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