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 사당동 소재 한 주택에 거주하는 이상헌 씨(48)는 만성두통과 피부염 증상을 겪고 있었다. 그는 신체 이상 징후의 원인으로 옆 건물의 중계기 설치를 지목했다. 이 씨는 “2014년 살고 있는 주택 바로 옆 건물에 중계기가 설치된 뒤 만성두통이 생겼고 피부염 증상이 나타났다”며 “몸 상태가 갑자기 나빠진 것에 대해 원인을 생각하면서 변화된 환경 요인을 따져보니 중계기 설치 하나밖에 없었다. 모시고 있는 부모님 역시 만성두통을 호소하고 있다. 알아보니 건물주가 주민들 동의 없이 설치했다”고 말했다.
주택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중계기 설치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유사 질환을 겪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인근 주택에 거주하는 최 아무개 씨(여·73)도 “남편이 심장질환을 앓다가 수술을 했는데 10여 년 전에 중계기를 설치한 이후부터 질환이 생겼다”며 “중계기 인근 주민들 역시 신체에 이상이 생겨 건물주에게 철거를 요청했지만 건물주가 건물을 팔고 떠나버려 아직까지 중계기는 남아있다. 전자파를 피해 이사를 가고 싶어도 이사 갈 여건이 안 된다. 정작 건물주는 이곳에 살고 있지 않으면서 돈을 벌고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아파트가 아닌 주택 등 개인 소유 건물의 경우에는 건물 소유주의 동의만 있으면 설치가 가능했다. 문제는 일반 사무실이나 다가구주택의 경우 설치된지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건물주는 이동통신사와 중계기를 설치할 때 건물 세입자들의 동의 없이 최소한 1년 이상의 임대차계약을 맺는다. 이때 건물주는 중계기 설치임대료로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 보상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이 이뤄진 뒤에는 건물 세입자들이 철거를 요청해도 계약 파기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중계기가 철거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주택이나 일반 건물은 건물 소유주의 동의만 있으면 설치가 가능하다. 전기사용량이 얼마나 많으며 얼마나 근접한 거리에 기기가 있느냐에 따라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달라진다”며 “기지국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명확한 사실관계는 아직 이론적으로 밝혀지지 않아 사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2011년 세계보건기구는 휴대전화와 휴대전화 중계기에서 전파되는 전자파 및 무선주파수를 발암가능물질로 분류했다. 또 역학조사와 생물학적 실험을 통해 고주파에 노출될 경우 소아백혈병, 기억력 상실, 뇌종양, 불면증, DNA손상 등의 위험성이 크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동통신사에 중계기 철거를 요구하는 진정서와 주민들 서명 명단. 하지만 개인 소유 건물은 건물주의 동의 없이는 철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래창조과학부 등에 따르면 중계기는 전파법에 따라 주파수 할당을 받은 이동통신사가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계약을 통해 설치한 시설이기에 철거를 강제할 수 없다. 이 씨는 인근주민 180여 명의 서명을 받아 해당 이동통신사에 중계기 철거를 요청했지만 ‘계약을 했기 때문에 건물주와 이야기를 해야 하며 철거 시에는 철거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답변만 들었을 뿐이다. 이에 대해 건물주는 “계약기간 도중에는 철거할 수 없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철거하겠다”고 답했다.
반면 아파트의 경우에는 주택법에 따라 입주자대표회의를 조성해 과반수의 찬성으로 중계기 설치 사항을 의결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입주자대표회의를 통해 중계기 철거가 가능하며 중계기 설치 전에 입주자대표회의를 통해 합의가 이뤄지는 절차가 마련됐다.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서도 옥상 중계기 설치를 위한 주민설명회가 있었다. 일부 주민들은 “옥상 중계기가 24시간 내내 고주파 전자파를 뿜어내기 때문에 혐오시설로 봐야한다. 통신사에서는 전자파 수치가 허용기준을 넘지 않아 무해하다고 하지만 통신사 직원도 반대를 하고 있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가구 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아파트에 주택보다 중계기와 기지국이 더 많이 설치되는 경향이 있지만 아파트는 입주자들이 반대할 경우 철거되거나 소형기기로 대체된다. 안테나의 방향을 조정하거나 매몰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며 “철거를 할 경우에는 통화품질이 떨어져 음영지역으로 지정될 수 있고, 소형기기가 중계기의 품질을 완전하게 대체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휴대폰의 통화품질 향상을 위해 이동통신 중계기는 아파트와 같은 고층건물 옥상에 설치된다. 이동통신사에서는 통화품질 관련 민원이 들어오거나 자체적으로 통화품질 향상을 위해 이동통신 중계기를 설치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에 설치된 이동통신 중계기는 89만 대에 이른다. 이동통신사 별로는 SK가 42만 2000대, KT가 23만 3000대, LG가 23만 4000대를 설치했다.
중계기 내부에는 증폭기가 포함돼 있다. 이 증폭기를 통해 전압과 전류를 키워 안테나로 고주파 에너지를 전송하는데 이때 전자파가 발생한다. 안테나를 통해 중계기로부터 휴대폰과 같은 단말기에 전자파가 전달된다. 역학 연구에 따르면 단말기에서는 인체에 유해할 정도의 전자파가 발생하지만 기지국을 통한 유해 정도는 입증되지 않은 상태다. 김덕원 연세대 의대 교수는 “기지국의 전자파 세기가 가전제품보다 낮지만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연구가 덜 된 상태”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경기도의회에서는 어린이집에 기지국 설치를 제한하는 조례를 공포한 데 이어 유치원과 초등학교까지 범위를 확대하는 조례인 ‘경기도교육청 전자파 안심지대 지정․운영 조례’를 추가로 발의해 지난해부터 시행 중이다. 기지국 설치를 자유롭게 하는 전파법에 어긋나고 통신사업자와 건물 소유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이의도 있었지만 건강에 대한 최우선적 권리를 준수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
철거되거나 주민들 짐싸...피해사례 역학조사 전무 전자파 피해 사례가 제기될 때마다 중계기 철거 이외에 역학관계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아 새로운 곳에서 전자파 노출 피해는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 2014년 과천시 부림동의 과천주공아파트 7단지 주민들이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시달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주민들은 이동통신사가 설치한 중계기에 의한 전자파 공해를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2005년부터 아파트 내 지상 50m 높이에 위치한 굴뚝에 이동통신사 3사가 중계기 30여 대를 설치한 것이었다. 20여 명의 주민들은 전자파 중 인체에 해로운 자기장파 때문에 두통과 불면증, 유방암과 폐암을 앓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질병과 전자파 노출 관계를 분석하는 역학조사를 요구했고 설치됐던 모든 중계기는 철거됐다. 그러나 역학조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해당 주민들은 이사를 가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이후 중계기는 추가적으로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