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0년 첫 월드컵에 출전한 뒤 4회 연속 선수로 참가했으며 이번 2006 독일월드컵에서는 코치로 벤치에 앉았던 홍명보. 대표팀의 코치 이전에 맏형으로 선수들을 독려하고 힘을 불어넣어준 그가 많은 회한을 뒤로 하고 한국대표팀의 2006 독일월드컵을 마무리했다. 스위스전 직후 믹스트 존과 스위스전 이전에 가진 단독 인터뷰를 통해 코치 홍명보의 월드컵 이야기를 모아본다.
홍명보 코치는 비록 석연치 않은 심판의 판정이 두고두고 아쉽지만 선수들이 배운 게 많았던 월드컵이라고 설명했다.
“전술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기술적으로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앞으로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 결과를 수용하는 대신 우리가 뭘 배워야 할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장점은 많지만 16강에 오를 만한 힘이 없었던 것 같다.”
홍 코치는 선수로 뛸 때와 코치로 활동하는 지금과의 가장 큰 차이에 대해 ‘선수 선발 과정’이라고 대답했다
“선수 때는 몰랐다. 그러나 코치가 된 이후 경기 출전 선수를 결정짓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모든 선수들은 경기 나가길 원하는데 나가는 건 한정돼 있지 않은가. 선택되지 못한 선수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월드컵 조 예선 세 차례의 경기에서 선수 선발과 관련해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토고전을 앞두고 라인업을 짤 때였다고 한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전혀 예상을 할 수 없었다. 경기 전에 토고가 문제가 많은 팀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수들이 어떤 반응을 나타낼지도 고민이 되었다.”
경기 전날 선발 라인업을 짤 때 아드보카트 감독과 핌 베어벡 코치, 압신 고트비 코치, 홍명보 코치는 머리를 맞대고 선수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 그때 가장 격렬하게 맞붙는 사람이 아드보카트 감독과 핌 베어벡 코치다.
“처음엔 그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많이 당황했던 게 사실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 또한 내 의견을 정확히 제시했고 반드시 선발 투입해야 할 선수에 대해선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최종 결정은 감독의 몫이지만 말이다.”
홍 코치는 프랑스전에 대해선 이렇게 회상했다.
“월드컵을 치르면서 수비 조직에 대해 선수들에게 많은 얘기를 했다. 상대해야 할 팀들이 워낙 강팀이다보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수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전 때는 수비수들이 많이 당황해 했다. 프랑스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게 압박해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반전에 첫 골을 먹고 후반 들어 경기력이 좋아진 부분에 대해서 홍 코치는 크게 만족해 했다.
“예전 같으면 또 다시 골 먹고 그냥 자포자기했을 것이다. 2002년 이후 선수들의 경기 운영 방법과 의지가 상당히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두 차례 이긴 경기 중에서 더 좋았던 승리는 어느 팀과의 경기였을까. 홍 코치는 첫 경기였던 토고전의 승리를 꼽았다.
“내가 월드컵에 출전한 게 모두 네 번이다. 그중에서 세 번이 해외 원정 경기였다. 단 한 번도 이기질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토고전 승리는 정말 기뻤다.”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 홍 코치를 힘들게 한 적도 많았단다. 그중 가장 난관에 봉착했던 것은 월드컵을 앞두고 가진 스코틀랜드 전지훈련이었다.
“갑자기 부상 선수들이 너무 많이 늘어났다. 계속된 훈련을 통해 조직력을 끌어 올려야 하는데 부상 선수들이 재활 등 개인 훈련만 하니까 팀 전체 훈련에 차질이 빚어졌다. 그런데 토고전을 앞둔 4~5일 전부터 좋아지기 시작했다. 다행이었지만 발을 맞춰 볼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게 아쉬웠다. 시간만 있었다면 조직력을 가다듬어 훨씬 좋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월드컵처럼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인 무대에서 그들과 숨 막히는 ‘전쟁’을 치르는 선수들 입장에선 무엇보다 경험이 있고 없고 차이는 실력 이상의 중요한 키포인트가 된다. 홍 코치도 이 부분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월드컵을 경험한 선수들이 그렇지 못한 선수들보다 훨씬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 부분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더라.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느꼈을 부분이다. 깨달음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만 해도 큰 수확이다.”
게임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벤치를 박차고 그라운드로 뛰어 들어가고 싶은 그였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운동장에선 선수가 감독이고 코치다. 즉 선수들이 판단하고 결정해서 풀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게임이 어려워질 때 벤치란 자리가 참으로 힘든 자리가 되더라.”
홍명보는 이번 월드컵 동안 흔히 말하는 ‘집합’이란 걸 딱 한 차례 실시했다고 털어놨다. 바로 스코틀랜드에서 치른 가나와의 평가전 이후였다.
“2002년 월드컵 때 주장을 맡았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 선수들과의 잦은 미팅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몫은 실질적인 주장인 이운재의 몫이라 내가 나서는 게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나와의 평가전 이후에는 선수들을 모두 불러 놓고 따끔하게 얘기했다.”
마지막으로 히딩크 감독과 아드보카트 감독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물론 월드컵 전에 기자들로부터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었을 내용이지만 월드컵을 치르며 어떤 생각을 갖게 됐는지 궁금했다.
“역시 감독도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선수 교체 시기나 포인트 짚는 부분 등 경험 있는 감독이 보는 눈은 달랐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곤란하다.”
홍 코치는 월드컵 이후 본업인 행정가의 길로 돌아갈 거라는 소문에 대해선 ‘아직 아무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고 잘라 말했다. 좀 더 시간을 갖고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당분간은 지도자로서 값진 경험을 쌓게 한 독일월드컵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속내를 비치면서 말이다. 그의 눈빛에선 2010년을 향한 결의가 언뜻 지나가는 듯했다.
하노버=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