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힘들었지? 나와 함께 가자.”
날개 꺾인 영혼에게 천사의 탈을 쓴 악마가 달콤한 말과 함께 손을 내밀었다. 이미 상처 받은 영혼은 망설였지만 이내 친절한 악마의 모습에 손을 잡고 말았다. 그리곤 종적을 감춰버렸다. “악마는 나쁘지 않아요”라고 어렴풋 바람에 영혼의 소리가 실려 왔다. 애초 영혼의 날개를 꺾은 이가 잘못한 것일까. 이미 날개를 잃은 영혼이 치료할 생각을 못 하게 하는 악마가 더 잘못한 것일까.
여성 실루엣.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상관없음.
이 계장은 그들을 두고 “크게 될 놈들이다. 더 크기 전에 싹을 잘라야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애초 일당은 부산진경찰서가 성매매 단속에 나서면서 꼬리가 잡혔다. 경찰은 최근 ‘즉석 만남 앱’이 불법 성매매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랜덤 채팅을 통해 수사를 진행했다. 경찰이 성매수남으로 가장해 성매매 여성이나 성매매 일당에게 접근한 것.
랜덤 채팅을 통한 단속 과정에서 지난 3월 16일 경찰은 이 아무개 양(14)을 부산의 한 모텔 앞에서 만나게 됐다. 첫눈에도 이 양은 앳돼 보였다. 나이와 성매매 경위 등을 추궁하자 이 양은 굳게 입을 닫았다. 그렇지만 경찰의 끈질긴 설득 끝에 어렵게 “근처에 언니 집에 살고 있는데 언니가 보냈다”고 입을 열었다.
이 양이 말한 ‘아는 언니’는 강 아무개 양(18)이었다. 이 양은 가출한 지난해 10월부터 강 양이 어머니와 함께 기거하는 집에서 동거를 하게 됐다. 강 양은 청소나 설거지 등 집안 일로 이 양을 부려먹었다. 2월 초 경주 여행을 함께 다녀온 것이 성매매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강 양이 여행비용 100여만 원을 갚으라며 이 양을 협박하고 폭행했기 때문. 늦게 오거나 일을 하지 않을 경우엔 이 양이 갚아야 할 빚은 더 늘어만 갔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상관없음
그렇게 이 양은 지난 2월부터 한 달 동안 50~60여 차례의 성매매를 강요받았다. 성매수남들은 그 대가로 13만~30만 원을 지불했다. 이 양은 강 양이 무서워 도망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실제 조사 과정에서도 이 양은 강 양에 대해 “어느 날은 불량배와 시비가 붙었다. 강 양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자 강 양이 전화를 넘기라고 했다. 무리 가운데 한 명에게 휴대전화를 넘겼다. 짧은 통화가 끝나자 불량배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강 양은 그 일대에서 유명한 ‘일진’이었다.
이 양이 경찰에게 털어놓은 사실은 또 있었다. “나보다 언니에게 더 심하게 당한 친구가 있다”고 고백한 것. 이 양이 지목한 친구가 바로 앞선 서 양이다. 경찰이 서 양을 찾는 도중 우연히 랜덤 채팅에서 서 양이 포착됐다. 이 계장은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었다. 이에 서 양에게 ‘너를 알고 있다. 강 양을 구속했으니 걱정 말라’고 회유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서 양 또한 구체적 진술을 하진 않았으나 ‘이 양보다 더 심하게 당했다’고 직접 진술했다”며 “이후 자세하게 진술하는 조건으로 부모에게 인계했으나 그날 이후 잠적해버렸다”고 말했다.
서 양이 잠적한 이유는 현재까지도 서 양이 강 양이 아닌, 또 다른 성매매 일당 밑에서 성매매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서 양은 현재 자신이 몸담고 있는 A 씨 일당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강압적으로 성매매를 알선했던 강 양과는 달리 A 씨 일당은 서 양에게 온정을 베풀며 잘해주기 때문이다.
그들의 첫 만남은 서 양이 강 양 밑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 양 역시 이 양처럼 강 양의 집에서 함께 지내며 성매매를 강요받았다. 그렇게 서 양은 강 양 밑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서 양은 A 씨를 만나게 된다.
이 계장은 서 양과 A 씨의 첫 만남에 대해 “서 양이 강 양 밑에서 일하고 있을 때 A 씨 일당이 손님으로 가장해 서 양을 만났다”며 “A 씨는 ‘왜 강 양 밑에서 그러고 있냐’며 자신들과 함께 일을 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어 “서 양은 ‘A 씨는 잘해준다. 벌어온 돈만 주면 된다’고 말했다. 폭행과 협박을 일삼는 강 양과 다른 A 씨 일당을 의지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부산진경찰서.
부산 일대의 다른 성매매 조직도 A 씨 일당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한다. A 씨 일당은 옛날부터 일대에선 유명했다. 강 양도 A 씨 일당을 무서워할 정도다. 생활질서계의 한 조사관 역시 타 부서에 있을 때 A 씨를 소년원에 보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경찰은 용의자 검거에 주력하고 있지만 일당의 주거가 일정치 않아 체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계장은 “A 씨 일당을 체포하기 위해 영장을 발부받을 예정이다. 그들의 소재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지난 26일 강 양을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한 상태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성매수남 왜 못 잡나 부산진경찰서 생활질서계에서 수사 과정에서 사용한 앱은 ‘J 톡’ ‘A 톡’ 등이다. 이 랜덤 채팅 앱들은 개인정보 등록 없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로 인해 이번 사건에서 성매수남 처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이디와 이름, 심지어 성별까지 수시로 바꿀 수 있기에 성매수남을 역추적하기가 어려운 것. 또한 채팅부터 만남까지 모든 과정이 랜덤 채팅 상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사실상 성매수남과 연락처를 교환할 일이 없다. 다만 성매수남이 성매매 후에 여성과 연락처를 직접 교환한 경우엔 추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실제 연락처를 교환한 만남까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신분 노출의 우려와 ‘낚임’ 때문에라도 본인의 연락처를 밝히는 성매수남은 없다고 한다. 부산진경찰서 생활질서계도 수사 과정에서 낚임을 많이 당했다고 한다. 이 계장은 “택시미터기, 내비게이션, 모텔 방 번호나 열쇠를 인증하라는 요구도 한다”며 “성매수남이 성매매 여성이 마음에 들었을 경우에 연락처를 교환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 사건에선 그런 경우가 없었다”고 말했다. [민] |
스톡홀름 증후군일까? “그 오빠는 잘 해줘요.” 현재 경찰은 서 양이 현재까지 A 씨 일당 밑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 양이 수사 협조를 약속했으면서도 잠적한 이유에 대해 경찰은 “서 양이 A 씨 일당을 보호하려는 심리가 있다”며 ‘스톡홀름 증후군’에 대해 언급했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인질이 인질범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돼 오히려 범인들에게 호감과 지지를 나타내는 심리 현상을 말한다. 심리학자들은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강한 스트레스와 두려움으로 인해 인질범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 것을 오히려 고맙게 여겨 차츰 그들에게 온정을 느끼게 돼 결국 자신을 구출하려는 경찰들에게 반감까지 가질 수 있다”고도 설명한다. 더구나 서 양은 친구인 이 양이 인정할 정도로 ‘의리파’다. 경찰은 “자발적으로 A 씨 일당 밑에 있는지는 그들 일당을 잡아 봐야 안다”면서도 “정황상 서 양이 A 씨 일당을 좋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