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가 운영 중인 정책자문관 제도가 윤장현 시장의 비선라인으로 지목된 인사들의 영입 등 구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광주시청 건물 전경.
광주시는 민간 전문가의 전문지식과 경험을 활용해 시정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2009년 5월 광주시장 훈령으로 정책자문관 운영규정을 제정했다. 민선 6기 들어 현재 위촉된 정책자문관은 대외협력, 민자도로, 중국교류협력, 비전·투자 등 15개 분야의 15명이다. 민선 4, 5기에는 많아야 7~8명 수준이던 인원이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이 가운데 정액 급여를 받는 자문관은 민자도로, 대외협력, 공동주택관리, 통일정책 자문관 등 4명으로 지금까지 이들에게 월 100만∼200만 원씩 모두 9000만 원가량 나갔다. 나머지는 활동실적에 따라 지급하거나 회의 참석시 수당으로 지급하는데 도시철도, 교육분야 자문관 2명에게 4차례에 모두 50만 원이 지급됐다.
광주시는 여기에 지난해 말 시청 본관 4층에 2000여만 원을 들여 46㎡ 규모의 자문관 상주 공간까지 마련해줬다. 이 사무실은 광주시 정책자문관에 위촉된 13명의 정책자문관이 상주하는 공간이다. 광주시청사에 정책자문관실이 별도로 마련된 것은 역대 처음이다. 그동안 외부에 있으면서 시정과 관련한 협의와 자문을 해오던 정책자문관들이 시청사로 입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책자문관실이 시청사에 마련되면서 각종 부작용과 공적인 광주시 조직이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윤 시장이 위촉한 일부 정책자문관들의 경우 민선 6기 들어 비선라인으로 지목된 인사들로, 이들이 시청사 정책자문관실에 상주함으로써 시 공조직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공무원 조직이 윤 시장과 친분이 있는 정책자문관들의 ‘자문’을 ‘자문(?)’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광주시 한 간부는 복잡한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정책자문관실의 시청사 입주를 계기로 시장의 정책 결정 과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시 간부들이 정책자문관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책자문관실의 시청사 입주로 비선 실세들의 시정개입이 본격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감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자문관을 위한 사무공간 마련은 그들의 위상을 한껏 드러냄으로써 공무원 업무 분위기까지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뜩이나 전화 등으로 비선라인에게 시달린 공무원들이 이제는 가까이서 이들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니 얼마나 불편하겠느냐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책자문관 중에는 윤장현 광주시장이 지난해 취임 이후 공무원과 시 산하 기관 인사에 개입 등으로 숱한 의혹을 샀던 인척 K 씨가 포함돼 논란이 거세다. 광주시는 지난해 9월 A 씨를 1년간 광주시의 비전 제시와 시책 제안, 연구과제 컨설팅 등 시정 전반에 대한 업무 협의 및 자문 명목으로 비전·투자정책자문관으로 위촉했다.
K 자문관이 사실상 공직사회 제도권 안으로 진입하자 일각에선 “K 씨가 정책자문관이라는 신분을 빌미로 시정을 농단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이 K 자문관은 윤 시장이 취임 직후 임명해 논란이 됐던 외척 비서관(5급)의 친형이자 윤 시장의 ‘숨은 실세’로 알려져 있어 시청 안팎에선 “윤 시장이 외척 형제들을 곁에 두고 ‘척신(戚臣)정치’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돌고 있다.
한 하위직 공무원은 “‘실세설’의 장본인인 K 씨를 정책자문관으로 앉히고 시청사에 입주시킨 것은 그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라며 “당장 인사 때마다 공무원들이 힘이 있는 K 자문관에게 줄을 서는 행태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실제 공무원들 사이에선 윤 시장이 공무원 인사안을 K 자문관과 짠다는 얘기가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다. 시청의 한 중견 간부는 “지난 1월 5일 단행된 4급 이상 국·과장급 승진과 전보 인사를 앞두고 K 씨가 한 달 전부터 외부 교육을 마치고 복귀하는 인사 대상자들을 외부로 불러내 면담을 했다는 뒷얘기가 시청 안팎에서 돌고 있다”고 전했다.
지역 정치권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광주시의회 임택 의원은 “윤 시장이 비선 실세로 알려진 K 씨를 정책자문관으로 위촉하면서 그를 비선이면서도 비선이 아닌 모양새로 만들어 되레 그의 활동 폭만 넓혀줬다”며 “기획조정 분야에 정책자문관이 필요하다면 그보다 더 나은 사람도 있을 텐데, 비선 실세의 시정 개입 우려라는 오해를 사면서까지 그를 위촉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시 관계자는 이에 대해 “K 정책자문관 위촉은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본다는 의미”라며 “시정과 관련한 협의와 자문을 받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해명했다.
정책자문관들의 역할도 아리송하다. 자문관 가운데 10여 명은 수당이 전무한 만큼 사실상 실적이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명함 자문관’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게다가 해당 부서에서조차 하는 일을 모를 정도로 관리가 허술하다. 윤 시장은 지난해 8~9월 지방선거를 도왔던 김 아무개 씨(49)와 윤 아무개 씨(55)를 각각 대외협력정책자문관으로 위촉했다. 그러나 이들의 위촉 사실을 아는 공무원이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해당부서에서조차 역할을 잘 모를 정도다. 광주시 자치행정과 한 관계자는 “특정업무가 주어진 건 아니다”라며 “구체적인 사항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윤 정책자문관은 시장의 국회 방문을 준비하고 국회의원 면담을 주로 주선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해당 부서나 서울사무소에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업무다. 임택 시의원은 “해당부서와 업무가 중첩되기 때문에 잘못하면 옥상옥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제2순환도로 자본구조 원상회복과 보조금 소송 등을 진행 중인 ‘민자도로 자문관’은 전직 관련 부서 책임자로 월 200만 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민자도로 관련 소송에 대해 윤장현 시장이 애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전혀 예산절감 효과가 없다고 고백한 바도 있어 운영 자체가 적절한지도 의문이다.
급기야 한국은행 파견 A 자문관은 지난 1월 중순 보안 서류인 제2순환도로 민간운영사업자와 시의 협상 관련 자료를 동의 없이 가져갔다가 하루 뒤 돌려준 뒤 자신이 지원한 업체가 탈락하자 담당공무원에게 막말을 퍼붓는 등 물의를 빚었다.
이와 관련 주경님 광주시의회 의원은 최근 광주시의회 본회의 5분 발언에서 “금융권에서 파견된 A 씨는 300억 원대 전일빌딩 리모델링 사업을 위한 기획설계 용역업체 선정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있다”며 “더욱이 A 씨는 자신이 지원한 특정업체 탈락 후 시 공무원들에게 ‘잘라버리겠다’는 막말을 하고 다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광주시가 미지근한 대응 태도를 보여 도마에 올랐다. 시는 한때 A 씨의 행위가 도를 넘었다고 보고 고발하는 방안까지 검토했지만 A 씨가 전남도 정책자문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흐지부지됐다. 특히 A 씨가 윤장현 광주시장의 인척이자 비선 실세로 알려진 문제의 정책자문관 K 씨의 고교 후배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의 미온적 대처를 둘러싼 뒷말이 무성하다.
광주시공무원노조의 한 관계자는 “시가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각종 의혹의 장본인을 정책자문관으로 위촉한 점을 이해할 수 없다”며 “역할이 모호하고 뚜렷한 실적도 없이 혈세만 낭비하고 있는 정책자문관에 대해서는 즉각 해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