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2012년 어느 날 이상태 택시 운전기사는 서울 시내를 배회하던 중 다른 택시에서 눈물을 흘리며 내리는 한 여성과 아이를 발견했다. 그 여성 앞에 택시를 정차하자 그 여성이 택시에 탑승했고, 이 씨는 용기를 내어 울게 된 이유를 물었다. 그 여성은 택시 뒷좌석에 함께 탄 아이가 시끄럽게 떠들자 택시 운전기사로부터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설을 듣게 됐고 중간에 내리라는 요구까지 받았다고 설명했다.
#2
지난 2013년 1월 유난히 추웠던 어느 토요일 새벽 강남대로를 달리던 이 기사는 승차거부와 추위에 고생 중인 한 40대 남성을 발견하고 택시를 세웠다. 그 남성은 택시 문을 열어 “분당 가나요?”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이 기사는 “추운데 빨리 타세요”라고 말했고, 그 남성은 택시에 탑승하자마자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얼어붙은 손을 녹였다. 이 기사는 승객에게 “승차 거부로 몇 대를 보내셨나요?”라고 물었고, 그 남성은 “10대나 보냈어요. 분당으로 가면 빈 차로 다시 서울에 와야 하니 어쩔 수 없죠”라고 대답했다.
#3.
지난 2014년 5월 어느 날 동대문역 인근을 지나던 이 기사는 두 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있는 외국인 여성 한 명을 택시에 태웠다. 외국인 여성은 “Thank you”라고 말하며 이 기사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 종이에는 한글로 적힌 한 주택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정차된 택시 안에서 이 기사는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한 후 출발했고 그제야 미터기를 켰다.
#1, #2, #3은 서울시 강동구 성내동이 위치한 한 택시회사에서 5년째 근무 중인 이상태 운전기사가 지난 3년(2013~2015년) 동안 승객 2000여 명을 대상으로 택시 운전기사의 서비스와 관련된 구두 설문조사를 실시하게 된 이유다. 이 씨는 “우리 국민 중에 택시를 이용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겁니다“라며 ”그런데 택시 운전기사의 서비스 불만에 대해 물어봤더니 무려 98% 정도가 엉망이라고 말했어요”라고 말했다.
주행 중 구두로 설문조사를 한 이 씨는 설문 자료를 서류화하지 않은 점에 대해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승객과의 대화를 통해 택시 운전기사 서비스 개선 방향을 고안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장거리 승객들에게는 자신이 고안한 내용을 설명했고, 대부분의 승객들은 이 기사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해줬다고 한다. “한 사람의 작은 목소리로 우리나라의 택시 문화 개선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나비효과처럼 다른 택시 운전기사들도 정도·정직·정의·친절·모범을 실천해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바뀌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국가인증 마스터 자격증 도입을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고 설명했다.
택시 이용 고객들은 택시기사의 승차 거부, 불친절 등의 불만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2000여 명의 승객이 꼽은 택시 운전기사에 대한 가장 큰 서비스 불만은 ‘승차 거부’였다고 한다. 주로 금·토요일 밤 홍대입구역·종각역·강남역 등의 서울시내 주요 번화가 등에서 승차 거부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승차 거부 단속반이 단속을 실시하지만 택시 운전기사 대다수가 단속반의 눈을 피하기 위해 ‘예약’ 표시등을 켜거나 ‘빈차’ 표시등을 꺼버린다. 승차 거부 대상 1호 승객은 경기도권으로 향하는 승객과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외국인 승객들이라고 한다. 경기도권으로 향하는 승객을 태우게 되면 다시 서울로 돌아올 때 빈 차로 돌아올 확률이 높고, 외국인 승객이 탑승하게 되면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해야 하므로 10여 분이 지체되기 때문이다. 설문 응답에서 이들은 하루 평균 10회 이상 승차 거부를 당한다고 답했다. 또 안경을 착용한 여성이나 노인을 교대 후 첫 승객으로 태우지 않는 운전기사가 적지 않다는 지적했다. 이 씨는 “교대시간이라는 핑계로 승차 거부를 하는 택시기사들도 많아요. 추운 날씨 속에 승차 거부를 당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승차 거부 단속을 한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고 전했다.
설문조사에서 두 번째로 높은 택시 운전기사의 서비스 불만은 ‘불친절’이었다. 택시 안에서 담배 냄새가 날 때, 운전기사가 주행 중 핸드폰 사용할 때, (여성 승객의 경우) 사적인 질문을 물어올 때, 승객의 질문이나 요청에 대해 아무런 대답이 없을 때, 운전 중 다른 차량 운전자에 대해 욕설을 할 때 등으로 이유는 다양했다.
‘과다 요금 징수’에 대한 불만도 많다고 한다. 승객이 졸고 있을 때 몰래 시계 버튼을 누르거나 서울-경기 경계선에 도달하기 한참 전에 시계 버튼을 눌러 할증요금을 붙게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라는 설명이다. 교통정체를 이유로 목적지로 가는 길을 한참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설문조사에서는 조사되지 않았으나 주요 버스터미널이나 번화가 골목에서 시동을 끈 채 호객 행위를 하는 택시 운전기사들도 문제라고 이 기사는 지적했다.
이 기사는 “택시 운전기사의 평균 시급이 4500원 수준이다 보니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승차거부를 할 수밖에 없고, 별의별 승객을 다 태우다보니 불친절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라며 ”승객의 피땀 어린 돈을 받고 일하는 만큼 승객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주고, 힘들더라도 미소를 한 번 지어준다면 힘든 일이 보람으로 느껴지지 않을까요”라고 아쉬운 심경을 토로했다.
택시기사 이상태 씨는 현장에서 승객 2000여 명을 대상으로 구두 설문조사를 진행해 택시기사에 대한 ‘국가인증 마스터 제도’를 구상해냈다.
이 기사는 국가인증 마스터 자격증이 도입되면 택시 운전기사의 서비스 질뿐만 아니라 교통문화까지 개선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가 제안하는 국가인증 마스터 자격증 시험은 학과 시험과 실기 시험으로 이뤄진다. 학과 시험은 택시 운전기사의 친절, 존중, 배려, 겸손, 모범 등의 내용 위주로 출제되며, 실기 시험은 감독관이 응시자의 택시에 직접 탑승, 각종 상황별 택시 운전기사의 대처 요령을 테스트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운전면허증, 택시 운전기사 자격증처럼 필수 취득 자격증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승객들이 국가인증 마스터 인증 마크가 부착된 택시를 선호하다보면 너도나도 자격증 취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 기사의 생각이다. 인증 마크가 부착된 택시가 곧, 인성이 갖춰진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택시라는 걸 증명하기 때문이다. 자격증 취득 운전기사에게는 벌점 제도에 우대 혜택을 부여하고 승객의 불만 신고 접수 횟수에 따라 경고 및 자격박탈 등의 불이익도 주는 것을 제안한다. 단 범죄전과자, 운전 판단이 흐린 노약자, 불만 신고 3회 이상 접수자 등은 마스터 자격 미달자로 제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기사는 “택시 운전기사가 될 때 범죄경력회보서를 제출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운전기사들 중 범죄 전과자가 많습니다. 2차 범죄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들을 자격 미달자로 두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고 설명했다.
이번 총선에 한 국회의원이 국가인증 마스터 자격증에 관심을 갖고,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이 기사를 직접 찾아오기도 했단다. 보좌관이 자료를 받아가면서 이 기사에게 “공약으로 내세우거나 국회의원 당선 시 관련 법안 제출을 고려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기사는 “택시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정기 서비스 관련 교육만 실시하더라도 택시 운전기사의 서비스 질이 향상될 텐데 ‘잘하라’는 말만을 강요할 뿐입니다“라며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안심하고 택시를 탈 수 있는 시대가 하루빨리 다가오길 기대합니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택시에 오르는 승객을 향해 미소 지으며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라며 인사를 건넨다.
유시혁 기자 evernur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