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국회의장이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사진설명=국회출입기자단
이런 가운데 정의화 국회의장이 돌연 신당 가능성을 시사해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정 의장은 3월 2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새누리당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우리 정치가 국민을 위한 올바른 정치가 될 수 있도록 자극을 줄 수 있는 어떤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신당 창당 추진을 언급한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정 의장의 대선 도전 가능성에 주목하기도 한다. 정 의장 측근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정 의장은 평소에도 여러 번 중도를 표방한 정당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새누리당 공천 행태에 대한 실망감도 한몫했을 것이다. 새로운 정치 결사체를 만든다는 차원에서 이해해야 할 것으로 본다. 다만, 향후 대권 도전을 위한 좋은 상황이 형성된다면 굳이 마다하진 않을 분”이라고 털어놨다.
정 의장의 이러한 발언에 정치권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향후 여권의 정계개편과 맞물려 있는 까닭에서다. 공천 파동으로 무소속에 출마해 당선된 의원들, 새누리당 비박계 이탈 세력 등이 정 의장과 함께 신당 창당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경우 차기 대선은 물론 국내 정치판에 적잖은 파급 효과를 미치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정치 전문가들 대부분은 정 의장의 신당 추진에 대해 회의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새누리당은 그동안 계파가 그렇게 치고받고 싸웠지만 깨지지 않은 당이다. 이번 공천 내홍을 봐도 잘 알 수 있지 않느냐. 지금의 여권 구도를 흔들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 의장이 신당을 만든다 하더라도 새누리당 내부에서 합류하는 현역 의원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점쳤다.
더군다나 정치권에선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을 훨씬 뛰어넘는 의석수를 확보할 것으로 내다본다. 180석 이상의 압승 전망도 나온다. 이 경우 정계개편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윤호석 정치평론가는 “거대 집권 여당이라는 프리미엄을 포기하긴 힘들 것이다. 쉽게 말하면 사서 고생을 왜 하겠느냐. 새누리당 의원들은 싸우더라도 안에서 싸우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더라. 이런 점 때문에 당이 지금까지 유지돼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 의장 발언이 관심을 모으는 것은 새누리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유승민 이재오 의원의 정치적 무게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공천 파동을 거치며 일약 전국구로 발돋움한 유승민 의원과 친이계 좌장인 이 의원이 정 의장과 손을 잡을 경우 그 파괴력은 여권을 뒤흔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수도권 지역의 한 비박계 의원은 “부산·경남(PK)의 정의화, 대구·경북(TK) 유승민, 수도권의 이재오가 당을 만들면 여권 분열은 현실화될 것이다. 정 의장 개인은 그다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 못하지만 대선 주자 반열에 오른 유승민이나 10여 명의 계파를 움직일 수 있는 이재오는 다르다”라고 말했다. 정 의장 신당의 성패가 유승민·이재오의 새누리당 복당 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관측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둘은 정 의장 발언이 나온 후 부정적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정치는 생물이다.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과반에 못 미치거나 가까스로 달성한다면 의외로 정계개편 속도는 빨라질 수 있다. 새누리당으론 대선에서 힘들다는 인식이 퍼질 경우 정 의장 등이 만든 신당이 탄력을 받게 될 것이란 얘기다. 이재광 정치평론가도 “총선 결과가 향후 여권 구도, 특히 신당의 출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좋은 결과를 거둔다면 정의화 신당은 미풍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무성 대표 스탠스도 핵심 관전 포인트다. 현재 여권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주자인 김 대표가 새누리당을 나와 신당에 합류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게 중론이다. 김 대표는 이번 공천을 통해 자신의 친정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공천을 받은 ‘김무성 키즈’들은 대략 50여 명 수준으로 그 결과에 따라 새누리당 내 최대 계파를 형성할 수도 있다. 김 대표로선 굳이 당을 탈당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도 변수는 있다. 김 대표가 새누리당 내에서 친박 핵심부에 의해 축출당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물론 여권 일각에선 김 대표와 친박이 모종의 밀약을 맺은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긴 한다. 김 대표가 공천 등을 놓고 친박계 손을 들어주는 대신 향후 대선주자 행보를 보장받았다는 게 그 골자다. 이 경우 김 대표의 탈당 명분은 더욱 약해진다.
그러나 김 대표를 향한 친박 핵심부 시선은 싸늘하다. ‘김 대표는 믿을 사람이 못 된다’라는 게 밑바탕에 깔려 있다. 김 대표의 ‘옥새 전쟁’을 거치면서 이러한 인식은 더욱 공고해졌다. 한 친박 의원은 “김 대표가 대선까지 완주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오판이다. 김 대표로는 정권을 재창출할 수 없고, 또 그래선 안 된다. 총선이 끝난 이후 김 대표를 대체할 본격적인 대선주자 찾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 진영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친박과는 함께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또 친박계가 김 대표를 언젠가 쳐낼 것이라는 우려도 공공연히 나돈다. 김 대표 최측근 의원은 사석에서 “김 대표는 ‘30시간의 법칙’이라는 조롱까지 받으며 그동안 계속 참기만 했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한 인내였다. 그러나 친박이 계속 저런 식으로 나오면 행동을 할 수 있다. ‘선방’을 날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탈당은) 가능성은 낮지만 최후의 카드로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