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공식 홈페이지 캡처.
“처음부터 끝까지 유승민 고사작전에 몰두하다보니 이런 사달이 났다.”
지난 30일 <일요신문>과 만난 비례대표 지원자 A 씨의 말이다. 그는 “당 지도부가 신청자들에 대해 면접 없이 통보를 하고 명단을 정했다. 선정과정 과정 자체가 밀실공천이었다”며 “심사료를 받았으면서도 면접도 안 본 것은 정말 잘못됐다. 더불어민주당은 비례명단을 압축해서 절반이상 면접했다는데…”라며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3월 8일 새누리당은 당 홈페이지를 통해 ‘제20대 국회의원선거 비례대표 후보자 추천신청’ 공고문을 올렸다. 후보자 신청을 위해서 지원자들은 총 400만 원을 당에 지불해야 한다. 공관위가 심사료 100만 원, 직책당비 6개월(월 50만 원)인 300만 원의 납부를 후보자 자격 요건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 금액은 공천에 탈락되더라도 반환되지 않는다. 새누리당 당규상 비례대표 국회의원 직책당비 납부기준액은 월 50만 원. 더민주는 전형료 100만 원 받고 전체 신청자 중 절반 이상에게 기회를 줬다.
새누리당은 고액의 전형료를 받았는데도 서류심사만으로 지원자 대부분을 컷오프시켰다. 이번 총선을 위한 새누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지원자는 총 607명(남 400명, 여 207명). 비례대표 후보자로 확정된 45명을 제외한 562명이 공관위원들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셈이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관계자 “어이없다고 억울해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며 “컷오프를 당했으면 전형료를 당연히 환불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다른 중앙위 관계자도 “새누리당을 위해 헌신해왔던 사람들 전부가 컷오프됐다. 돈만 내고 면접도 못보고 탈락하고…”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처음부터 모든 지원자에 대해 면접을 본다고 공지하지 않았다”며 “제출시 요구한 수북한 서류만으로도, 충분한 심사가 이뤄졌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문제는 지역구 공천 신청을 위한 ‘고액 전형료’ 논란과 무관치 않다. 새누리당은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공천 지원자들에게 총 310만 원을 납부하도록 했다(<일요신문> 1242호 보도). 새누리당 예비후보들은 공천 신청을 위해 심사료 100만 원, 지역구 국회의원 직책당비(월 30만 원) 6개월분 180만 원, 안심번호로 전환한 지역구 당원명부 판매비용 30만 원을 내야 했다.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아무리 고액이어도, 예비후보자가 당에 납부하는 등록비는 우리가 따로 관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가장 석연치 않은 부분은 ‘직책당비’를 완납해야 한다는 점이다. 새누리당은 직책에 맞는 당비의 ‘선납’을 공천 신청을 위한 책임당원 요건으로 정했다. 지역구나 비례대표 의원으로 활동하지 않는 지원자들에게 ‘국회의원 직책당비’를 요구한 것. 이는 공관위가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자를 위한 신청 자격을 ‘책임당원’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당규는 “당원은 납부기준액 이상의 당비를 납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당비 규정은 직책당비 금액을 세밀히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월 300만 원, 지역구 의원은 월 30만 원, 비례대표 의원은 월 50만 원 등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해본다면 대통령은 1년에 총 3600만 원. 지역구 의원은 360만 원. 비례대표 의원은 600만 원을 당에 내야 한다. 새누리당 당원이 아닌 지원자들은 책임당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고액의 당비를 납부해야 한다. 새누리당 기획조정국 관계자는 “직책당비를 받는 것은 관례다. 당헌·당규대로 했을 뿐이다”고 해명했다.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들이 지난 2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0대 총선 공천자대회에서 총선 승리를 위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문제는 새누리당 당헌·당규의 책임당원 요건이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공관위와 최고위원회의 의결만 있다면, 공천 과정에서 임의대로 당비를 걷는 것이 가능하다. 새누리당 당원규정 제2조 2항은 “책임당원은 당비 규정에 정한 당비를 권리행사 시점에서 1년 중 6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당에서 실시하는 교육 또는 행사 등에 참석한 당원을 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4항은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 등의 요청이 있는 경우 최고위원회의의 의결로 책임당원 자격부여 요건을 변경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이번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공관위가 책임당원 요건에 직책당비 요건을 포함했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는 없다”며 “지금까지 쭉 이렇게 해왔다”고 말했다.
물론 당원을 위한 공제 규정도 있다. 앞서의 비례대표 후보자 신청 공고문은 “신청일 기준 6개월 이내에 당비를 납부한 당원은 중앙당에 그 부족분을 납부한 후 접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역구 후보를 신청한 당원도 공제를 받을 수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떨어진 분들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어차피 등록비를 받을 때 당원은 당비를 공제해준다. 야당에 비해 우리가 높은 수준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직책이 높을수록 당비의 금액이 높아지기 때문에 일반당원들이 공제받을 수 있는 당비는 미미한 수준이다. 당 내에서 고위직을 맡지 않고 있는 이상, 정치신인은 단단한 진입장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비례대표 지원자들은 ‘특정 인사 내정설’의 의혹도 제기했다. 중앙위원회 관계자는 “이번에 비례대표 안정권에 들어간 신 아무개 씨는 얼굴 한 번도 못 본 사람이다”며 “명부가 확정된 순간 묘한 느낌이 들었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운영위원들 역시 23일 “비례대표 후보 공천에 중앙위 인재들이 68명이나 지원했지만 전혀 기용되지 않았다”며 지도부의 공식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새누리당 총무국 관계자는 “공정하고 투명하게 심사했을 뿐이다. 탈락자들은 아쉬운 마음에 그런 소리를 하겠지만 그런 일은 없다”고 설명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