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의 대표팀 4번타자 김동주.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팀 차출을 거절해 팬들의 비난을 샀지만 그의 속사정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사진 제공=두산 베어스 | ||
▶▶ESPN 해설자는 몰랐다
그날 김동주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헤드퍼스트슬라이딩을 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한국과 대만의 WBC 아시아예선 첫 경기. 내야땅볼을 치고 1루로 달리던 김동주는 헤드퍼스트슬라이딩을 했다. 0.1t의 김동주가 붕 날았다. 그러나 땅바닥에 몸을 던진 그는 왼쪽 어깨가 1루 베이스에 걸리면서 큰 부상을 입었다. 왼쪽 어깨 뼛조각 일부가 떨어져나간 것이다.
김동주는 곧바로 대표팀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대체 선수로 현대 정성훈이 뽑혔다. 하지만 “몸 대신 마음만이라도 대표팀을 응원하고 싶다”는 김동주의 바람이 받아들여졌다. 김동주는 애리조나-애너하임-샌디에이고로 이어진 미국에서의 WBC 8강 리그, 준결승전까지 대표팀과 동행했다.
애너하임에서 열린 8강 리그 때 김동주는 WBC 주관방송사인 ESPN의 한 해설자로부터 강도 높은 비판을 받았다. 경기 중 김동주가 덕아웃에서 이어폰을 낀 채 음악을 듣고 있는 장면이 중계 화면에 잡힌 것이다. 이 미국 해설자는 “저 선수가 바로 부상 때문에 전력에서 이탈한 한국 대표팀의 4번 타자다. 그런데 경기 중에 음악을 듣고 있다는 건 희한한 일”이라며 비꼬아서 비난했다.
ESPN 해설자가 김동주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눈치챘다면 그 같은 평가를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현장에 있으면서도 경기에 뛸 수 없는 자신의 신세가 얼마나 한심하게 느껴졌을까. 당시 김동주는 “미치겠다”는 말로 심경을 대신했다. 눈은 경기를 따라가면서도 귀로는 음악을 들으며 답답한 마음을 달랬던 셈이다.
▲ 지난해 프로야구 미디어데이행사에 나선 김동주(맨 오른쪽).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그의 활짝 웃는 얼굴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 ||
김동주는 정상적으로 시즌을 마쳤다면 올해 말 자유계약선수(FA)가 된다. 그러나 수술 없이 재활 끝에 8월이 돼서야 1군에 복귀했기 때문에 FA 자격요건을 채울 수 없었다. WBC에서의 한 차례 헤드퍼스트슬라이딩이 FA 자격 취득을 한 해 미루는 엄청난 손해를 불러온 것이다.
WBC 때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선수들이 대회 참가로 인해 큰 부상을 당할 경우를 대비해 보험에 들었다. 또 이와는 별도로 FA와 관련해 보상을 해주겠다는 입장을 선수들에게 전했다.
하지만 막상 김동주 케이스가 발생하자 상황이 애매해졌다. KBO 입장과 달리 각 구단들이 반발을 하고 나선 것이다. “김동주 케이스를 묵인해주고 FA 자격을 얻게 한다면 이는 앞으로 전례로 작용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김동주로선 땅을 칠 일이다. 병역 문제가 일찌감치 해결된 김동주 입장에선 태극 마크를 단 것은 순전히 나라를 위해서였다. 그 결과가 선수 개인에게 크나큰 손실로 돌아오게 됐으니 김동주가 불만을 토로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현재로선 올가을 김동주가 FA 자격과 관련해 특혜를 받게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두산 구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동주는 최근 들어 FA 보상 문제에 대해 거의 포기했다고 한다. 절친한 팀메이트인 투수 박명환의 충고가 크게 작용했다. 박명환은 김동주에게 “어차피 지금 FA 시장에 나가봐야 아픈 상태이기 때문에 제값도 못 받고 고생할 것이다. 그럴 바에야 1년 더 뛰고 떳떳하게 FA 자격을 얻는 게 상품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일일 것이다”라고 조언했단다.
▶▶우여곡절 많았던 한 해
이달 초에는 김동주가 현대 김재박 감독이 이끄는 도하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선발됐다가 이를 거부하는 바람에 화제가 됐다. 시즌 종료 후에 또다시 국제대회를 준비하는 것에 대해 선수들 대부분이 꺼리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WBC 때 부상과 FA 보상 논란에 휩싸였던 김동주는 자신의 기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대표팀 차출이 결정되자 이에 화를 내며 반발하고 말았다.
김재박 감독이 대놓고 섭섭함을 표시했고 팬들 역시 의견이 반으로 갈렸다. 절반의 팬은 “김동주 를 이해한다”는 반응이었고, 나머지는 “국가대표의 신성한 임무를 망각한 행동”이라며 크게 비난했다.
후에 김동주가 직접 김재박 감독을 찾아가 대표팀에 합류할 수 없는 몸 상태임을 밝히고 사죄의 뜻을 표하면서 문제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김동주의 반발로 인해 아시안게임 대표팀이 출발 단계에서부터 삐꺽댄 것만은 분명하다. 김동주는 “진짜 몸이 아프다. 그런데 그건 알아주지 않고 무조건 나를 비난하는 건 섭섭한 일이다”라는 심정을 밝혔다.
김동주는 평소 무뚝뚝한 것으로 유명하다. 말수도 적기 때문에 취재진의 접근이 어려운 선수다. 2년 전 겨울에는 개인 사정 때문에 방황하다가 “야구를 그만두겠다”는 폭탄선언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평소의 김동주는 커다란 체구에도 불구하고 천진난만한 소년 같은 성격이라는 게 두산 홍보팀 이왕돈 대리의 증언이다. 선수들이 마시는 생수병으로 덕아웃에서 총 쏘는 시늉을 하면서 장난을 칠 때에는 코뿔소가 아니라 순한 양이라는 설명이다.
이래저래 올 시즌 김동주는 우여곡절이 가장 많았던 프로야구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분명한 것은 그를 둘러싼 모든 논란에는 항상 ‘김동주 같은 간판 타자가’ ‘김동주 같은 주요 전력이’ 등과 같은 표현이 전제됐다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한국프로야구의 4번 타자임에 틀림없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