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기혐의로 체포된 ‘섹시 여의사’ 와키사카 에리코.
“연수입이 5000만 엔(약 5억 3000만 원)이지만, 저축은 하지 않는다.” 텔레비전에 출연해 화려한 삶을 자랑했던 여의사 와키사카 에리코가 얼마 전 사기혐의로 체포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에리코는 2012년 11월부터 2014년 9월까지 자신의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들의 진료횟수를 부풀려 지자체에 보조금을 허위 청구했다. 일본 경찰은 에리코가 이러한 방법으로 총 8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청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녀가 일본에서 본격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건 2013년부터다. 에리코는 여의사답지 않은 금발머리에, 가슴이 푹 파인 의상을 입고 TV에 자주 얼굴을 비췄다. 게다가 입만 열면 폭탄발언이었다. “F컵 가슴을 무기로 600여 명의 남성과 잤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호스트클럽에 다니며, 하룻밤에 9000만 원을 쓰기도 한다” 등등 매번 거침없는 발언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로 인해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경박해 보인다”는 지적도 일었지만, 이미지와 달리 반전 있는 집안과 학벌로 주목을 받았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에리코는 일본 명문가, 재벌가 자제들이 다니는 초·중·고등학교 출신에 도쿄여자의과대학을 졸업했고, 의사면허도 단 한 번에 취득했다고 한다. 26세 때는 주위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완벽한 외과의사와 결혼했으나 곧 별거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4년의 결혼생활이 파탄 나고, 에리코가 빠진 곳은 다름 아닌 호스트클럽이었다. 특히 <주간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남편과 별거 중에 만난 호스트에게 반해 수억 원의 카드빚과 사채를 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잡지 <주간겐다이>는 “에리코가 가부키초(호스트클럽이 모여 있는 도쿄의 대표적인 환락가)의 전설적인 단골고객”이었다고 거들었다.
그녀를 잘 알고 있는 유흥업소 남자종업원은 “에리코가 매일 밤 특정 호스트의 매상을 올려주기 위해 수백만 원의 술값을 부담했다”고 털어놨다. 가장 대단했던 것은 ‘리차드 헤네시’라는 최고급 코냑을 주문한 일이었는데, 수십 잔의 술을 쌓아 타워 모양을 만들 정도였다. 그는 “한 병에 2000만 원이 넘는 술이라 틀림없이 에리코가 2억 원은 썼을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여의사답지 않은 사생활은 단순히 방송용 흥밋거리로 꾸며낸 설정이 아니었다. 본인이 TV에서 말한 대로 이혼 후 호스트클럽에 푹 빠져 살았고, 모아둔 저축도 한푼 없었다. 지인의 말을 빌리자면, 에리코의 병원 재정 상태는 의료기기 대여료도 못 낼 만큼 쪼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리코는 ‘돈은 쓴 만큼 다시 돌아온다’며 호언장담했다”고 한다. 다들 어디서 돈을 마련하는지 궁금해 하던 차에 지난해부터 “사기혐의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떠돌았다. 자연스레 에리코의 방송출연이 줄어들었고, 매니지먼트 회사와도 계약이 해지됐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에리코가 개성이 강한 캐릭터였기 때문에 방송에서 많이 찾는 편이었다”면서 “잡지에도 기고하는 등 다양한 활약으로 월 1000만 원 이상의 부수입을 올렸다”고 밝혔다.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것은 일본 호스트클럽의 요금 체계다. 수입이 꽤 많았던 에리코가 파산에 이르렀으니 하는 말이다.
일본 호스트클럽 구인사이트에 올라온 요금체계를 살펴보면 대략 이렇다. 먼저 처음 방문하는 신규 고객은 특별한 시스템이 적용된다. 보통 두 시간에 5000~3만 원 정도를 지불하는데, 가게에 따라서는 무료인 곳도 있다. 이때 15분마다 호스트(남자종업원)가 바뀌면서 8명과 대화를 한다. 여성 고객은 각각의 호스트에게 명함을 받는 식이다.
두 시간이 지나면 연장을 할 것인지 묻고, 만일 연장하지 않을 경우 계산을 치른다. 첫 방문은 비교적 가격이 저렴해 부담이 적다. 또 배웅서비스가 있어서 대화를 나눴던 8명의 남성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호스트를 지목하면, 가게 밖까지 바래다준다. 그 틈을 타 메일주소나 전화번호를 교환하기도 한다.
두 번째 방문부터는 별개의 시스템이 적용된다. 기본가격은 한 시간에 5만 원 정도. 여기에 지명할 경우 2만~3만 원가량이 추가된다. 음료는 가장 싼 맥주가 1만 5000원. 그리고 처음과 다른 것은 지명된 호스트가 옆에 앉는다는 점이다. 첫 방문은 탁자를 사이에 둬 정면으로 마주하고 앉는다. 덧붙여 요금에 30%의 부가세가 붙는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즉 10만 원의 요금이 나왔다면 13만 원으로 불어난다.
일본에서는 워낙 호스트클럽이 성행하다보니 젊은 직장여성 중에서도 “방문한 적이 있다”고 말하는 여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호스트클럽 종업원의 급료가 매상에 따라 지불되는 구조라 자신이 좋아하는 호스트를 위해 값비싼 술을 주문할 때다. 호스트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 혹은 분위기에 휩쓸려 100만 원을 호가하는 샴페인 ‘돔페리뇽’을 테이블마다 돌리는 여성도 부지기수. 또 여의사 에리코처럼 하룻밤에 수천만 원을 쓰는 여성도 있다. 빚을 내가며 호스트클럽에 다니는 이들도 적지 않아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는 말이 떠돌 정도다.
하지만 향락을 누린 대가는 쓰디쓰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의 진료보수 비리청구는 대부분 ‘의사자격 2~3년 정지’라는 행정처분을 받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야쿠자(조직폭력단)의 사채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의사면허 박탈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더욱이 에리코는 가로챈 금액이 상당해 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출소 후 ‘어둠의 세계’에서 은밀히 진료활동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걱정의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