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3월 31일부터 현재까지 휴전선 접경 인근 지역에서 교란 전파를 보내고 있다.
3월 31일 오후 7시 30분경, 북한의 GPS 전파교란이 시작됐다. 전파발생 지역은 금강산, 평강, 개성, 연안, 해주 등 휴전선을 앞에 둔 지역이었다. 이 전파발생은 세기와 시간차를 두고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북한이 보내고 있는 교란신호의 세기는 -90~-150 데시벨 밀리와트(dBm) 수준이다. 높은 세기도 아니고 특정 대상을 타깃화한 것도 아니다. 2G폰의 일부 수신기능에 약간의 문제가 발견됐을 뿐 GPS를 상용화하는 군과 통신·선박·항공과 관련해 특별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진 않다. 미래창조과학부는 현재까지 ‘주의’ 단계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일단 우리 당국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북한의 전파교란 행위를 하나의 도발행위로 해석하고 있다. 올 초부터 남북관계는 경색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북한은 전략·재래식 무기를 이용한 무력시위를 빈번하게 벌이고 있다. 또한 북한은 현재 진행 중인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더 주목할 점은 시기다. 북한은 지난 2010년 8월 23일, 처음 GPS전파교란을 실시했다. 발생지역은 경기도 김포, 파주 등 수도권 북부지역이었다. 이후 북한은 지난 2011년 3월과 2012년 4월 등 지금까지 총 세 차례 전파교란을 실행했다. 그리고 이번 전파교란은 약 4년 만에 네 번째로 발생했다.
북한의 GPS전파교란은 비교적 최근에 시도하고 있는 도발행위인 셈이다. 북한이 현재까지 이따금씩 시도하고 있는 사이버테러 행위도 2000년대 후반에 시작됐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다. 재밌는 것은 북한의 사이버테러 공작을 지휘하는 주체도, 이번 전파교란을 시행한 주체도 모두 정찰총국(정찰총국장 김영철)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북한은 1991년경 정찰총국 산하에 별도의 전자전 전담부서를 두며 이 같은 전자전술의 개발을 꾀해오고 있다. 사이버테러나 전파교란 등 전자전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전략·재래식 무기를 이용한 무력시위와 다르게 기본적으로 비살상 군사도발이라는 점이다. 국제사회의 눈을 생각한다면 비교적 부담이 덜하다. 두 번째는 그러면서도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점이다. 특히 전산화·첨단화가 장점인 한국의 사정을 살펴볼 때 오히려 이러한 전자전 전술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이번 GPS전파교란은 일종의 재밍(Jamming)이다. 재밍이란 특정 전파를 수신하는 특정 타깃을 향해 동일한 주파수를 강하게 쏘아대며 상대를 교란하는 행위를 말한다. GPS는 전파 중에서도 아주 세기가 약하고 게다가 단일 주파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재밍에 특히 취약하다.
군사평론가인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GPS 자체가 핸드폰에서도 수신이 가능할 정도로 약한 세기의 전파”라며 “게다가 교란 전파를 발생하는 재머(Jammer)는 구하기도 쉽고 값도 비싸지 않다. 중국에서 조잡하게 만든 재머는 200달러짜리도 있다. 북한 입장에선 그렇게 큰 돈 들이지 않고도 도발행위를 감행할 수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양 위원은 “중국에서 들여온 재머가 있다면, 북한이 나름대로 목적에 맞게 조합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은 지난 1991년께 정찰총국 산하에 별도의 전자전 전담 부대를 두고 현재까지 양성해 오고 있다. 북한은 2000년대 후반 사이버테러와 전파교란 등 이른바 전자전 군사행위를 지속해 오고 있다.
재머란 쉽게 말해 교란전파를 발생시키는 전파방해장치를 말한다. 비공개 회담이 이뤄지는 국제회의장에서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활용하는 소규모 재머에서부터 이번에 북한이 군사적으로 활용한 군사용 재머까지 그 종류와 규모는 다양하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매한가지다. 이와 관련해 <일요신문>은 유의미한 정보를 포착하기도 했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연구센터 대표는 이와 관련해 “현재 전파교란을 수행하고 있는 부대는 정찰총국 산하 전자전 담당 부서가 휴전선 인근으로 파견 나온 것”이라며 “그런데 최근, 이번 전파교란에 앞서 해당 부대가 장비를 새롭게 교체했다는 얘기가 북한 내부에서 돌았다. 당시 나는 별다른 생각없이 흘렸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번 전파교란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설명했다. 신장비 투입에 따른 실험의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실제 전파 업계 내부에선 북한의 이번 GPS전파교란의 행태를 두고 앞서의 ‘정치적·군사적 도발’ 목적과 별개로 기술력 실험의 성격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는 분위기다. 위성항법분야를 다루는 국책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GPS전파교란을 실제 목적에 맞게 이루기 위해선 지형 파악이 최우선”이라며 “북한의 이번 전파교란의 특징은 특정지역이 아닌 휴전선 전방위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실제 특정 타깃을 노렸다기보단 신장비의 남한 지형 적용, 기술력 정도를 계산하기 위해 벌인 일 같다”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물론 현재까지 북한의 전파교란 행위는 실제 이렇다 할 피해가 보고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다. 문제는 북한이 이 부분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꾸준히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전 분야에는 이러한 단순한 재밍을 넘어 좀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진일보한 기술이 존재한다.
재밍의 다음 단계가 바로 스마트 재밍(Smart Jamming)이다. 북한을 포함한 각국의 군에서 공을 들여 연구하고 있는 분야기도 하다. 앞서의 재밍은 그저 센 세기의 전파를 발사하여 적진의 단순 교란을 이끌어내는 수준이라면, 스마트 재밍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스마트 재밍은 해당 타깃에 ‘모사 신호’를 전송하여 타깃의 수송기로 하여금 잘못된 위치와 시간을 받아들이게 하는 기술이다. 사람으로 따지면 일종의 최면을 통해 거짓 정보를 받아들이게 하는 방법이다.
앞서의 양욱 위원은 “스마트 재밍은 일종의 전파 기만행위다. 모사 신호를 통해 해당 타깃을 속이는 것”이라며 “(북한은) 아직 해당 타깃을 교란해 특정한 위치로 유도하는 기술 수준까지 가진 않은 것 같다”라고 추측했다.
더욱 염려되는 전자전 행태는 EMP(전자기펄스·Electromagnetic Pulse)다. EMP는 핵폭발 시 발생하는 강력한 전기장이다. 발생하는 전기장은 사정거리에 있는 모든 전자기기들을 먹통으로 만든다. 실제 핵을 활용한 EMP탄도 존재하지만, 특정한 장비를 활용해 비슷한 효과를 발생시키는 비핵 EMP도 존재한다. 핵기술에 있어서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온 북한의 EMP기술은 우리 군이 가장 경계하는 전자전 기술이기도 하다.
앞서의 양 위원은 “EMP는 단순한 전파교란을 넘어 전자장비들을 태워버리는 수준”이라며 “현재 우리 군은 특정 시설에 대한 EMP차폐(방어) 기술을 활용하고 있지만, 전투기나 전차 등 개별적인 장비에는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분명 주의해야 할 부분”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군 내부에서도 이번 전파교란 도발을 계기로 ‘항 재밍’ 전술을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군 내부에는 교란 행위에 대해 방해기술로 대응하는 별도의 T/F(태스크포스)를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적진의 유도무기 방향 바꿀 수 있다 전파교란 ‘스마트 재밍’ 기술 기본적으로 북한의 이번 GPS전파교란을 포함한 재밍은 직접적인 살상행위가 아닌 교란전술의 한 종류다. 하지만 전파교란을 통한 간접적인 살상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특히 GPS전파를 이용하는 유도무기에 전파교란을 발생시킨다면 끔찍한 결과가 나온다. 유도무기란 전자장치로 지령이 하달되거나 스스로의 기능에 의해 발사된 후 침로나 속도를 계산 및 수정하여 목표에 도달 혹은 명중하는 무기를 말한다. 즉, 전파에 의해 발·수신이 오가며 스스로 타깃으로 향하는 미사일, 어뢰 등을 통칭한다. 지난 2001년 미국의 아프간 공습 당시, 전파교란의 무서움이 전 세계에 증명된 바 있다. 미군은 아프간 카불 공습 당시 적진에 유도 미사일 공격을 꾀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미군이 발사한 유도 미사일들은 적진에서 훨씬 벗어난 지역으로 오발된 사례가 지속적으로 보고됐다. 그중 일부는 민간지역에 떨어지며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범인은 바로 적진에서 발사한 방해전파였다. 당시 알카에다는 일종의 스마트 재밍 기술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유도무기에 전파를 발사했고, 모사 신호에 당한 미사일들은 하나같이 불발돼 민간인들에 큰 피해를 안겼던 것이다. 당시 알카에다의 기술력은 유도무기를 특정 지역으로 유도하는 수준까진 아니었지만, 이론적으로는 현대전에서 스마트 재밍 기술로 타깃의 변경이 가능하다. 이는 곧 적진의 유도무기를 특정 타깃으로 방향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특정 대상의 살상도 가능하다는 해석이 된다. 유도무기의 활용까지는 아니더라도 전투기와 민간기를 포함한 항공기와 선적들에 대한 교란행위도 탑승자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즉 GPS를 통해 위치를 파악하는 항공기와 선적들이 재밍의 위협으로 길을 잃을 경우, 어떤 상황이 발생할 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