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간의 열전을 끝낸 결과는 올해도 중국의 압도적 우세였다. 중국은 무려 11장의 본선 티켓을 가져갔다. 한국은 5장. 일본과 대만은 본선 진출은커녕 대부분 2회전 이내에서 전멸했다. 한국은 이영구 9단, 안조영 9단, 이태현 6단, 최정 6단, 김명훈 4단만이 본선에 이름을 올렸다. 이로써 오는 6월 1일 개막하는 LG배 본선 무대에는 한국 12명, 중국 15명, 일본 4명, 대만 1명(모두 본선시드 포함)의 기사들이 출전하게 됐다.
LG배 통합예선 대국이 펼쳐지고 있는 한국기원 2층 대회장. 위 사진은 최정(왼쪽)과 중국의 저우허시 5단의 대국 모습. 최정은 남녀가 조건 없이 경쟁하는 LG배에서 여자기사 최초로 통합예선을 돌파했다.
이번 대회 한국은 시드를 받아 본선에 직행한 7명(전기 우승·준우승자 강동윤·박영훈 9단과 랭킹에 따라 국가 시드를 받은 박정환, 이세돌, 김지석 9단, 신진서, 이동훈 5단)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사가 통합예선전에 출전해 본선 진출을 노렸지만 겨우 5명만 살아남았다.
랭킹 20위권 내의 최철한, 원성진, 조한승, 윤준상, 목진석, 이지현, 나현, 변상일, 김정현 등에 기대를 걸었지만 모두 중국발 황사바람에 쓸려나가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 들려온 여자기사 최정의 본선진출 소식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최정은 지난 2005년 10회 대회부터 통합예선 제도를 도입한 LG배에서 여자로는 처음으로 통합예선을 거쳐 본선 땅을 밟은 첫 여자기사가 됐다.
이번 통합예선 H조에 속한 최정은 첫판에서 대만의 실질적인 일인자 왕위안쥔 7단에게 흑 반집승을 거둔 이후 황재연 3단(64위)과 안국현 5단(18위)을 연파한 데 이어, 결승에서는 중국랭킹 17위 저우허시 5단을 제압하고 본선 관문을 뚫었다. 최정은 그동안 메이저 세계대회 본선을 다섯 번 경험했었다. 하지만 초청을 받거나 여자기사들끼리 따로 예선을 벌여 본선에 올랐었다. 남녀가 조건 없이 경쟁하는 LG배에서 여자기사가 예선을 돌파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최정이 유일하며, 여자바둑의 전설 루이나이웨이 9단조차 이루지 못한 일이다.
통합예선에서 한국이 중국에 열세를 보이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동안 한국바둑은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등 초일류 몇 명의 능력으로 세계바둑 최강국의 자리를 유지해왔었다.
하지만 이들이 시드를 받아 빠진 가운데 치러지는 통합예선에서는 중국에 밀려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14년 이 대회에서는 한국 4명, 중국 12명이 본선에 진출했었고, 비슷한 방식의 삼성화재배 통합예선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전문가들은 한국과 중국의 선수층을 지적한다. 중국에 비해 허리 층이 엷은 한국이 이런 시스템에선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연 누구를 위한 통합예선이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호를 누구에게나 개방한다는 오픈전의 취지는 좋지만 이러다간 국내 생태계가 남아나지 않는다는 것. 대회 방식을 변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방법은 많겠지만 예전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도 나쁠 게 없다. 예를 들어 본선 티켓이 32장이라면 주최국 한국에 15장, 중국 8장, 일본 6장, 대만 3장을 배분하고 각자 알아서 선수를 선발하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한국은 시드 3장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12장의 티켓을 국내 기사들끼리 경쟁하는 오픈전으로 선수를 선발하면 된다. 중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 선수 선발에 자율권을 주고 자국 기사끼리의 오픈전을 벌여 본선 진출자를 뽑으면 되는 것이다.
현재 통합예선 방식은 심지어 중국 기사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타국 주최 통합예선에 참가할 경우 항공료와 체재비 등 적어도 100만 원의 경비가 필요한데 본선에 오르지 못할 경우 단 한 푼의 대국료도 받지 못한다. 만약 첫판에서 떨어진다면 바둑 한 판 두자고 비싼 체재비만 날리는 셈이다(그런데 네 번을 이기고 마지막 결승에서 지면 더 비참하다. 역시 대국료는 한 푼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LG배 통합예선전에 일본은 갈수록 참가 숫자가 급감해 올해는 겨우 7명만이 참가했는데 위와 같은 이유와 무관치 않다. 이것은 한국 기사도 마찬가지여서 중국 주최 통합예선에 출전할 경우 중국 기사들과 같은 고충을 겪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LG배와 삼성화재배는 국내 주최 대회임에도 본선에 한국보다 중국기사들이 더 많은 웃지 못할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참고로 지난달 열린 중국 주최 춘란배 본선에는 본선 진출자 24명 중 중국이 12명, 한국 5명, 일본 5명 등이었다. 과연 어느 쪽이 옳은 길일까.
혹자는 이미 바뀐 대회 방식을 어떻게 되돌리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해마다 중국의 인해전술에 막혀 채 피어나지 못한 새싹들이 좌절하고, 팬들에게 외면받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하니까 말이다.
유경춘 객원기자
제21회 LG배 본선진출자 명단 한국(12명) 강동윤, 박영훈, 박정환, 이세돌, 김지석, 신진서, 이동훈(이상 시드), 안조영, 이영구, 이태현, 최정, 김명훈 중국(15명) 커제, 구리, 천야오예, 미위팅(이상 시드), 저우루이양, 장웨이제, 퉈자시, 멍타이링, 옌환, 펑리야오, 간쓰양, 당이페이, 판윈뤄, 자오천위, 딩스슝 일본(4명) 하네 나오키, 쑤야오궈, 무라카와 다이스케, 이치리키 료(이상 시드) 대만(1명) 린쥔옌(시드) |
여자기사 최초 통합예선 돌파 최정 인터뷰 “제 미인계가 통했죠! 하하” 최정 6단 ―솔직히 뜻밖이다. 예상했나? “아니다. LG배 직전 중국에서 열린 마인드스포츠 결승전에서 위즈잉에게 역전패당하면서 내내 힘이 빠졌었는데 좀 어리둥절한 기분이다.” ―고비가 있었다면? “저우허시와의 결승전은 마지막까지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첫판 왕위안쥔과의 대국, 안국현 5단과의 대국은 계속 좋지 않다가 역전했다. 마지막에 운이 따라준 것 같다. 아니면 제 미인계가 통했는지도…(웃음).” ―라이벌 위즈잉은 준결승에서 탈락했다. 그때 느낌은? “즈잉이(위즈잉과 최정은 여자바둑리그 부광탁스 팀 소속이다. 최정은 동료 위즈잉을 이렇게 부른다)도 요즘 컨디션이 좋기 때문에 좀 더 올라갈 줄 알았는데 좀 의외였다.” ―본선 목표는? “한 번만 이기고 싶다고 하면 좋아하지 않으실 것 같고(웃음). 루이나이웨이 9단이 응씨배에서 4강까지 올라간 것으로 알고 있다. 저도 그 정도는 하고 싶다.” ―향후 일정은? “7일부터 14일까지 열리는 황룡사배 세계여자단체전에 출전하기 위해 내일 중국으로 떠난다. 우리가 우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