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이덕훈 행장을 비롯한 수출입은행 경영진들의 카드 이용 내역 등 금융거래 정보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모뉴엘 파동’과 ‘성동조선 사태’를 잇달아 겪으며 곤욕을 치렀던 한국수출입은행의 분위기가 요즘 또 하나의 악재 때문에 좋지 않다. 이덕훈 수출입은행장과 관련해 청와대가 직접 조사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거취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수출입은행은 지난 3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이 행장과 부행장들의 업무비 사용 내역과 해외출장 관련 자료들을 넘겨준 상태다. 청와대는 이 행장을 비롯한 수출입은행 경영진들의 카드 이용 내역 등 금융거래 정보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행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황제 출장’ 논란에 시달린 바 있다.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홍종학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 행장이 2014년 3월부터 2015년 9월까지의 기간에 18차례 해외출장을 다니면서 9억 9248만 원을 썼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 행장은 출장 한 번에 평균 724만 원의 항공료와 1박당 평균 69만 원의 숙박비를 쓴 것으로 나타나 비난이 일었다.
이와 관련, 청와대가 부행장들의 출장 비용까지 조사하고 있는 것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주변 압박을 통한 ‘이 행장 옥죄기’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3월 초 기획재정부가 ‘모뉴엘 사태’와 관련해 수출입은행 출범 이래 최대 규모인 57명에 대한 징계 결정을 통보한 데 이어 청와대가 직접 수뇌부의 치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다분히 이 행장을 겨낭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서강대 경제학과 출신인 이 행장은 서금회의 핵심멤버로 꼽히는 인물이다. 대한투자신탁 사장과 한빛은행장을 거쳐 2004년 우리은행장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났고, 이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과 사모펀드인 키스톤 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런 그가 국책은행장으로 전격 취임한 것은 2014년 3월로, ‘서금회 낙하산’이라는 비판 속에 이뤄졌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책임 논란이 불거지면서 입지에 타격을 입기도 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모임의 좌장격인 두 거물이 자기 자신을 돌보느라 바쁜 동안 다른 서금회 멤버들은 하나둘 발밑이 패어들고 있다.
LIG손해보험 시절부터 사장을 맡았던 김병헌 전 KB손보 사장(경영학과 77학번)은 올해 초 KB금융 출신인 양종희 사장에게 CEO 자리를 넘겼다. 역시 서금회 멤버로 알려진 김 전 사장은 2014년 KB금융그룹이 LIG손보를 인수한 직후부터 교체설이 나돌았지만 예상을 깨고 자리를 지키는 뚝심을 보여줬는데, 그 배경에도 서금회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금융권에 파다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2014년 말 김병헌 당시 LIG손보 사장을 직접 만나 회사 이름을 KB손보로 바꾸고 새 CEO를 선임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사명만 바뀌었을 뿐 김 전 사장은 1년이 넘도록 사장직을 수행했다. 이와 관련해 김 전 사장이 당시 서강대 인맥 등을 동원해 구명운동에 나섰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경영학과 77학번인 황영섭 신한캐피탈 사장도 지난 3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신한금융그룹의 차기 회장에 도전할 수 있는 대권 주자를 뽑는 인사였던 만큼 금융권의 관심이 집중됐고, 일각에서는 황 사장의 유임을 점치기도 했지만 옷을 벗고 말았다. 이밖에 남인 전 KB인베스트먼트 대표(경제학과 76학번)는 지난해 초 경영자문역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서금회 멤버 중에는 비록 아직 자리는 지키고 있지만 위태로운 인물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인물이 홍성국 대우증권 사장(정치외교 82학번). 국내 첫 리서치센터장 출신 증권사 사장이자, 전임 사장의 중도퇴임 사태 와중에 취임해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는 이제 거취 문제로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달 대우증권을 최종 인수한 미래에셋증권은 박현주 회장이 직접 두 회사의 통합작업을 지휘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박 회장은 미래에셋자산운용 회장직을 사임하고 대우증권 회장에 취임할 예정인데, 미래에셋생명을 이끌고 있는 최현만 부회장을 대우증권에 투입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홍성국 사장에 대해서는 “일단 유임한 뒤 통합 작업의 결과에 따라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밝혔지만 홍 사장 입장에서는 마음 편할 리 없는 구조가 됐다. 홍 사장의 임기는 오는 2017년 말까지다. 하지만 미래에셋은 올해 안에 통합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어서 합병 이후에도 홍 사장의 임기는 1년이나 남는다. 그가 이 기간 동안 버텨낼 수 있을지 금융권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한 대형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홍 사장은 합병 후 구조조정을 우려하는 직원들을 달래면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바로 나’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이미 마음을 비웠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이광구 우리은행장(경영학과 76학번)도 탄탄한 입지는 아니다. 이 행장은 2014년 12월 2년 임기 내 우리은행을 민영화하라는 임무를 받고 취임했다. 그리고 중동과 싱가포르에 이어 영국 런던, 독일 등 세계를 돌며 우리은행 세일즈에 나서고 있지만 마땅한 인수 후보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그가 임무라 할 수 있는 민영화가 예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4차례나 실패한 우리은행 민영화를 이뤄낼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은행장에 올랐었다.
박지우 KB캐피탈 대표 역시 서강대 외교학과 출신이지만 금융권에서 서금회 멤버들은 하나둘 물러나면서 입지가 불안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의 후임으로 거론되던 남주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가 논란 끝에 선임되지 않으면서 서금회 멤버는 더욱 희귀해졌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