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IJ, 글로벌 공동 프로젝트 ‘파나마 페이퍼스’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의 프레데릭 오베르마이어 탐사보도 전문기자는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모색 폰세카의 내부 자료를 입수했다. 모색 폰세카는 전 세계 주요 도시와 조세도피처에 40여 개의 해외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대형 법률 회사로 역외 탈세와 자금 세탁 분야에서 세계 5위권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2.6테라바이트(TB) 용량의 이 자료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1150만 건의 문서가 들어 있었다. 문서에는 1997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조세도피처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 22만여 개의 설립 관련 서류와 주주 및 이사 명부, 내부 직원 간 이메일 등이 포함돼 있었다.
프레데릭 오베르마이어 탐사보도 전문기자는 “뛰어난 탐사보도 전문 저널리스트 집단의 힘을 믿었기에 자료를 공유하기로 했다. 유출된 자료가 워낙 크기 때문에 우리 신문 홀로 취재한다면 20년이 걸려도 다 할 수 없다. 그러나 전 세계 수백 명의 기자들이 함께 일한다면 매우 중요한 기사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ICIJ에 국제 협업을 요청했다.
지난해 9월 독일 뮌헨에 위치한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 본사 대회의실에 전 세계 60여 개 언론사 기자와 프리랜서 언론인 등 200여 명이 모였다. ICIJ와 <쥐트도이체차이퉁>의 주관으로 모색 폰세카에서 유출된 데이터를 공동 분석하고 취재하는 글로벌 공동 프로젝트 파나마 페이퍼스가 구성됐고, 영국 BBC방송과 <가디언>, 프랑스 <르몽드>, 일본 <아사히신문>과 교도통신, 대한민국 뉴스타파 등 전 세계 76개국, 109개 언론사, 376명의 언론인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전 세계 고위 정치인·관료·슈퍼리치 대거 포함
법인이 얻은 소득의 전부나 일정 부분에 대한 조세 부과가 이뤄지지 않는 국가나 지역을 조세도피처라 한다. 파나마 페이퍼스가 공동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분석한 모색 폰세카의 내부 자료에는 탈세, 돈세탁 등의 자금거래의 온상인 조세도피처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 21만 4488개의 정보가 포함돼 있었다. 파나마 페이퍼스는 프로젝트 분석을 통해 전 세계 각국의 정상 12명과 그들의 친인척 61명, 고위 정치인과 관료 128명, <포브스> 갑부 순위에 이름을 올린 슈퍼 리치 29명 등의 이름을 공개했다.
각국 현직 정치 지도자는 아르헨티나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 아이슬란드 사그뮌뒤르 다비드 귄뢰익손 총리, 사우디아라비아 살만 빈 압둘아지즈 빈 압둘라흐만 알 사드 국왕, 아랍에미레이트 칼리파 빈 자예드 빈 술탄 알 나얀 대통령, 우크라이나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 등이다. 또 조지아 비드지나 이바니슈빌리 전 수상, 이라크 아야드 알라위 전 총리, 요르단 알리 아부 라게브 전 총리, 카타르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알 타니 전 국왕, 수단 아메드 알리 알미르가니 전 대통령 등의 전임 정치 지도자들도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음이 밝혀졌다.
친부 이안 캐머런의 이름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지난 2009년 매형 덩 쟈구이의 이름으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 2개를 설립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도 포함돼 있었다. 또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전·현직 상무위원 8명의 가족들도 페이퍼컴퍼니를 소유하고 있었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유명 영화배우와 스포츠 선수들도 유출 자료에 이름이 등재돼 있었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는 친아버지인 호세 호라시오 메시와 함께 ‘메가스타 엔터프라이즈(Mega Star Enterprises)’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또 레오나르도 우요아, 가브리엘 에인세, 이반 사모라노 등 전·현직 축구 스타들과 함께 FIFA 윤리위원인 후안 페드로 다미아니가 운영하는 페이퍼컴퍼니도 확인됐다. 유명 영화배우인 성룡도 최소 6개 이상의 페이퍼컴퍼니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성룡이 페이퍼컴퍼니를 부적절한 목적으로 이용했는지는 증거가 전혀 없다.
또 멕시코의 마약왕, 헤즈볼라(미국,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테러행위를 벌여온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세력)를 비롯해 북한, 이란 등과의 거래로 미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 및 기업이 최소 33건 포함돼 있었다. 국제적 규모의 금융사인 UBC와 HSBC도 금융 자산을 숨기고 싶어하는 고객을 위해 1만 5300개 이상의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그의 장남 노재헌 씨.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는 모색 폰세카의 내부자료를 분석한 결과 ‘Korea’로 검색되는 파일이 1만 5000여 건에 이르며, 이 중 한국 주소지를 기재한 한국인 이름 195명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특히 유출 자료 내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씨의 이름도 추가로 발견됐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노 씨는 2012년 5월 18일 조세도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3개의 회사를 설립, 자신이 직접 주주 겸 이사에 취임했다. 노 씨가 설립한 One Asia International, GCI Asia, Luxes International라는 이름의 회사는 1달러짜리 주식 1주만을 발행한 전형적인 페이퍼컴퍼니였다. 특히 노 씨는 Luxes International에 자신과 함께 GCI 아시아(GCI Asia Inc.)를 주주로 등재하는 등 소유구조를 중층적으로 설계했다. 세 회사 모두 모색 폰세카의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지점이 있는 빌딩에 주소를 두고 있었고, 노 씨는 자신의 주소를 홍콩으로 기재했다. 노 씨는 2013년 5월 24일 세 회사의 이사직에서 사퇴, Ona Asia International과 GCI Asia를 첸 카이(Chen Kai, 중국인 추정), Luxes International을 김정환(Kim Jung Hwan)에게 이사직을 넘겼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신원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노 씨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사업 목적으로 1달러짜리 회사를 몇 개 설립했지만 이혼 등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회사를 이용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조세도피처로 흘러갔는지에 대한 의혹은 여전하다. 노 전 대통령의 추징금 납부를 둘러싼 법적 공방과 노 씨의 이혼 소송 등으로 노 씨에 대한 비자금 상속 여부가 주목됐던 시점과 페이퍼컴퍼니 설립 시점이 맞물린 이유다. 더구나 해당 페이퍼컴퍼니의 이사직에서 사퇴한 2013년 5월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 씨가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는 내용이 뉴스타파를 통해 보도된 직후였다. 버진아일랜드에 ‘블루 아도니스(Blue Adonis)’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던 전 씨는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싱가포르에 있는 아랍은행에 계좌를 개설해 검찰 수사를 받은 바 있다.
뉴스타파는 한국 조사가 기재된 한국인 195명에 대한 신원 확인 작업을 하고 있으며, 신원 확인이 되는 대로 순차적으로 명단과 취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뉴스타파 측은 ‘조세도피처의 한국인들 2016’을 공개하면서 “195명 중에 두 자릿수는 신원이 확인됐다. 일부는 해외 사업을 하려고 합법사업을 했다고 소명한 경우도 있다. 그런 소명이 적합한지에 대해 자료를 확인하고 나서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뉴스타파는 노 씨의 페이퍼컴퍼니 설립이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노 씨가 SK그룹의 특수관계사인 IT기업 인크로스의 홍콩 자회사에 대표로 재직한 바 있고, 대표 재직 당시 홍콩 중개회사를 통해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SK그룹은 “노 씨 개인의 문제”라며 “그룹 차원에서 해명 또는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설명했다.
유시혁 기자 evernuri@ilyo.co.kr
북한도 유령회사 설립 왜? 핵개발 자금 세탁 의혹 이번 모색 폰세카 유출 자료 ‘파나마 페이퍼스’에 북한 금융기관 및 합작회사가 발견됐다. 발견된 회사는 DCB파이낸스(DCB Finance Ltd)와 피닉스 커머셜 벤쳐스(Phoenix Commercial Ventures Ltd)다. DCB파이낸스의 주주는 김철삼, 이사는 나이젤 코위라는 이름으로 등록돼 있다. 문서에서 김철삼의 주소는 평양시 중구역 서창동, 나이젤 코위의 주소는 중구역 국제문화회관이다. 서창동은 평양시내 주요 관청이 밀집한 지역이다. 또한 김철삼은 북한 대동신용은행 다롄 지점 대표, 나이젤 코위는 대동신용은행의 전 은행장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모색 폰세카를 통해 조세도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DCB파이낸스라는 회사를 등록한 것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나이젤 코위는 영국 국적소유자로 1995년 북한으로 이주했다. 그는 2006년 대동신용은행 주식의 70%를 매입해 대동신용은행장이 됐다. DCB파이낸스 역시 같은 해인 2006년 6월에 설립됐다. 미국 재무부 측은 <가디언>에 “대동신용은행은 최소한 2006년부터 DCB파이낸스를 국제 금융 거래에 사용했을 것”이라며 “당시 세계는 핵문제 등으로 문제가 된 북한과의 금융거래를 피했고 그 대체 수단으로 DCB파이낸스를 운영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북한의 페이퍼컴퍼니인 피닉스 커머셜 벤쳐스 역시 코위가 주주로 있다. 이 회사 주주명단에는 코위 외에 영국 국적의 케네스 아더 프로스트, 프랑스 국적의 올리비에르 루, 북한 국적의 태영남 등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피닉스 커머셜 벤쳐스는 북한의 외자 합작 기업인 하나전자를 운영하는 법인으로 코위, 프로스트, 루는 모두 법인 이사로 확인됐다. 태영남은 북한 국적이라는 것 외에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한편 김철삼은 2013년 미국 재무부가 지목한 제재 대상 인물이다. 김철삼은 당시 수백만 달러의 북한 관련 계좌를 관리한 혐의를 받았다. 이에 미 재무부는 북한의 핵 개발을 지원하는 자금줄 차단 목적으로 김철삼 개인을 비롯해 대동신용은행, DCB파이낸스 등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
메시도 윤리위원도…FIFA 신뢰성 다시 논란 파나마 페이퍼스로 인해 국제축구연맹(FIFA)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후안 페드로 다미아니 FIFA 윤리위원이 부패사건 등으로 기소된 인물들과 사업 관계를 맺었다는 내용이 문건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다미아니는 우루과이 출신 변호사로 스캔들이 불거지자 지난 6일 FIFA 윤리위원직을 사임했다. 다미아니와 관계를 맺은 인물들은 에우제니오 피게레도 전 FIFA 부회장과 아르헨티나 출신의 휴고·마리아노 진키스 부자다. 피게레도 전 부회장은 지난해 5월 자금세탁, 금융사기 등의 혐의로 스위스 검찰에 체포됐다. 문서는 피게레도가 설립한 페이퍼컴퍼니 가운데 최소 7개의 회사가 다미아니의 도움을 받았다고 전했다. 진키스 부자는 라틴아메리카 축구 경기 방송권 확보를 위해 수천만 달러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다미아니는 진키스 부자와 연관 있는 조세피난처 관련 회사의 중개인으로 활동했다. 문서에는 관련 회사들의 직접적인 불법 행위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다미아니 역시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이들과 어떠한 전문적인 관계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페이퍼컴퍼니 설립은 과세를 회피하고 재산을 숨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비리 정황으로 간주된다. 다미아니 외에 세계적인 축구선수들의 이름도 문서에 언급됐다. 눈에 띄는 이름은 세계적 축구스타 리오넬 메시다. 문서에서 메시의 페이퍼컴퍼니는 2013년 6월 13일에 처음으로 언급된다. 이는 스페인 검찰이 메시와 그의 아버지 호르헤 메시를 탈세 혐의로 기소한 바로 다음날이다. 메시 외에도 지아니 인판티노 FIFA 신임회장, 미셸 플라티니 전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출신의 가브리엘 에인세, 레스터시티 소속 선수 레오나르도 우요아 등이 탈세 의혹을 받고 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