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김 아무개 씨(46)와 반미라 상태의 시신으로 발견된 박 씨는 무슨 관계일까. 애초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 김 씨는 박 씨의 친아들이 아닌 ‘양아들’로 알려졌다. 제일 처음 사건 현장에 출동한 파출소 관계자 역시 “김 씨는 양아들”이라고 밝혔다. 일부 언론을 통해 김 씨가 ‘양아들이 아닌 친아들’로 보도가 됐음에도 여전히 양아들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건을 담당한 이규훈 용산경찰서 강력계 계장은 “김 씨는 박 씨의 외아들”이라며 “왜 애초 양아들로 보도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씨의 부친은 이미 사망했으며 김 씨에겐 처자식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김 씨는 박 씨의 유일한 직계 혈육인 셈이다.
지난 10월 박 씨는 강북 소재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대장암 투병 중 사망했다. 집으로 시신을 운구한 뒤 그 사실이 적발된 4월까지 무려 6개월 동안 시신을 방치했다. 박 씨의 시신은 지난 4월 5일 아파트 외부 유리창 청소를 하던 청소업체 직원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박 씨의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방 안이 쓰레기 등으로 지저분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이를 근거로 김 씨가 시신을 유기했다고 판단해 사체 유기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입건했다.
반미라 상태의 모친 시신을 6개월 동안 집 안에 유기한 아들의 행동에 의문이 일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일요신문DB
경찰 수사 과정에서 김 씨는 박 씨의 시신을 방치한 이유에 대해 “시간이 없었다”며 “사업차 지방을 오가다 발생한 교통사고를 처리하느라 장례식을 미뤘을 뿐이며 지금도 장례의식을 치르는 중”이라고 주장했다. 시신이 발견된 20억 상당의 아파트는 김 씨 소유다. 혈육이 김 씨뿐인 터라 유산 분쟁의 소지도 없어 보인다. 용산경찰서 측은 김 씨가 시신은 유기했지만 이와 연관된 범죄 행위 등 별다른 혐의점은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박 씨가 사망한 대학병원에선 병원비 완납이 확인돼 사망진단서를 발급해줬다. 사망진단서가 있어야 비로소 시신이 병원 밖을 나갈 수 있다. 사망진단서가 보호자에게 시신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해당 대학병원 관계자는 일반적인 고인의 시신 인계 과정에 대해 “장례식장 예약이 확인되면 시신을 인계한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사망했을 경우 해당 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는 경우와 타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는 경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다만 이번 사건의 경우처럼 집으로 시신을 운구해가는 이례적인 경우도 있다. 거의 사라졌지만 집에서 장례를 치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가 만나 본 시신 운구 업계 관계자들은 집으로 고인을 운구해가는 경우는 매우 특이한 케이스라고 입을 모았다. 한 관계자는 “간혹 시골 분들은 집에서 장례를 치르길 원하기도 한다”면서 “고인을 모시고 생전에 생활했던 곳에서 함께 지내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도 대개 장례는 병원에서 치른다”고 말했다. 이어 “집에서 모실 수는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기간이 비상식적이다“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렇다면 김 씨는 어떻게 시신을 집까지 운구했을까. 고인을 합법적으로 운구할 수 있는 수단은 대개 운구차, 장의차, 시신 운반용 앰뷸런스 등이다. 자택에서 사망해 이동할 경우 운구차를 이용하며 병원에서 사망해 이동할 경우엔 운반할 땐 앰뷸런스를 이용할 수 있다.
김 씨는 고층 아파트에 살았다. 업계 관계자는 고인을 집으로 모시는 경우에 대해서도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접고 펴기가 가능한 일명 ‘침대카’를 사용하거나 보호자가 직접 고인을 업거나 안고 올라가는 방법이다.
또한 업계 관계자는 “이송단은 119와 달리 사설 업체기 때문에 시신 운구에 아무래도 민감하다”고 귀띔했다. 자칫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어 “병원을 나서기 전에 시신 운구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없었다면 절대 운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김 씨가 이송단에게 납득할 만한 이유를 설명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박 씨 시신은 경찰 수사가 시작되며 인근에 위치한 A 대학병원 장례식장 안치실로 옮겨졌다. 지난 7일 오전 기자가 해당 장례식장을 찾았을 때 관계자는 “아무래도 언론에 관심을 받고 있으니 김 씨에게 장례를 치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으나 아직까지 별 다른 말은 없었다”면서 “박 씨 시신은 안치실에 보관하고 있으며 하루에 10여만 원의 시신 안치 비용이 든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당장 장례 의사가 없어보였다는 관계자들의 말과 달리 지난 7일 밤 김 씨는 A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다시 시신을 찾아갔다. 김 씨가 박 씨의 시신 운구 사실을 경찰에 알릴 의무는 없지만 용산경찰서도 ‘혹시나’하는 마음에 밤새 김 씨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이 계장은 “자가용으로 시신을 운구했다”며 “익산에 김 씨 명의의 모텔이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현재 김 씨는 모텔에 시신을 안치해뒀다. 장례는 아직 치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사건을 익산경찰서에 위임한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익산경찰서도 난감하긴 마찬가지. 익산경찰서 관계자는 “시신을 관내로 가져왔다고 해도 ‘무엇’을 할 수 있겠냐”면서 “장례를 치러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취재 과정에서 김 씨를 직접 만났던 이들을 여럿 접촉했는데 그들은 대부분 김 씨를 “독특하다”고 묘사했다. 경찰 수사를 받고 다시 모친 박 씨의 시신을 모텔로 옮긴 김 씨의 행보 역시 독특하다.
한편 용산경찰서는 “이번 사건은 곧 사체유기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해진 법률사무소 함께 걷기 변호사는 “언론에 보도된 바와 달리, ‘살인’과 ‘사체 유기’는 별도의 범죄다. 살인을 하지 않았더라도 장례를 지낼 의무가 있는 사람이 사회 통념상 인정될 수 있는 장례를 지내지 않고 사체를 방기했다면 사체 유기죄가 성립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