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 오전 9시께 노량진역에서 연결되는 노량진수산시장 입구에 수협노량진수산 주식회사 사원증을 목에 건 직원이 안내문이라고 쓰인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었다. 전단지에는 ‘노량진수산시장이 지난 3월 16일부로 폐쇄된 시장이며 철거예정 시설로 안전사고 위험이 있다’며 ‘법률상 도매시장으로 허가된 신축 현대화시장을 이용해 달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폐쇄된 시장이라는 안내와 달리 수산시장 입구에서부터 ‘구경하고 가라’는 활기찬 소리와 생선 냄새가 시장을 가득 메웠다. 거의 모든 상인들은 ‘단결 투쟁’이라고 써 있는 빨간 조끼를 입고 있었다. 아침 시간이라 구매하는 사람들로 붐비지는 않았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생선들을 구경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건물 이전을 놓고 상인들과 수협이 갈등을 빚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노량진 수산시장을 방문해 상인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서울시
20년째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생선을 팔아 온 김 아무개 씨(46)는 “좋은 새 집을 지어줬다면 당연히 갔을 것이다. 누군들 쓰러져가는 헌집에서 계속 살고 싶겠냐”며 “새로 지은 데는 일반 마트지 전통시장의 요소를 하나도 반영하지 않았다. 지금 시장의 멋스러움이 아예 없어지면 노량진까지 안오고 마트에 갈 것이다”라며 하소연했다.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인 2004년 정부의 ‘수산물유통체계 선진화방안’에 ‘수산물도매시장 현대화 추진’이 포함되면서 추진됐다. 지난 2015년 10월에 연면적이 11만 8346㎡인 지하 2층, 지상 6층 건물이 완공됐다. 건물이 완공되면서 수협과 상인들의 갈등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현대화 건물이 완공되자 수협은 올해 1월부터 영업을 시작하려 했지만 상인들의 이전 반대로 지난달 3월 15일까지로 연기했다.
수협 측에서는 지난 3월 15일로 연장했던 계약만료일이 됐기 때문에 상인들이 새 건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상인들이 이를 지키지 않아 구 시장을 무단 점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상인들은 계약 만료일을 철거 시점으로 보는 수협과 달리 입주 시점을 계약 만료일로 보고 있었다. 이채호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비상대책총연합회 사무국장은 “수협 측에서는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계약만료일이 지났다며 3월부터 용역업체를 고용해 지금 노량진수산시장의 철거를 진행하고 있다”며 “지난달 26일에는 용역업체에서 상인들과 손님들이 식사하는 식당의 가스를 끊었다. 식사를 할 수가 없어 임시로 간이테이블을 갖다 놓았더니 그것마저 다 부수고 갔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이어 “지난달 31일에는 수협이 구 시장 주차장 폐쇄를 하려고 해 상인들인 할머니들이 이를 막다가 연행이 되기도 했는데 부위원장이었던 김 씨가 이에 화가 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며 “개별적인 행동이었고 바로 제명조치를 했다. 폭행은 우리로서는 원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말로 합의를 해야지 때려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 6일 밤에도 구 시장 주차장 폐쇄를 위해 수협이 대형 포클레인 등을 투입하면서 상인들과 수협 직원들이 밤새 대치하기도 했다.
이들이 현대화 건물로의 이전을 반대하는 큰 이유는 지금과는 다른 현대화건물의 내부 구조에 있다. 상인 비대위 측에서는 “당연히 지금 사용하고 있는 시장의 1층 면적과 현대화 시장의 1층 면적이 같은 수평이동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완공이 거의 다 된 시점에서야 복층으로 공사가 되고 있음을 알았다”며 “수산물도매시장에서는 넓은 1층 면적이 중요한데 지금 새 건물은 대형마트에 가까운 형태라 수산물도매시장의 특수성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대화시장 사업 진행 당시 관련 실무자들과 상인들의 소통이 없었기 때문에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생겼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기자간담회에서 “설계, 공사 전에 건물 운영자를 미리 정하고 충분한 대화를 거쳐야 갈등을 막을 수 있다”면서 “노량진수산시장의 경우 그런 단계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고 지난 7일 지적한 바 있다. 이에 수협 측은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은 2007년부터 워크숍 2회, 설명회 14회 등 수십 차례의 각종 회의를 통해 충분한 의사소통을 거쳐 사업을 진행해 왔다”면서 “현대화 시설 도면을 사무실에 비치해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대다수 상인들은 수개월 동안 입주를 거부하며 공청회를 통해 유통을 위축시킬 시장 근대화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청구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강제입주를 하더라도 수도권 수산물 시장의 절반을 담당하는 노량진 도매시장의 유통기능에 장애가 발생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수협은 도매시설 운영에 차질이 생기자 법적인 절차를 통해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기존 시장에서 계속 영업하는 상인들을 무단 점유자로 간주하고 손해명도,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 중이다. 수협 관계자는 “계약기간이 만료된 지난달 15일까지 상인들이 이전할 수 있도록 설득을 해왔지만 일방적인 주장만 내세워 입점을 거부하고 있다”며 “기존 시장에서 계속해서 영업하는 상인이 있을 경우 무단점유자로 간주해 사용료를 물릴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
새로운 노량진수산시장은 한산해 4월 7일 수협에 따르면 신축 시장이 지난달 16일 공식 개장했고 기존 시장 내 총 680개 소매점포 가운데 240개가 신축 시장으로 이전했다. 직접 찾은 신 시장의 절반 이상은 아직 입주가 안 돼 텅 빈 상태였다. 상인들뿐만 아니라 손님 수도 적었다. 손님들 발길이 붐비고 있는 구 시장과 확연히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기존 시장에서 이전한 김 아무개 씨(49)는 “옮기라고 해서 다른 상인들보다 먼저 옮겼는데 훨씬 좁고 임대료도 비싼 편이다”며 “대다수가 아직 구 시장에 남아있으니 손님들도 많이 찾지 않아 매출에 영향이 있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