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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2004년 5월 미켈럽울트라오픈에서 통산 23승을 거둔 뒤 이유를 알 수 없는 부진의 늪에 빠져 헤맨 시간이 2년이 넘는다. ‘골프 여왕’이 일부 네티즌들에 의해 ‘주말 골퍼’보다 못한 수준으로 전락했다는 참담한 비난과 출처 분명의 온갖 루머들 속에서 박세리의 자존심은 상처받고 짓이겨져 회복 불능 상태에까지 다다랐다. 그런 그가 2006년 6월, 8년 전 자신을 처음으로 미국 대회 정상에 오르게 했던 맥도널드LPGA챔피언십에서 극적인 역전 우승을 올리며 새롭게 부활의 신호탄을 알렸다.
아플 만큼 아파봤고 울 만큼 울어봤고 할 만큼 해봤다는 지독한 슬럼프의 시간들. 오랜만에 기자와 마주한 박세리는 진심으로 그 2년여의 시간들이 자신에게 엄청난 변화와 발전의 계기를 만들어준 것 같다며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지난 12월 15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렉서스컵여자골프대항전(애니카 소렌스탐이 속한 인터내셔널팀과 박세리가 포함된 아시아팀의 대결에서 아시아팀이 우승했다)을 마치고 귀국해선 몸살로 그냥 누워 있었다는 박세리를 지난 22일 대전 유성 집에서 만났다.
―아파서 그런지 살이 많이 빠진 것 같다. 얼굴도 핼쓱하고.
▲더운 미국과 추운 한국, 그리고 섭씨 34도가 넘는 싱가포르를 오락가락하면서 탈수 증세가 나타났다. 국가대항전이라 내가 무너지면 다른 선수들에게 민폐가 되기 때문에 아파도 아프다는 말도 못하고 경기를 마쳤는데 대회 끝나자마자 곧바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최근에 한국 선수들이 국가대항전을 치르면 유난히 성적이 좋다. 지난 번 한일대항전에서도 우리가 이기지 않았나.
▲2~3년 전까지만 해도 팀 경기가 부자연스러웠다. 골프가 워낙 개인 운동이다보니까 팀워크를 다지거나 팀 플레이를 하는 데 익숙하지가 않다. 그런데 후배들이 엄청 많이 늘어나면서 분위기가 아주 좋아졌다. 나이가 열 살 이상씩 차이 나니까 라이벌이라는 느낌보다는 그냥 예쁜 동생같다. 내가 98년에 미국으로 진출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골프를 시작했다는 후배도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얘기를 들을 때는 믿겨지지가 않는다. 내가 너무 나이를 많이 먹은 것 같아서(웃음).
―2년여 동안 말로 표현 못할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낸 걸로 안다. ‘얼마나 힘들었느냐’는 질문을 안 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해야 할 것 같다.
▲ 지난 17일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렉서스컵골프대회에서 아시아팀이 승리한 후 박지은이 박세리에게 샴페인을 붓고 있다. 연합뉴스 | ||
박세리는 한순간에 모든 걸 다 잃은 것 같았다고 한다. 매사에 자신이 없어지고 재미도 없고 사람 만나는 것도, 전화 통화조차도 귀찮아졌단다. 숨은 쉬고 있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었다는 말도 이어졌다. 우울증 초기 증세가 아닐까 싶을 정도의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차라리 골프채를 놓고 아예 놀기만 하자는 생각도 해봤지만 안타깝게도 골프는 배웠으면서도 노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해 7월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손가락을 다쳐 시즌을 중도 포기했다. 어쩔 수 없이 LPGA 투어에 병가를 신청했는데 그때 참 많은 소문들이 떠돌았다. 알고 있었나.
▲내가 가장 황당하고 당황했던 소문이 있었다. 일주일에 3~4일을 병원에 다니며 손가락 치료를 했지만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고민 고민 끝에 어쩔 수 없이 병가를 낸 것인데 어느 신문에서 내가 명예의 전당 입회 충족 자격인 한 시즌 12개 대회를 채웠기 때문에 계획적으로 병가를 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정말 너무 언론에 실망했다. 동정은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나 아파서 발버둥치다가 어쩔 수 없이 휴가를 낸 선수에게 계획 운운하면서 뭐라고 씹는 기사들을 대할 때 살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그동안 많이 잘못하고 살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정리가 됐나보다. 요즘 박세리를 만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밝아졌다’는 표현이다. 그만큼 웃는 얼굴이 많아졌다는 뜻인데.
▲골프채를 멀리하면서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이전에 꽉 찼던 마음 속 공간에 쉴 틈이 생긴 것이다. 이전에는 귀찮고 힘들었던 부분들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존재들로 바뀌었다. 누구를 봐도 웃으며 인사를 건넸고 LPGA에서 뛰는 외국 선수들이 부상에서 회복하고 돌아온 나에게 진심으로 반가움을 전할 때 나 또한 마음을 다해 그들의 진심을 받아들였다. 골프 생활에 가장 중심이었던 성적이 잠깐 옆으로 비껴난 것이다.
박세리는 무엇이든지 완벽에 가까운 도전과 결과를 바란 데에서 한결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이전에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았던 삶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실수를 해도 웃어 넘길 줄 아는 편안함이 자리했다. 그래서 박세리는 2년여의 공백기가 전혀 아쉬운 것도, 아까운 것도 없는, 너무나 소중한 ‘체험 삶의 현장’을 제공했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는 2006년이 자신의 골프 인생 중 최고의 해라고 서슴없이 얘기한다.
―국내 골프 선수 중 가장 많은 루머를 양산해낸 선수다. 여러 가지 소문들 중 본인이 듣기에도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났던 소문이 있다면.
▲진실이 아닌 소문은 다 화가 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정말 날 열 받게 했던 건 ‘임신설’이었다. 그 소문은 이미 98년도에 한 번 떴던 소문이었다. 그런데 슬럼프에 빠지니까 다시 임신을 했다가 수술을 받았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아니 내 옆에 남자라도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남자도 없이, 남자도 안 만나고 어떻게 아이를 가질 수 있겠나. 동정녀 마리아도 아니고. 시집 갈 나이의 여자한테 말도 안 되는 소문으로 공격하는 사람들의 정체가 정말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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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눈을 찌르는 눈썹 때문에 눈을 살짝 집은 건 인정한다. 그러나 턱을 깎았다는 소문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알아보니까 턱을 깎으면 정상적인 투어 생활을 못할 만큼 고통스런 후유증이 있다고 하더라.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턱 수술을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나. 이뿐만 아니다. 술을 너무 잘 마시는 ‘말술’이라든가 감기약 먹은 걸‘약’ 먹었다고 오해할까봐 걱정에 떤 적도 있었다.
―원망도 많았을 것 같은데.
▲‘박세리 골프는 끝났다’는 얘기가 나올 때는 정말 서러워서 많이 울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싶어서 참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몇몇 사람들의 바람대로 박세리가 여기서 주저앉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만큼 들었다. 인터뷰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 ‘결혼’과 관련된 내용이다. 묻기 전에 알아서 대답을 해봐라.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 공부를 많이 한 사람, 집안이 튼튼한 사람 등 여러 가지 조건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 인생은 골프와 뗄 수 없는 삶 아닌가. 어떤 남자든 내 환경과 그가 갖고 있는 환경과는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직업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나한테 맞춰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앞서 얘기한 조건들은 하나도 중요하지가 않다. 내 골프를 이해하고 사랑해주고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배려해 줄 수 있는 멋진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박세리랑 결혼하는 남자라면 결혼 이후로 삶이 고달플 것이란 사실이다. 요즘엔 결혼하는 사람들이 너무 신기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어떤 마음이 돼야 결혼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빠른 시일 내에 내 옆에 남편을 앉혀 놓고 같이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후후 하여튼 내 미래의 배우자가 참 많이 궁금하다.
‘골프 여왕’이란 타이틀에 걸맞게 유명 정치인(심지어 청와대에서도)이나 기업인들로부터 가장 많은 라운딩 제의를 받았던 박세리다. 얼마든지 목에 힘을 주고 타이틀만 갖고 살 수 있지만 박세리는 ‘박세리다운’ 생활을 추구한다.
“내년엔 더 많이 웃고 싶어요. 성적이 안 나와도 웃을 거예요. 그리고 정말 결혼도 하고 싶어요. 재미있는 소원이라면 이상한 루머는 사절하지만 남자와의 스캔들성 기사라면 절대 환영합니다. <일요신문>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세리 결혼하게 좀 도와주세요!!^^.”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