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 도하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김동선 군과 아버지 김승연 회장(왼쪽). 연합뉴스 | ||
그러나 이런 걱정 속에 또 다른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막내 아들인 동선 군(17·갤러리아 승마단)이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미국 텍스터고등학교 3학년인 동선 군은 2008 베이징과 2012 런던올림픽에서 입상을 노리는 한국 승마의 차세대 희망이다.
그럼 여기서 잠깐. 재벌가의 막내 아들이 왜 이렇게 위험한 운동을 하는 걸까. 당연한 의문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승마는 위험하지 않고 한국 재벌가에서 승마는 배워둬야 할 스포츠다.
박원오 대한승마협회 전무는 “승마는 안전 규칙을 지키면 절대 위험하지 않다. 김형칠 선수는 1000만분의 1의 확률 정도로 일어난 불운의 희생자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안전 문제는 접어두고 한국의 재벌과 승마에 대해 관심을 집중해보자.
한국의 재벌 중 승마와 가장 먼저 인연을 맺은 인물은 동선군의 할아버지인 고(故) 김종희 한화 창업주다. 고 김 창업주는 50년대부터 서울 수송동에 있던 경찰기마대의 승마클럽인 ‘금안회’에서 말 타기를 즐겼다.
한국 승마의 태동기였던 초기에는 금안회와 서울승마구락부, 뚝섬 승마장 등이 승마의 본거지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금안회와 서울승마구락부에 정재계 인사들이 모였고 뚝섬은 두 곳보다는 구성원의 사회적인 지위가 낮았다.
고 김 회장은 1964년 도쿄올림픽 때 한국 승마대표팀이 말이 없어 곤란을 겪자 자비를 들여 외국에서 말을 구해와 올림픽에 참가하도록 돕는 등 승마에 큰 애착을 보였다. 당시 말 이름은 ‘다이너마이트’로 화약 회사다운 작명이었다.
김승연 회장은 아버지를 따라 자연스럽게 승마에 입문했고 상당한 실력을 자랑한다. 김 회장은 개인적으로 보유하던 말 일곱 두를 상무에 기증하는 등 승마 사랑이 부친을 닮았다는 말을 들었다.
창업주로부터 내려온 한화의 승마 가족 역사는 김 회장의 세 아들 중 막내인 동선 군이 잇고 있다. 4년 전 승마를 시작한 동선 군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동선 군의 두 형은 승마에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김 회장은 동선 군이 승마에 재능을 보이자 3년 전 일산에 ‘로얄 새들’이란 이름의 승마클럽을 직접 열어 아들의 훈련을 뒷바라지하는 것은 물론 승마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곳은 스물다섯 두의 말을 보유 중이고 여섯 명의 선수가 소속돼 있다.
▲ 정몽준 축구협회장(왼쪽)과 이재용 삼성 상무도 승마에 일가견이 있다. | ||
이건희 회장이 승마를 접하게 된 계기는 80년대 중반 당한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이 회장은 사고 이후 어깨와 등에 통증을 느꼈지만 승마를 하면서 고통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사실 승마는 자폐증, 정신지체아들의 재활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건희 회장은 대한승마협회의 예산을 일부 지원하는 등 승마 발전에 큰 돈을 내놓고 있다. 이 회장은 평소 “승마는 국가 지명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기업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히고 있다.
이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 상무는 서울대 재학 시절 승마국가대표로 나가 아시아선수권대회서 2위에 입상할 만큼 두각을 나타냈으나 말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선수생활을 그만뒀다. 일본 게이오 대학으로 유학을 가서도 승마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 상무의 선수 은퇴를 두고 승마인들은 한국 승마 발전에 큰 손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는 후문이다.
직접 승마단을 운영하지 않지만 현대가(家) 남자들의 승마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정몽준 축구협회장은 대학시절 전국체전에 나가 2위에 올랐고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사장, 정몽익 KCC 사장 등도 모두 승마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승마계에서는 “현대가에서 이름에 ‘몽’ 자가 들어가는 남자들은 모두 말을 탈 줄 안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다.
또 LG 재벌가 남자들도 승마의 맛을 알고 있어 자연스럽게 재벌가 남자들은 어린시절부터 승마를 통해 친목을 도모하는 기회를 자주 갖게 된다.
SK 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말을 타지 않는 대신 아내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딸과 함께 승마를 자주 접하고 있다. 노 관장은 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청와대 재직 시절부터 승마에 입문해 지금은 중학교 3학년인 막내딸과 나란히 승마장을 찾곤 한다.
재벌가는 아니지만 문선명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총재의 딸 은진 씨는 국가대표로 92바르셀로나와 96애틀란타 올림픽에서 장애물 부문에 출전했다.
이밖에 중견기업의 오너와 가족들이 점차 승마를 즐기는 등 승마는 이전에 비해 대중화된 골프의 뒤를 이어 한국 사회의 귀족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물론 일반인들이 승마를 즐기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KRA(이전 마사회) 홈페이지(www.kra.co.kr)에 들어가 승마강습을 신청하거나 전화(1566-3333)로 가까운 승마장을 물어보면 1회 4만 원 정도로 승마를 즐길 수 있다.
변현명 스포츠 라이터 ddazz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