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축구의‘레전드’ 황선홍이 더 늦기 전에 공부를 하겠다며 전남 수석코치직을 박차고 축구유학을 결심했다. 그는 외모만큼 생각도 근사한 사나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팬들은 황선홍을 향해 ‘레전드’란 호칭을 마다하지 않는데 정작 황선홍 자신은 ‘실패한 축구 인생’이라고 비하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94년 미국월드컵 볼리비아전에서 벌어진 ‘똥볼’의 굴레가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대표팀에만 들어가면 골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부담에 남모를 고통을 느낄 만큼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현역에서 은퇴, 전남의 2군 코치로 명함을 달고 곧장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황선홍은 이후 1군 코치와 수석 코치를 거치며 전남의 허정무 감독과 호흡을 맞춰왔었다. 지난해 FA컵서 전남이 우승을 차지해 지도자로서의 감동을 맛본 그가 지난 연말 수석코치 자리를 내놓고 축구 유학을 떠나겠다는 발표를 했다. 요즘 축구계에서 코치 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황선홍은 스스로 더 늦기 전에 공부를 하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이다. 언제 봐도 (외모보다) 생각이 근사하다는 기운을 마구 뿌려대는 황선홍을 만났다.
왜 그만뒀냐구요?
“모든 건 때가 있는 거잖아요.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뭔가가. 그래서 결정했어요. 이미 작년 7~8월쯤 결심을 굳혔는데 구단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겠더라구요. 마침 전남이 FA컵에서 우승을 하고 팀도 많이 자리가 잡힌 것 같아 어렵게 제 입장을 밝힐 수 있었어요.”
독일월드컵 때 보고 처음 만난 자리가 하필이면 코치를 그만둔 ‘백수’의 신분이었다. 그런데 선입견인지 몰라도 한결 편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지난해 4월쯤 전남 광양에서 인터뷰를 위해 마주했던 수석코치 황선홍은 바쁘고 경황이 없었다. 이미 2군과 1군에서 코치 수업을 한 뒤였는데도 수석코치가 주는 무게감이 부담으로 자리한 듯했다.
코치 자리를 내놓고 축구 유학을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황선홍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의 내용이 ‘축하한다’였다. 그 얘기를 꺼냈더니 미소를 지으며 “나 돌아올 자리나 만들어 놓고 축하해줘야지”라며 우스갯소리로 반응한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축구 공부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는 그는 선수 생활할 때부터 수입의 일정 부분을 유학 비용으로 떼어놨을 만큼 유럽 축구를 현장에서 보고 느끼고 배워와야 한다는 사명감이 남달랐다.
코치로서의 삶
“지도자는 참 흥미로운 직업이에요. 재밌게 했어요. 완성되지 않은 선수들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기분은 해봐야만 알겠더라구요. 그런데 경험이 없다 보니까 너무 쫓겨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연륜이 좀 더 있었다면 여유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그렇게 못했던 거죠. 전 뭔가를 결정하거나 색깔을 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에요. 그건 모두 감독님 몫이고 그저 전 선수들의 고충을 풀어주고 선수들이 편안하고 신명나게 운동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했어요. 선수들이 힘들었을 거예요. 제가 싫은 소리도 많이 하고 그랬거든요.”
그 속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팀을 나와 보니까 조금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잔뜩 묻어난다고 한다. ‘가르치는 게’ 아닌 ‘보살피는’ 자리는 분명 역할의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황선홍은 그 부분을 답답해하기보단 당연시했고 ‘오버’하지 않는 선에서 감독에게 선수의 목소리를 전달하려고 애를 썼다.
현실과 이상의 줄타기
코치직을 그만두고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주변 사람들이 격려보다는 걱정을 더 많이 해줬다고 한다. 요즘처럼 코치 자리 구하기가 어려울 때 잘린 것도 아닌 스스로 ‘밥그릇’을 차고 나온 걸 두고 ‘용기’라고 표현한 지인도 있었다.
“뭐 멋있게 보이려고 그런 건 아니에요(웃음). 축구팬들이 홍명보, 황선홍한테는 뭔가 특별한 걸 기대하시는 것 같아요. 솔직히 은근히 신경쓰이고 부담스러운 거 아세요? 뭐 특별할 것도 없는 데 말이죠. 명보는 지금 대표팀에서 잘하고 있지만 전 항상 너무 빨리 현장에 투입됐다는 고민을 안고 있었어요. 이전 영국에 2년 예정으로 가족들과 함께 유학을 떠났다가 구단의 부름에 어쩌지 못하고 그냥 돌아온 게 계속 아쉬움으로 남았거든요. 저라고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없겠어요? 공부하고 왔는데 막상 받아 주는 팀이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당연히 있죠. 그래도 안주하기보단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황선홍에게 대표팀 감독의 꿈은 험난한 지도자 생활을 이어나가게 해줄 버팀목이다. 2002년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과 포옹하는 장면. | ||
황선홍은 독일월드컵 동안 해설위원으로 독일 전역을 누볐다. 어떻게 보면 해설보다는 흥미진진한 세계 축구의 빅 게임을 현장에서 볼 수 있다는 매력이 그를 더욱 흥분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이 16강 진출에 실패하고 일찌감치 선수단이 철수한 후론 해설을 해도 신바람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독일월드컵은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한국팀만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했거든요. 경기다운 경기를 해보지 못했고 고생한 만큼 값진 뭔가를 얻지 못해 더더욱 속이 상했죠. 솔직히 실망스럽기까지 했어요. 그러나 지금의 대표팀은 뭔가를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핌 베어벡 감독이 뭘 추구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어떤 걸 보여주려 하는지 조금은 알겠더라구요.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이 많거든요. 질적으론 분명 이전보단 나아졌는데 그걸 얼마나 뽑아내는지가 베어벡 감독의 딜레마일 겁니다. 여유있게 기다려줬으면 좋겠어요. 대표팀 차출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너무 몰아세우는 건 아니라고 봐요.”
황선홍과 홍명보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진행을 하다 보니 지난호 ‘리얼토크’의 주인공이 홍명보 대표팀 코치였다. 한국 축구의 H-H라인을 형성했던 절친한 친구이자 ‘영원한 라이벌’을 잇달아 인터뷰한 셈이다. 황선홍은 이전에도 그랬지만 자신과 홍명보 코치와 비교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특히 라이벌 운운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홍명보 자선 축구 대회에 출전을 했었어요. 해마다 하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워낙 오랫동안 그라운드를 뛰어 보지 않은 상태에서 젊은 선수들과 뛰려고 하니까 많이 힘들더라구요.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어떤 분은 제 이름을 딴 행사를 기획해 보라는 거예요. 명보처럼 말이죠. 그러나 전 그러고 싶지 않아요. 명보가 지금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 해나갈 텐데 도와주면 되는 거지 뭐 하러 제 이름으로 다른 일을 꾸며요? 허정무 감독과 차범근 감독이 언론을 통해 묘한 라이벌로 표현되고 있는데 전 명보와 그런 이미지로 비치는 게 싫어요. 친구는 영원한 친구니까요.”
그래서 만약 홍명보 코치와 국가대표팀 감독을 놓고 맞붙게 된다면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잠시 고민하더니 이런 맛깔스런 대답을 내놓는다.
“서로에게 영광인 거죠. 지금까지 대표팀 감독 자리는 외국인 감독이 맡았잖아요. 그 자리에 우리가 이름을 내밀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죠. 그때를 위해서 지금 공부하는 거예요. 언젠가 주어질지도 모르는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하는 거죠. 어떤 상황들이 펼쳐질지 몰라요. 그러나 명보나 나나 누가 되든 서로 도와주는 관계가 될 겁니다. 우린 그럴 수밖에 없어요(웃음).”
황선홍은 대표팀 감독이 목표가 아닌 꿈이라고 표현했다. 꿈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무참히 박살날 수도 있고 근처까지 도달했다가도 그냥 내려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꿈은 앞으로의 지도자 생활에 큰 버팀목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대표팀에서 좋은 기록을 내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대표팀에만 들어가면 쫓기는 기분이었어요. 10년 넘게 골에 대한 부담을 안고 살았죠. 오히려 훌훌 털어 버렸다면 더 잘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똥볼’ 황선홍, ‘개발’ 황선홍의 오명이 절 옥죄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2002년 월드컵이 저한테는 너무나 중요한 ‘역사’입니다. 그게 없었다면 14년간 대표팀에서의 스트라이커 황선홍은 빈손이었을 테니까요.”
황선홍은 얼마 전 박지성으로부터 새해 인사 전화를 받았다며 웃었다. 그가 축구 유학을 꿈꾸고 있는 곳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인데 그 팀에 들어가 코치 수업을 받기가 힘들 것 같다며 아쉬운 기색을 나타냈다. 1월 중순부터 대한축구협회의 지도자 교육을 수료한 후 3월 중순에 영국으로 떠날 계획이라는 황선홍은 새해 소원이 아닌 인생의 소원을 이렇게 풀어냈다.
“딱 20년만 젊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나쁜 짓 안 하고 정말 축구만 열심히 할 텐데. 그렇게 하면 나도 (박)지성이처럼 맨유에서 뛸 수 있을까? 하하.”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