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 끝에 대구 수성갑에서 62.3% 득표율로 김문수 새누리당 후보를 꺾고 당선된 더민주 김부겸 당선인.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대구 시민이 새 역사를 썼다.” 13일 밤 김 당선인의 당선소감이다. 그는 “정통 야당 출신으로는 1985년 이후 31년 만에, 소선거구제 하에서 1971년 이래 45년 만에 대구에서 야당 국회의원이 탄생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김 당선인은 세 번의 도전 끝에 여권의 차기 주자군인 김문수 새누리당 후보를 꺾었다. ‘대권 후보 김부겸’의 화려한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번 총선에서 누구보다 가장 두각을 나타낸 주인공은 김 당선인이다. 총선 전부터 김 당선인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김 후보를 따돌렸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깜짝 놀랄 만한 결과가 나왔다. 김 당선인은 62.3%의 표를 얻었다. 37.7%를 얻은 김 후보와의 표차는 24.6%p였다. ‘더블 스코어’에 가까운 표차가 나왔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이번 총선에선 지역을 대표하는 야권 지도자들이 떠올랐다. 부산에선 김영춘, 대구에선 단연 김부겸이었다”며 “대권으로 가는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김부겸의 출신 성분이다. 김부겸은 새누리당에서 넘어왔기 때문에 정통 야당 출신이 아니다. 이 부분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더민주의 선전으로 손학규 전 상임고문(사진)의 존재가치가 다소 떨어졌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그렇다면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의 입지는 어떻게 될까. 전남 강진에서 칩거 중인 손 전 고문은 그동안 더민주와 국민의당의 러브콜을 꾸준히 받아왔지만 양당이 총선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 변수가 생겼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오히려 더민주가 선전하는 바람에 손학규의 존재가치가 좀 떨어졌다. 손 전 고문의 필요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38석까지 나온 국민의당 입장에서도 절박한 영입대상은 아니다. 손 전 고문은 대권주자 대열에서 한 발짝 멀어졌다”고 진단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대권가도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여의도 입성에 성공한 ‘박원순 키즈’들은 기동민 당선인(성북을)과 더민주 비례대표 11번으로 당선된 권미혁 MBC 방송문화진흥원 이사뿐이다. 천준호 전 서울시장 비서실장(서울 강북갑)을 포함해 박 시장 최측근들은 당내 경선과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정치권 일각에선 “박 시장은 대권 후보군에서 멀어졌다. 박 시장이 자기 사람을 많이 살려내지 못했다. 대선 후보를 위한 경선에서 ‘세’ 규합부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더민주는 호남에서 무려 23석을 얻은 국민의당발 녹색바람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 8일 “호남에서 지지를 거두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정계은퇴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지만 더민주는 8석이 걸린 광주에서 국민의당에 전패했다. 전남과 전북에선 각각 1석과 2석을 얻는 데 그쳤다. 호남 민심이 문 전 대표에 대해 사실상 “정치적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호남 민심 이반에 놀란 더민주 친노 진영이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새로운 대권후보로 내세울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들리고 있다. 김종민(충남 논산·계룡·금산), 조승래(대전 유성갑), 정재호(경기고양을) 당선인 등 ‘안희정맨’들은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특히 김 당선인은 ‘불사조’로 통하는 이인제 새누리당 후보의 7선을 저지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두 사람의 표차는 불과 1052표였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이제 친노 진영이 고민을 시작할 때다. 친노계에선 오히려 김부겸을 당대표로 묶어놓고 싶다는 생각도 들 것”이라며 “오히려 친노 쪽에선 포스트 문재인으로 안희정을 고려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은 호남에서 외면 받았다. 문재인이 대권을 완주하지 못한다면 친노계가 안희정으로 갈아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