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심판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그러나 TV 중계가 보편화된 2000년대 이후 한국 프로야구는 그야말로 심판들의 수난 시대였다. 다양한 각도에서 잡힌 오심 장면이 수십 차례씩 집중적으로 리플레이 되는 데다, 언제든 인터넷을 통해 ‘오심 다시보기’도 가능했다.
열혈 야구팬들 사이에는 언제부턴가 ‘요주의 심판 리스트’까지 등장했다. 특히 2014년 전반기에는 유독 오심 논란이 속출했다. 술 취한 관중이 그라운드로 난입해 심판에게 달려드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국 KBO는 그해 후반기부터 일부 플레이에 한해 판정을 번복할 수 있는 ‘심판 합의판정’ 제도를 도입했다.
도입 전까지는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찮았다. 심판의 권위 하락과 권한 축소가 가장 큰 이유였고,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야구의 묘미를 해친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비디오를 활용한 판정 번복은 이제 세계적인 흐름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합의판정은 벌써 도입 세 시즌 째를 맞이하고 있다.
# 심판 합의판정, 어떻게 진행되나
심판 합의판정 제도는 TV 중계가 편성돼 있는 KBO리그 모든 경기를 대상으로 진행한다. 아직 한국은 야구장에 전문 비디오 판독 장비를 갖추지 못했다. 중계 리플레이 화면의 도움을 받아야 합의판정을 할 수 있다. 중계를 하고 있더라도 화면에 해당 장면이 잡히지 않았거나, 방송사 사정으로 중계가 중단돼 TV로 리플레이 장면을 틀 수 없는 상황이 되면 합의판정이 불가능하다. 이때는 오심이 나와도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판정 번복이 되지 않는다. 감독들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합의 판정은 심판실에서 진행된다. 책임자는 총 4인. 경기에 출장하는 심판팀의 팀장, 감독으로부터 합의판정 요청을 받은 심판, 대기심, KBO 경기운영위원이다. 심판팀장과 감독의 요청을 받은 심판이 동일 인물이거나 대기심이 심판팀장일 경우, 다른 심판들 가운데 가장 경력이 오래된 심판이 합의판정에 참여하게 된다.
올 시즌부터 합의판정 대상 플레이가 두 가지 더 늘었다. 스카이스포츠 방송화면 캡처.
합의판정 제도가 점차 자리를 잡으면서 점점 경기에 확대 적용되고 있는 추세다. 원래 합의판정 대상 플레이는 홈런에 대한 판정, 외야타구의 페어와 파울, 포스 또는 태그플레이에서의 아웃과 세이프, 야수(파울팁 포함)의 포구, 몸에 맞는 공까지 총 5개였다. 그러나 올 시즌부터 두 가지가 더 늘었다. 타자의 파울/헛스윙(타구가 타석에서 타자의 몸에 맞는 경우 포함)과 홈 플레이트에서의 충돌 여부가 합의판정 대상 플레이에 새로 포함됐다.
횟수도 달라졌다. 지난해까지는 최대 2회까지 신청 가능하되, 첫 번째 합의판정 신청 후 심판의 최초 판정이 번복되지 않으면 두 번째 기회를 박탈당했다. 이 때문에 감독들이 경기 초반이거나 긴가민가한 상황에서는 합의판정 기회 사용을 주저하곤 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판정 번복 여부와 관계없이 2번의 기회를 모두 쓸 수 있게 됐다.
# 알고 보면 복잡한 합의판정의 룰
얼핏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그 안에 복잡한 룰들도 숨어 있다. 현장의 감독과 코칭스태프도 늘 헷갈리는 부분들이다. 일단 네이버후드 플레이(수비수가 2루에서 더블 플레이를 시도할 때 주자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베이스를 터치하지 못하고 송구하더라도 심판이 1루 주자의 아웃을 인정하는 것)의 아웃 판정에 대해 주자의 소속팀(공격하는 구단)은 심판 합의판정을 신청할 수 없다. 그러나 수비하는 구단의 요청은 합의판정 대상이다. 공격 구단의 요청은 2루 송구가 악송구가 될 때만 해당된다.
또 하나의 상황에서 두 가지 이상의 플레이에 대해 논란이 발생하면, 감독은 두 번의 기회를 모두 쓸지 고민해야 한다. 두 개의 플레이에 대한 판정은 동시에 이뤄지지만, 감독은 두 번의 기회를 별개로 사용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는 이렇다. 1사 1루 상황에서 타자가 2루수 땅볼을 쳤을 때, 심판이 1루 주자가 2루에서 아웃되고 타자 주자도 1루에서 아웃됐다고 판정했을 경우다. 이때 공격팀 감독은 2루 아웃과 1루 아웃에 대해 동시에 합의판정을 요청할 수 있지만, 각각의 아웃에 대해 2번의 합의판정 쓴 것이 돼 남은 경기에서는 합의판정 기회를 쓸 수 없다.
SBS 스포츠 방송 화면 캡처.
또 다른 경우도 있다. 하나의 상황을 두고 두 가지 이상의 플레이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을 때, 양 팀 감독이 동시에 합의판정을 요청할 수 있다. 이때는 먼저 요청한 구단에 관련한 판정을 첫 번째로 한다. 만약 A팀이 먼저 요청한 판정 결과가 B팀의 합의판정 요청에도 영향을 미치는 결과라면, 심판팀장은 B팀의 합의판정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 B팀의 합의판정 기회도 그대로 유지된다. 하지만 최초의 판정 번복 때문에 B팀이 불리한 영향을 받았다면, B 감독은 심판팀장에게 같은 플레이 안에서 합의판정이 가능한 다른 판정에 대해 다시 합의판정 요청을 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합의판정으로 인해 판정이 번복되면, 감독이 그 판정에 영향을 받아 전략적으로 내렸던 결정을 바꾸거나 무효화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특정 플레이 직후에 A팀 감독이 투수교체 사인을 냈는데, B팀 감독이 합의 판정을 요청해 결과가 번복되면 A 감독은 그 직전에 이뤄졌던 투수 교체를 무효화할 수 있다.
# 합의판정 신청은 감독의 권한
합의판정은 각 구단 감독만 신청할 수 있다. 감독이 부상, 질병, 퇴장 등 합당한 이유로 감독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된 경우에는 사전에 총재에게 감독 역할을 대행하겠다고 통보한 코치가 합의판정을 신청하게 된다. 만약 감독이 있는데도 코치가 합의판정을 신청한다면, 심판은 합의판정을 거부해야 한다.
감독들은 도입 초기부터 심판 합의판정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숙지해야 할 규칙들도 많아서다. 특히 심판판정 이후 무조건 30초 이내에 합의판정을 신청해야 하는 부분은 도입 초기에 많은 감독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실패를 줄이기 위해 TV 리플레이 화면을 한번 확인하고 합의판정을 신청하려 했는데, 30초는 너무 짧은 시간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가 거듭될수록 감독들도 중계 리플레이 화면을 찾기보다는 그라운드의 해당 선수 또는 코치의 시그널을 보고 즉각적으로 심판에게 합의판정을 요청하는 쪽을 선택했다. 감독이 덕아웃 주위를 서성거리며 시간을 끄는 메이저리그보다 한국식 합의판정이 오히려 박진감 넘친다는 평가도 나왔다.
여기서도 주의할 부분이 있다. 경기가 종료되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는 최초 판정 후 30초가 아닌 10초 안에 필드 안으로 나와 신청해야 한다. 이 때 양 팀 선수들은 무조건 더그아웃에 남아 판정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또 이닝이 종료되는 세 번째 아웃카운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10초 안에 신청이 끝나야 한다. 만약 이닝이 바뀌면서 투수교체를 해야 하는 경우라면, 투수교체 사인을 내기 전에 합의판정 신청을 먼저 하는 게 순서다. 새로 들어올 불펜투수가 외야 워닝트랙을 밟거나 내야 파울라인을 넘기 전에 신청이 끝나야 한다.
이닝이 종료되는 세 번째 아웃카운트나 경기가 종료되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는 최초 판정 후 10초 안에 합의판정을 신청해야 한다. 스카이 스포츠 방송 화면 캡처.
시행착오가 많았던 초기에는 이 10초룰을 알지 못해 여유를 부리다 신청 기회를 놓친 감독도 나왔다. 30초도 불만이 많았으니, 10초에 대해서는 당연히 “너무 짧다”는 원성이 더 자자했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아예 이닝 도중에 합의판정을 요청할 때도 10초로 통일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어차피 리플레이를 다시 확인하기에는 10초도, 30초도 다 부족하니, 차라리 경기 스피드업을 위해 10초로 통일하자는 얘기다.
# 합의판정 첫 사례와 극적인 사례
역사적인 첫 합의판정 사례는 시행 사흘 째였던 2014년 7월 24일 대전 한화-NC전에서 나왔다. 7-7로 맞선 NC의 4회초 공격 2사 2루서 나성범이 외야 우측 폴 근처에 맞고 떨어지는 큼지막한 타구를 날렸다. 1루심이 홈런이라는 사인을 보내자 한화 김응룡 감독이 합의판정을 요청했다. 원현식 1루심과 윤상원 주심, 대기심이었던 문승훈 심판팀장, 김재박 경기운영위원까지 네 명이 심판실에 모여 TV 화면을 확인했다. 나성범의 타구는 폴이 아니라 폴을 지탱하는 줄에 맞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홈런이 아닌 파울로 바로잡았다.
사실 홈런과 파울 여부를 가리는 판정은 이미 2009년부터 비디오판독이 가능한 사항이라 새롭지 않았다. 횟수 제한도 없이 언제든 요청할 수 있다. 따라서 새로 도입된 규정에 따라 합의판정이 이뤄진 실질적 첫 판정 사례는 같은 날 광주 KIA-LG전에서 나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2-2로 맞선 6회초 2사 1루서 LG 1루주자 브래드 스나이더가 2루 도루를 시도하다가 아웃되자 양상문 LG 감독이 그라운드로 걸어 나와 합의판정을 요청한 사례다. 다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역대 합의판정 가운데 가장 화제를 모았던 사례는 무엇일까. 2014년 8월 13일 잠실 LG-SK전에서 SK 이만수 감독이 신청했던 ‘한 타석 2 합의판정’ 케이스다. 이 감독은 1-3으로 뒤진 4회초 2사 1루 임훈 타석 때 1루 주자 나주환이 2루 도루를 시도하다 아웃 판정이 나자 득달같이 달려 나왔다. 2사 후라 나주환이 세이프가 되더라도 득점을 장담할 수 없었지만, 과감하게 승부수를 띄웠다. 세이프를 확신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판정 번복. 이닝이 종료되는 줄 알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던 LG 선수들이 다시 그라운드로 나왔다.
이번엔 다시 마운드에 선 LG 투수 류제국이 임훈에게 몸쪽 공을 던졌다. 임훈은 공이 다리에 스쳤으니 몸에 맞는 볼이라고 심판에게 항의했다. 주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이만수 감독이 다시 합의판정을 신청했다.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두 번의 합의판정 기회를 모두 쓴 것이다. 리플레이 화면 확인 결과 류제국의 공은 임훈의 오른 다리 쪽 유니폼을 확실하게 스쳤다. 사구가 인정됐다. 그렇게 2사 1·2루가 됐다. SK는 바로 이 이닝에서 정상호의 좌전 적시타와 한동민의 우전 적시타가 나오면서 4-3으로 역전했다. 그리고 5회 들어 류제국이 무너지면서 결국 승리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ML 비디오 판독 도입 배경? 역사적 ‘퍼펙트게임’ 오심으로 날린 후… 메이저리그는 2014년부터 ‘챌린지’라는 이름의 비디오 판독 제도를 도입했다. 심판의 판정을 절대적인 권위로 받아들이던 야구계에 일대 변화가 생긴 것이다. 가장 큰 계기가 된 사건은 2010년 6월 3일에 벌어졌다. 디르토이트 선발투수 아만도 갈라라가는 그날 클리블랜드를 상대로 9회 투아웃까지 단 한 명의 주자도 출루시키지 않았다. 역사적인 퍼펙트게임이 눈앞이었다. 27번째 타자였던 제이슨 도날드 역시 평범한 1루수 땅볼. 갈라라가는 얼른 1루로 달려가 베이스 커버를 했다. 도날드의 발보다 먼저 갈라라가의 글러브에 공이 도착했다. 모두가 환호하려던 그 순간, 1루심 짐 조이스가 갑자기 세이프를 선언했다. 육안으로도, 리플레이 화면으로도 모두 확연한 아웃. 그러나 조이스 심판의 양 팔은 옆으로 벌어졌다. 조이스 심판 역시 곧바로 실수를 깨달았지만 판정은 번복될 수 없었다. 팬들과 언론이 모두 들끓었고, 조이스 심판은 눈물의 사죄 기자회견까지 했다. 갈라라가는 넓은 아량으로 그 사과를 받아 들였다. 그러나 변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한 투수의 퍼펙트게임은 그렇게 허공으로 날아갔다. SPOTV 방송 화면 캡처. 이후 비디오 판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심판의 권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정확한 판정이 우선돼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메이저리그는 독자적인 비디오 판독 시스템을 구축하고, 챌린지 제도를 신설했다. 100년 넘은 메이저리그 역사와 전통에 새 장이 열린 순간이었다. 오심 논란으로 골머리를 앓던 한국도 메이저리그 챌린지 제도 도입 반 년 만에 재빨리 뒤를 따랐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TV 중계화면에 의존한 ‘심판합의판정’의 형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한국형 비디오 판독’이다. 메이저리그는 훨씬 체계적이다. 외부 비디오판독센터에서 전문 판독관이 자체 화면을 보고 최종 판정을 해 현장의 심판에게 알려준다. 경기 중계가 없어도 비디오 판독이 가능하다. TV 중계 화면에 의존하는 한계는 명확하다. 메이저리그는 14가지 항목에 비디오판독을 시행하지만, 한국은 6개로 한정됐다. 고정돼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TV 중계용 카메라로는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서다. 방송사들 역시 부담이 된다. 장면을 제대로 잡지 못하거나 화면이 제때 나오지 않을 때는 그 비난이 고스란히 방송사의 몫으로 돌아간다. 한번은 이닝이 종료될 때 심판합의판정 신청이 들어왔는데, 방송사가 그 장면을 캐치하지 못하고 중간 광고를 틀어 버리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심판들은 광고 시간이 다 끝난 뒤에야 합의판정을 시작했고, 경기 시간도 그만큼 지연됐다. KBO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 방송사에 계속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니, 중계권 협상에서도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 때문에 KBO리그도 장기적으로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올해 후반기, 늦어도 내년 시즌부터는 가칭 ‘KBO리그 심판합의판정 판독센터’를 가동하는 게 목표다. 일단 각 구장에 고정된 자체 카메라부터 설치하는 게 우선이다. 상하좌우를 모두 잡아 최대한 사각지대를 줄여야 해서다. 장비 설치를 마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전문 인력을 수급하고 판독관들을 교육시키는 준비 과정도 필요하다. 메이저리그는 2013년에 1년간 시뮬레이션 기간을 거친 뒤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챌린지를 시작했다. KBO도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신중한 자세로 접근하겠다는 계획이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