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를 나서고 있는 김무성 전 대표.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일단 김 전 대표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향후 당 정치지형의 변화나 전개 과정에 일절 개입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당장 원유철 원내대표가 이끌 당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에서부터조차 말을 삼갈 것이란 얘기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김 전 대표 계열이나 김무성 사람들 중 일부가 비대위 인선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면 모두가 ‘김무성의 생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총선을 총지휘한 책임자 중 한 명으로서 분란의 소지를 야기해선 안 되며 당분간 그 역시 거리를 둘 것”이라고 말했다. ‘패장의 자숙’이란 이런 것이란 걸 김 대표 스스로 보여줄 것이란 전언이다.
김 대표 주변부에서는 오히려 지금이 대권주자로서 학습에 나설 시기라고 조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스스로 만든 ‘근현대사역사교실’ ‘통일경제교실’ ‘퓨처라이프모임’을 통해 19대 국회에서 역사와 통일, 복지를 학습했다면 나아가 외교와 국방, 경제까지 디테일하게 ‘대선 열공’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는 것이다.
밖에선 봤을 땐 자숙과 반성의 시간을 갖는 것이지만 속에선 국가정책을 공부하며 내공을 다지는 시간으로 지금이 적기라는 말들이 있다. 당장 그 말고는 대권 주자군에 눈에 띄는 인물이 없다는 것도 한몫한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 안대희 전 대법관 등 친박계가 밀거나 스스로 큰 대권주자 대부분이 나가떨어진 것도 김 전 대표로선 참 다행한 일이다. 다음은 정가의 한 소식통 분석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국민에게 각인되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마치 그것이 필요충분조건인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DJ가 감옥에서 보낸 시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바보 같은 ‘도전의 시간’, 박근혜 대통령의 17년간 칩거를 통해 보면 대선주자로 서기 위해선 내공을 쌓는 시간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가뜩이나 김 전 대표를 향해선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이미지가 크기 때문에 그런 시간은 손학규·안철수·문재인 등 야권주자보다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적잖다.
하지만 선거를 공학적으로 읽는 다수는 ‘조직 정비’를 김 전 대표에게 주문할 것이라 예측한다. YS가 그랬듯 산악회나 청년회 등을 통해 전국을 촘촘한 ‘김무성 단일망’으로 엮어야 한다는 조언이 곧 들어갈 것이란 말이 들린다. 이번 총선 참패로 인해 전국 253개 지역구 중 절반 이상에서 원외당협위원장이 생긴다는 점이 그런 주문의 근거로 읽힌다.
김 전 대표 역시 ‘조직주의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정가 소식에 밝은 한 인사는 “300석 중 적게는 122명, 무소속이 들어오면 129명이지만 절반이 채 안 된다. 그리고 그 중 다수가 친박계”라며 “원외 당원협의회 관리만 잘해도 친박계보다 훨씬 많은 수의 조직을 정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경기 등 더민주에게 뺏긴 절대 다수의 수도권 당협과 충청권, 호남권, 영남권, 제주 등의 낙선자를 위로하면서 관리에 들어갈 것이란 관측이다. 19대 총선에서 낙천하고 그 낙천자들과 미국을 횡단하며 쌓은 우정이 힘이 됐듯 김 전 대표의 낙선·낙천자 위로를 통해 힘을 쌓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 전 대표의 향후 시간표는 이렇다 치자. 당장 발등의 불은 친박계에 떨어졌다. 오 전 시장과 안 전 대법관 등 ‘포스트 박근혜’를 모두 잃은 친박계로선 레임덕(대통령 임기말 권력누수)을 조금이라도 막을 다수의 친박계 원내 분포를 완성했지만 대권주자 카드가 막상 손에 없다. 그래서 반기문 유엔총장 영입에 좀 더 공을 들일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향후 어떤 특사를 보내 반 총장과 접촉하느냐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수면 위아래 전방위로 ‘뉴욕행’이 이뤄질 것이란 얘기다. 현재 반 총장은 오는 6월 서울에서 열리는 유엔 주최 NGO 회의에 참석할 계획이어서 한 달 뒤면 어느 정도 그의 생각이 국민에게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반 총장 영입과 별개로 여권 내에서는 소장파 신진그룹의 부상과 양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8대 국회에서 목소리를 냈던 ‘남·원·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의 부상에서부터 ‘따뜻한 보수’ ‘합리적 보수’를 내세운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대권 합류까지 이뤄져야만 차기 대권국면에서 여권이 흥행카드를 쥘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병국 의원을 향해선 5선으로서 전당대회 출마로 당권을 쥐고 남경필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의 대권 가도를 도울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당 일각과 보수 지지층에서는 국민의당이란 제3당의 출현으로 잃은 지지를 재흡수하기 위해선 ‘사회적 경제’나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 기조를 내세웠던 유 전 원내대표의 도전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장은 당권이다. 이번 새누리당 대표는 임기가 2년으로 내년 12월에 치러질 19대 대선을 총지휘하게 된다. 당헌·당규상 당 대표가 대권주자로 나설 수는 없기 때문에 ‘킹 메이커’가 되는 셈이다. 새누리당에선 친박계 주류는 자숙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친박 색채가 옅은 이주영 의원이 적합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친박계와 비박계 간의 난타전이 계속될 경우엔 국민이 완전히 등 돌릴 수 있기 때문에 야당과 소통이 되는 온건한 관리형이 필요하다는 논리에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이번 총선에서 퇴임 이후까지를 구상했기 때문에 친박이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당권에 도전할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렇게 되면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유기준 전 해양수산부 장관, 원유철 원내대표의 전당대회 출마도 실현가능하다. 일각에선 호남의 지역주의를 깬 ‘박근혜의 입’ 이정현 의원이 당권주자는 아니더라도 원내대표로서 백업을 해준다면 야당과의 소통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