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앞에서 명함이 바닥에 던져졌다. 수많은 의원 후보들의 당선되고 싶은 갈망 속에는 낚시가 들어있다. 물 저쪽에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이 언제 아가미를 꿰어 끌고 갈지 모른다. 자원봉사자들이 뛰지만 공짜는 없다. 밥도 먹이고 수고비도 줘야 한다. 여기저기서 손을 벌린다.
결국 정치는 돈이다. 선거사범을 지휘하는 한 검사장이 내게 “국회의원들을 유권자뿐 아니라 검찰도 언제든지 바꿀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했다. 정치자금법에서 자유로운 정치인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자원봉사자에게 밥을 먹여도 노인정에 사과를 한 박스 가져다주어도, 권력이 찍으면 당선된 국회의원도 언제든지 끌어내릴 수 있다. 문제는 ‘공정하게 찍느냐’ 아니면 ‘편파적이냐’에 따라 정의는 크게 흔들린다.
국회의원 입후보를 했던 친구가 찍혔다. 선거 때 후배가 남모르게 후원해 준 작은 돈이 파헤쳐졌다. 선거 이틀 전에 압수수색이 이루어졌다. 저질의 신문과 방송이 한목소리로 혐의를 기정사실같이 보도했다. 그의 경쟁후보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윗분에게 낙점을 받은 사람이 따로 있었는데 그 친구 쓸데없이 너무 버텼어요.’
권력과 언론이 합치면 미운털 박힌 정치인을 죽이는 것은 너무 쉽다. 당하는 사람은 왜 나만 찍느냐고 항변도 할 수 없다. 그건 권력의 선택사항이다. 새벽 한 시 냉기가 도는 검사실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싶었던 친구와 구속영장의 발부 여부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속옷을 든든하게 입었나?”
내가 물었다. 봄밤의 구치소는 아직 냉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지갑에 돈은 얼마나 있어?”
감옥에서도 돈이 있어야 빵이나 마가린을 사먹을 수 있다.
피가 마르는 순간이다. 정치자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재벌 아니면 거의 없다. 돈을 정치인에게 가져다주는 건 순수하지 않을 때가 많다. “청탁을 하겠다”는 미필적 고의가 잠재한다. 부인하면 정치자금이 뇌물죄로 바뀔 수 있다. 버텼다간 바로 죽는다. 뇌물의 액수를 높이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중형이 선고될 수도 있다. 가볍게 받아야 징역 5년이다. 이윽고 구속영장이 떨어졌다. 얼굴에 검은 구름이 덮인 그는 수갑을 찬 채 어둠 속에서 구치소로 끌고 가는 차에 올랐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불나비같이 정치로 몰려든다. 권력의 핵심에 있는 정치기획자들이 수많은 경주마를 기르고 선거판을 조정하는 것 같다. 그들의 뜻을 무시하고 함부로 덤비는 유력자를 노골적으로 손대기도 한다. 왕조시대에는 자객을 시켜 정적을 암살했다. 현대에서의 정치적 암살은 더 정교하다. 헛소문을 언론에 띄워 진짜같이 만들고 가까운 사람들을 털어 그들이 가져다 준 돈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걸어버린다. 필요에 따라 음향장치의 볼륨같이 금액을 높이고 낮춘다.
그건 법치로 위장된 비열한 폭력이고 기만이다. 의회정치의 대표는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정되면 안 된다.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