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무카스 | ||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으니 너무 편하다. 내 얼굴을 봐라. 다들 아주 건강이 좋아졌다고들 한다. 외국도 마음대로 다니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마음껏 만난다. 사면복권도 안됐고 또 직함도 없으니 공식 활동은 할 수 없다. 또 아직 할 생각도 없다. 그저 개인적으로 김운용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조언 정도는 얼마든지 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여의도의 한 아파트에 마련된 개인 사무실에서 만난 김 총재는 현재 자신의 모습을 ‘자유인’으로 표현했다. 직함이 없어 공식적인 활동도 없지만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하고픈 일을 한다는 것이다.
사실 김 총재와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올해 한국 스포츠 외교가 2014평창동계올림픽, 2014인천아시안게임, 2011세계육상선수권 등 3개 메이저대회 유치에 도전하고 있는 시점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김 총재에 대한 관심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사를 비롯, 국내 주요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지만 김 총재는 모두 거절했다. 2003년 2010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실패 후 자신에게 쏟아진 집중 비난보도에서 아직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때문이다.
<일요신문>과의 만남도 처음에는 고사했다. 하지만 지난 3월 1일 이규석 경원대 교수의 은퇴식에 참가하기 위해 3년여 만에 국기원을 공식 방문했고, 이 자리에서 많은 태권도인을 만나며 모처럼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 서현석 비서관은 “(김)총재님은 마치 소풍을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았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국기원을 그토록 오랜만에 방문하니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마침 현장 분위기도 좋아 아주 기분이 좋으셨다”고 설명했다. 김 총재는 국기원 방문을 마치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다.
김 총재는 국내외 지인들을 활발히 만나고 결혼식 주례 및 각종 강연 등으로 ‘의외로’ 바쁘다고 입을 열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건강은 아주 좋고, 한국 체육사의 산증인답게 체육계 인사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건강과 근황에 이어 화제가 자연스럽게 온 국민의 관심사인 2014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로 넘어갔다. 김 총재는 2003년 프라하 IOC총회 후 ‘부위원장 당선을 위해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방해했다’는 극심한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그래서 너무도 민감한 문제였다. 하지만 답변은 아주 명쾌했다.
“2005년 자진 사퇴했지만 아직도, 아니 대부분의 IOC위원들과는 친분이 두텁다. 김진선 강원도지사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또 비록 비공식적이지만 최선을 다해 돕고 있다. 변수는 있겠지만 평창이 이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김 총재는 지난 2월 비밀리에 장기간 외국을 다녀왔다. 유럽과 아시아 등 세계 각국의 지인들을 ‘개인적으로’ 만나기 위해서였다. “평창 유치활동이었느냐?”는 질문에 김 총재는 “자세한 것은 밝힐 수 없다. 공식적으로는 그저 개인적인 외유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아직도 김운용계 IOC위원이 적어도 20명에 달하고, 또 그들이 한국의 김운용 사법처리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한국 사람이고, 평창 유치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평창에 큰 도움이 되면 됐지 역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 지난 2003년 7월 평창이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하자 ‘김운용 방해 의혹’이 제기됐고 여의도 한강 둔치에서‘김운용 화형식’까지 열렸다. 연합뉴스, (아래) 2004년 1월 김 전 위원은 공직을 사퇴했다. | ||
김 총재는 이 대목에서 말꼬리를 흐렸다. 하고픈 말이 많지만 아직도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말을 아끼는 눈치였다. 4년이 흘렀고, 김 총재가 예전에 자신의 인형을 화형시킨 사람들의 맨 앞에 서서 다시 평창을 위해 뛰고 있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이 됐다. “역사와 세월이 진실을 말해줄 것”이라는 말이 덧붙여졌다.
이야기는 김운용 퇴장 후 한국 스포츠 외교가 크게 위축됐고, 이는 후계자를 양성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주제로 넘어갔다. 민감한 내용이었다.
김 총재는 “18년 동안 IOC에 있으면서 전 세계에서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은 올림픽 훈장을 받았다. 정작 나는 못 받았는데 말이다. 또 다수의 IOC 전문위원, TV위원을 배출했고, 실명을 밝히기는 곤란하지만 IOC의 주요 보직에 많은 한국 사람이 진출했다. 전이경 선수를 IOC 선수위원 선거에 출마시켰다가 낙선하자 선수분과위원으로 집어넣었다. 사람은 키운다고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기회를 살린 사람이 없었던 것”이라고 상세히 설명했다.
이와 함께 자신이 IOC 내에서 주요 보직인 라디오TV분과위원장을 맡으면서 한국 방송사들이 올림픽중계권을 싼 가격에 따내도록 만들어놨다고 강조했다. 토리노동계올림픽이 90만 달러,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1700만 달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올림픽 중계권료는 2006년 여름 방송 3사의 코리아풀이 깨지면서 가격이 두 배 이상 치솟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재는 IOC에서의 공식적인 활동 재개에 대해서는 짧지만 의미있는 대답으로 대신했다. “국내에서 아직 사면복권도 안 된 상태이기 때문에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하지만 IOC위원직을 사퇴하거나 정지당한 후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다시 활동한 전례가 다수 있다”고 밝혔다. 김 총재는 UN인권위원회까지 탄원하는 등 마지막 순간까지 놓으려고 하지 않았던 IOC위원직을 2005년 5월 자진 사퇴 형식으로 내놓았다. 그리고 한 달 뒤 가석방됐고 이 과정에서 로게 IOC위원장와 청와대의 빅딜설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 총재는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태권도에 대해서는 큰 애정을 밝혔다. 최근 조정원 총재의 WTF(세계태권도연맹)가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김운용 복귀설이 흘러나왔다. 김 총재는 이에 대해 “처음 듣는 소리다. 세계연맹과 국기원의 창설자로 어떤 식으로든 태권도를 위해 일을 할 생각은 있지만 당장 조언자를 넘어 태권도계에서 공식 직함을 갖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특히 태권도의 올림픽 종목 유지, ITF(국제태권도연맹)와의 통합에 대해서는 의미있는 내용을 소개했다. 올림픽 종목과 관련해서는 IOC내에서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자크 로게 IOC위원장이 일본과 워낙 가깝고, 가라데의 올림픽 진입 노력이 대단하다며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태권도의 올림픽 종목 채택은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IOC위원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절대로 낙관적인 상황이 아닌 만큼 국익을 위해서라도 WTF와 국내 태권도인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또 ITF와의 통합에 대해서는 “절대로 통합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현실적으로 통합 논의가 이뤄지고 있기에 만약 이를 계속 추진한다면 정치권의 남북 연방제 통일안과 같은 식의 통합이 가장 현실적”이라며 구체적인 해법까지 제안했다. 일단 형식적으로 대통합을 이룬 뒤 내용적으로는 각자 발전해가면서 차차 장기적으로 실질적인 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태권도의 올림픽 메달 수(현재 8개)를 늘려 ITF 몫을 주는 안에 대해서는 “현실적이지 못하다. IOC가 올림픽의 비대화를 막기 위해 총 메달수를 한정해 놓고 있는 만큼 힘들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태권도는 올림픽종목이 될 때 원래 남녀 2체급씩 총 4개의 금메달로 설정됐으나 집행위원회와 총회를 거치는 과정에서 하나씩 살짝살짝 올려 8개로 늘렸다는 비화도 소개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남북한 동시 입장을 이끌어낸 바 있는 김 총재는 2008년 남북단일팀 협상에 대해서도 “실무적으로 난제가 많지만 로게 위원장이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이벤트를 좋아한다. 의사 출신으로 정치력이 뒤지는 것을 이런 이벤트로 만회하려고 하는 성격이다. 쉽지 않겠지만 극적으로 타결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시드니 올림픽 동시 입장 때 북측 선수단이 부족해 남측 사람을 빼서 북측에 세웠던 사실과 솔트레이크 때는 북측 선수가 없어 동시입장이 무산됐다는 일화도 덧붙였다. 북한과의 스포츠 교류에 대한 뒷담화는 무궁무진한 듯했으나 아쉽게도 장웅 IOC위원 등 북측에 지원금을 준 것이 횡령으로 걸렸다는 말이 나오면서 중단됐다. 지난 연초 사면 때도 이름만 거론되다 빠진 바 있는데 굳이 사법당국을 건드릴 정치적 발언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김운용 전 총재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또 대화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기사화를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했으나 인터뷰 과정에서 “그런 것까지는 쓸 필요 없고…”, “그건 다음에 상황이 되면 더 자세히 말해주겠다”는 식으로 유연한 면을 보였다.
팔순을 내다보는 김 총재는 두 시간이 넘도록 지친 기색도 없이 자신과 한국스포츠, 그리고 IOC와 태권도 등 굵직굵직한 사안에 대해 말을 이어나갔다. 외견상의 건강함은 물론 메모 하나 보지 않고도 구체적인 숫자와 날짜까지 일일이 언급할 정도로 놀라운 기억력을 드러냈다.
전직 국회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정치에 대해서만큼은 언급을 하지 않은 김 총재는 인터뷰 말미 헤어질 때가 돼서야 “올해 특별한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어찌 됐건 일단 나라가 잘 되는 게 중요하다”는 선문답으로 유일하게 정치적 발언을 했다.
2001년 IOC위원장 선거에서 2위를 기록하고, 사마란치 시절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2인자로 통했던 김운용 총재에게는 지금 비서가 단 한 명밖에 없다. 명함이 많았던 만큼 한때 두 자릿수나 되었던 비서진은 ‘보스’가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다들 떠났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서현석 비서관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총재님이 워낙 큰일을 하신 까닭에 잘한 것도 또 잘못한 것도 있겠죠. 공과는 정확히 따져야 합니다. 하지만 잘못하지 않은 것까지 왜곡해서 욕을 먹고, 잘한 것까지 폄하되면 안 되지 않습니까.”
유병철 객원기자 einer6623@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