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1년 8월 6일 이날도 베트남에서는 월남전이 한창이었다. 김문구 씨(68)는 당시 월남전 참전용사로 근무 중이었다. 그러나 김 씨는 그곳에서 적군이 아닌 아군에게 총을 맞아 부상을 입었다. 병장 이 아무개 씨(69)가 술에 취한 채 내무반에서 총을 난사한 것. 적군의 습격으로 오인한 김 씨는 몸을 피하다 다리에 총상을 입었고 벙커로 뛰어들다 허리에도 부상을 입었다. 다행히도 총상을 입은 사람은 김 씨를 포함해 2명뿐이었다. 김 씨는 베트남 현지에서 치료를 받다가 파병 4개월 만에 국군통합병원으로 후송돼 귀국했다. 이후로도 김 씨는 군 생활을 하다가 지난 1983년 중사로 전역했다.
김문구 씨는 월남전 참전 당시 입은 총상으로 여전히 걸음이 불편하다
김 씨는 이미 지난 1997년 공상을 신청했다. 그러나 증거부족을 사유로 인정받지 못했다. 당시에는 총기사고가 있었다는 사실마저 증명할 길이 없었다. 이에 김 씨는 사고부대 대대장과 소대장의 사실 확인서를 받아냈고 총상에 의한 장애판정까지 받았다. 가해자 이 씨도 만나려고 시도했다. 지난 2008년 육군중앙수사대에 수사를 요청한 김 씨는 군으로부터 “공소시효 경과에 따라 불입건 대상으로 사고자의 입건 처리가 불가하다”라며 “총기 발사자, 당시 목격자 등을 보증인으로 선정해 허리 부상에 대한 보훈 공상 심의를 신청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노력 끝에 지난 2013년 이 씨를 만났다.
김 씨는 “처음 이 씨를 찾아가자 왜 찾아왔냐며 사실 확인을 거부했다”며 “그러나 이 씨에게 책임을 물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고 회유했고 정 안되면 경찰에 정식 수사를 요청할 것이라고 협박까지 해서 겨우 사실 확인서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 씨도 지난 40년간 굉장히 괴로워하는 게 보였다”라며 “그걸 거울삼아서 지금은 성실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국방부와 육군본부에 서류 민원을 냈고 국방전우일보를 통해 호소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육군본부 측은 민원회신을 통해 “현재 육군본부에서 공상으로 인정하기에 가장 제한이 되는 부분은 귀국 후 전역까지 12년간 허리와 관련된 문제로 병원에서 진단 및 치료받은 기록이 없다는 것”이라며 “귀국 후 전역 전까지나 전역 후 1년 이내에 허리와 관련한 진료 기록을 하나라도 첨부해주면 공상이 가능하도록 최선을 다해 심의하겠다”고 전했다.
육군본부는 김 씨의 민원에 대해 진료 기록을 첨부하면 공상이 가능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김 씨의 사건이 육군본부에서 국방부로 이관되면서 김 씨가 공상의 증거로 제출한 서류 8종이 누락됐다. 국방부는 관련 자료를 육군본부로부터 인계받았다고 했으나 육군본부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전했다.
김 씨는 육군중앙수사단에 수사를 요청했다. 수사 결과 “국방부 문서 이관 1~2일 전 입증서류 17종 가운데 8종이 누락된 것을 알지 못한 채 의료체계과로부터 건네받아 국방부로 이관했다”는 내용이 나왔다. 누락된 서류는 당시 김 씨를 치료했던 의무병의 인우보증서, 가해자인 이 씨의 사실 확인서, 59후송병원 정형외과 소견서 등 핵심 자료들이었다. 김 씨는 직무유기라고 주장했지만 수사단은 “고의로 서류를 누락하는 등 직무유기한 혐의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육군중앙수사단의 수사결과 자료 중 일부가 국방부에 이관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김 씨는 총기사건 이후로 현재까지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장애검진서를 작성한 의사 역시 소견란에 “월남전 총상으로 좌측 하퇴부의 근력이 약화되어 운동에 장애가 상당히 있다”고 작성했다. 김 씨의 장애명은 ‘좌측 하지 부분 마비’다. 김 씨는 “국방부에 보상을 청구하려는 게 아니라 공상으로 인정받고 싶을 뿐”이라며 “18년간 증거를 모아서 제출해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기각당해 너무 화가 난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