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염기훈은 지난 4월 알토란 같은 시간을 보냈다. 소속팀의 전 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며 3골-1도움을 기록, 스포츠토토 한국축구대상 4월 월간 MVP 수상자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2년차 징크스’ 운운하며 불안한 시선을 던질 때 염기훈은 보란 듯이 팀의 간판 스타로 자리매김한 탓에 코칭스태프들이 보내는 신뢰는 절대적이다.
인터뷰하는 동안 ‘시골 청년’의 아우라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인간적인 매력을 쏟아낸 염기훈을 만난다.
‘맑은 눈’과 ‘전북 얼짱’
염기훈을 보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자꾸 프로필에서 읽은 ‘맑은 눈’이란 표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별명을 누가 지어줬냐고 물었더니 “형들(소속팀 선배)이 그렇게 불렀다”란 출처 확인 불명의 대답을 내놓았다. ‘전북 얼짱’이란 표현도 형들 탓으로 돌렸다. 기자가 계속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자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정정한다. “사실 ‘맑은 눈’은 제가 말한 거구요, ‘전북 얼짱’은 형들이 얘기해준 거예요.”
캐릭터 자체가 풋풋하면서도 재미있는 선수였다. 어떤 질문에도 진지하면서도 꾸밈없는 대답을 내놓는 그에게 조금씩 호기심이 생겨났다. 참으로 오랜만에 ‘선수를 통해’ 순박한 매력을 느낀 것도 기분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축구와 맺어진 인연
염기훈이 스포츠와 인연을 맺은 건 마라톤이 처음이었다. 초등학교 때 마라톤 선수로 뛰다가 근대 2종(수영, 육상)으로 전업한 후 중학교 1학년 때 축구화를 신게 됐다.
“수영을 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축구장이 떠나질 않았어요. 다른 학교 축구부를 엿보며 부러움을 한껏 키워갔죠. 부모님께 축구 시켜달라고 한 달을 울면서 빌었어요. 결국엔 아버님이 항복하시고 축구화를 사주셨는데 그날 축구화를 머리맡에 놓고 자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나요.”
어렵게 시작한 축구 생활. 그러나 염기훈은 축구 선수로 ‘거침없는 하이킥’을 펼치며 고등학교와 대학에 진학했다. 체육특기자로 입학한 대학에서의 전공은 레저스포츠학. 수업은 몇 번이나 들어갔느냐는 질문에 “교수님께 열심히 인사만 드리고 다녔다”며 멋쩍게 웃는다.
‘헤모큐’ 먹고 뛰었다
염기훈에게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고2 때를 말할 것이다. 당시 심한 빈혈로 인해 축구를 그만둘 정도의 심각한 위기를 맞았던 것.
“뛰지를 못했어요. 어지럽고 체력이 달려서 달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으니까요. 감독님이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시더라구요. 검사 결과 악성 빈혈이었습니다. 담당 의사가 빈혈약을 줬어요. 6개월간 복용해 보고 효과가 없으면 다시 찾아오라고 하면서요. 5개월 정도 먹어보니까 몸이 달라지더라구요. 이전처럼 지치거나 어지럽지가 않았어요. 약의 효능이 너무 신기해서 무슨 약인지 알아보니까 임산부들이 먹는 ‘헤모큐’였어요.”
▲ 왼쪽은 대표팀 핌 베어벡 감독에게 지시를 받는 모습. 오른쪽은 지난해 11월 AFC 챔피언스컵에서 골을 넣은 직후. 연합 | ||
교통사고로 고통의 나날
지난해 6월, 염기훈이 한창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신인왕을 향해 내달리고 있을 때 그는 동료 선수 김형범과 함께 차를 타고 나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운전자 김형범은 멀쩡했지만 염기훈만 팔뚝과 이마, 머리를 크게 다쳐 2개월가량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막막했죠. 뭔가 보여줄 만했을 때 사고가 나 정말 암담했어요. 신인왕은 고사하고 그라운드 복귀 시기가 문제였죠. 다행이라면 하체를 다치지 않았다는 거? 저보다 형범이가 더 힘들었을 거예요. 자기가 운전하다가 사고가 난 거라 심적 고통이 심했어요. 저 또한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렸죠. 그냥 허송세월 하다간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생각에 병상에 누워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열심히 했어요. 천장을 그라운드로 상상하고 머릿속에서 플레이를 펼쳤죠. 그런 연습이 실제 복귀했을 때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염기훈은 인터뷰 중간에 심하게 상처 난 오른팔을 보여준다. 보기 흉할 정도의 흉터가 생겨 성형수술의 필요성을 떠올릴 정도다. 이마에 난 상처는 올 겨울 시즌 끝나고 성형수술을 받을 예정이라며 웃는다. 머리의 흉터는 머리카락을 길러 어느 정도 커버가 됐는데 바람만 불면 ‘영구’가 된다며 농담을 곁들인다. 참으로 우여곡절의 청춘이다.
사고가 전화위복으로
“그 당시엔 암담했지만 신기하게도 사고 이후부터 일이 잘 풀렸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인대표팀에 발탁돼 파주를 가보기도 했죠. 팀이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도 했구요. 아! 아시안게임 대표팀 선수로도 뛰었다! 하여튼 염기훈의 전성시대였어요.”
염기훈은 지난 10월, 가나와의 친선 경기를 앞두고 파주국가대표트레이닝장에 첫 걸음 했을 때를 떠올렸다.
“아는 선수가 한 명도 없었어요. 누구한테 말 붙이기도 어려웠죠. 생활도, 훈련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TV로만 봤던 홍명보 코치와 설기현 선수를 봤을 때 숨 쉬기가 힘들더라구요. 그래도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서 최고의 기량을 펼치며 운동하는 그런 분위기가…. 꿈인가 생시인가 싶은 순간들이 휘리릭 지나가서는 경기 당일이 됐는데 베어벡 감독이 절 출전시키는 거예요. 그런데 더 당황했던 건 가나 선수들이었어요. 세상에나! 사람 몸이 아니더라구요. 무슨 벽돌도 아니고, 저도 몸싸움에는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부딪히면 튕겨져 나오는 건 저였어요.”
염기훈은 ‘TV에서 봤던 유명 선수’ 중 실제로 봤을 때 압권은 박지성이었다고 한다. 영국에서 펼쳐진 그리스와의 평가전에서 소속팀 경기를 마치고 뒤늦게 합류한 박지성을 직접 보곤 기절 직전이었다는 것.
“가장 닮고 싶은 선수였거든요. 정말 신기했어요. 생각보다 키가 작더라구요^^. 그런데 그런 체격에서 엄청난 에너지와 파워가 나오는 걸 보고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했죠. 달리 프리미어리그 선수가 아니대요. 움직임이나 볼 컨트롤이 예술이었어요. 너무 대단해 보여서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렵더라구요.”
압구정동 부럽긴해도…
어렸을 때부터 논산과 전주, 광주 등지에서만 생활했던 염기훈은 프로 데뷔 후 서울에 갈 때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압구정동, 청담동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대표팀에서 친해진 선수들과 시즌 끝나고 그곳으로 나들이를 갈 기회가 생겼다. 친구의 차를 얻어 타고 청담동 일대를 돌면서 염기훈은 다른 곳과 너무 다른 그곳의 럭셔리한 풍경에 잠시 정신이 아득할 정도였다고 털어 놓는다.
“마치 제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이래서 선수들이 청담동을 좋아하는구나 싶었죠. 저보다 어린 선수들이 명품 찾고 청담동에서 노는 기분을 알 것 같기도 했어요. 하지만 전 부럽긴 해도, 유혹은 느껴도, 많이 참을 수 있어요. 나중에 즐겨도 늦지 않은 거니까요. 아직 차도 없는 걸요^^.”
‘과거’ 잊지 않아요
염기훈의 부모님은 논산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다. 농사를 통해 염기훈을 뒷바라지해 온 것이다. 그러다 염기훈이 대학 1학년 때, 그리고 그의 누나가 대학 4학년이었을 때, 일생일대의 위기가 찾아온다. 두 남매의 대학 등록금과 훈련 비용을 댈 만한 능력이 안 되었던 부모님이 엄청난 고민에 휩싸였고 급기야 집안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땅을 팔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땅이 없으면 빈털터리나 마찬가지인데도 아버님은 주위의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땅 팔아서 자식들 가르치셨어요. 사실 미래가 불투명한 저를 위해 그렇게까지 하기가 쉽지 않은 거잖아요. 자식들 모르게 빚도 많이 지셨더라구요. 얼마 전에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선 ‘기훈이 너 때문에 빚 다 갚았다, 고맙다’라고 말씀하시며 우셨어요. 생전 감정 표현이란 걸 모르고 사신 분인데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대학 때 축구화가 떨어졌어도 20만 원이 넘는 축구화를 사달라고 하기가 어려워 혼자 가슴앓이하며 축구화를 꿰매 신었다는 염기훈. 지금은 구단의 용품 지원으로 축구화가 주변에 널려 있을 정도인데 염기훈은 당시의 어려움을 떠올리며 신지 않는 축구화들은 대학 후배들에게 보내준다고 한다.
축구선수라면 입버릇처럼 말하는 해외 진출에 대해서 염기훈은 아직은 K리그에 더 충실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K리그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뒤 다른 리그에 도전해도 늦지 않다는 것. “어디를 가느냐보다 가서 어떻게 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게 염기훈의 신념이다.
아직도 염기훈이란 축구 선수가 낯설게 다가온다면 당장 축구장으로 달려가 보라. 그의 플레이를 보면 핌 베어벡 대표팀 감독과 홍명보 코치가 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지 ‘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순수청년’ 염기훈의 올시즌 또 한 차례의 비상을 기대해 본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