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7일 강원도 소재 한 포병부대 병장 김 아무개 씨는 전역을 하루 앞두고 있었다. 그날 밤 생활관에서 동기 2명과 소대원 12명은 김 씨에게 소위 ‘전역빵’을 했다. 전역빵은 전역 전날이나 당일 후임병들이 전역자의 양해 하에 일시적으로 구타하는 풍습이다. 그런데 이날 전역빵의 장면을 당직사관에게 들켰다. 당직사관은 해당 내용을 포대장 배 아무개 씨에게 보고했고 배 씨는 ‘부대관리 훈령’에서 ‘병영생활 중 구타·가혹 행위 등은 어떠한 경우에도 금지한다’는 조항에 따라 ‘전역빵’ 참여자를 징계 처리하도록 본부포대장에게 지시했다. 본부포대장은 다음날인 18일 김 씨를 비롯한 전역자 3명에게 얼차려를 부여했다.
지난 2월 18일 전역자 3명은 6시간 30분 동안 얼차려를 받았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배 씨는 “얼차려를 직접 시행한 본부포대장이 완전군장 보행시간과 방법을 명확하게 부여하지 않아 육군규정을 위반하였음을 사후에 확인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병영부조리에 대한 신상필벌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고 얼차려 시작 전 안전교육을 실시했다”며 “얼차려 시행 중에도 식사시간과 휴식시간 등을 부여했으니 감정적 보복행위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김 씨와 같이 얼차려를 받은 박 아무개 씨는 다르게 주장했다. 박 씨는 “얼차려가 끝나는 시간도 정해주지 않고 간부들이 함부로 멈추게 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며 “배 씨가 오후 2시 30분께 부대에 복귀했을 때 얼차려를 멈추고 귀가하게 해줄 것을 기대했으나 아무 조치가 없었다”고 밝혔다. 박 씨는 이날 오후 9시께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했으나 다리가 너무 아프고 시간도 늦어져서 집에 못가고 찜질방에서 잤다고 전했다.
인권위 조사결과 사건 당일 김 씨 등 3명은 오전 8시 30분부터 12시까지, 다시 오후 1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총 6시간 30분 동안 얼차려를 받았다. 이들은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약 90바퀴 돌았다. 연병장 1바퀴가 약 250m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은 22.5㎞를 걸은 셈이다. 이는 육군규정 120의 ‘얼차려 시행기준’을 초과한 수치다. 병장이 받을 수 있는 보행 얼차려는 최대 4㎞다. 또한 연병장 노면은 눈이 내린 후여서 물기가 많은 상태였고 얼차려 시행 중 현장을 직접 감독한 간부는 없었다.
인권위는 해당 사건을 인권침해라고 결론 내렸다. 인권위 측은 “부대 내 구타 및 가혹행위 등을 엄단하기 위한 행위로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된다”며 “그러나 얼차려 규정을 위반하고 해당 병사들에게 신체적 및 정신적으로 감당키 어려운 피해를 준 것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전했다. 인권위는 해당 부대에 포대장 배 씨에 대해 경고조치 할 것과 유사행위의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여 시행할 것을 권고했다.
그렇다면 김 씨가 주장한 얼차려 규정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육군에서 얼차려를 부여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육군 병영생활규정 제30조에는 “법과 규정, 지침, 지시를 위반한 대상자(병사) 중 징계 또는 법적제재의 대상자를 제외한 경미한 위반자에게 얼차려를 부여할 수 있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군은 얼차려를 할 때 얼차려 규정을 지키라고 권고한다.
얼차려 규정에는 실시요령, 대상, 절차, 방법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우선 얼차려를 부여하는 자는 피교육자의 병영생활 상태와 체력수준을 고려해 얼차려 수준을 결정해야 한다. 또한 얼차려를 받는 사람이 수치심을 느끼거나 가혹행위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해야 하며 체력단련 등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얼차려를 하려면 절차도 거쳐야 한다. 우선 얼차려는 오전 8시에서 오후 8시 사이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 1회 1시간, 1일 2시간 이내로 실시해야 하며 1시간 초과 시 중간에 휴식시간을 부여해야 한다. 얼차려 승인권자는 소대장 이상 지휘자와 대대급 이상 당직사령이다. 승인권자는 집행자, 시기, 장소, 방법 등을 명시해야 한다. 집행권자는 분대장 이상 간부, 당직사관 이상 간부로 일반 병사는 권한이 없다. 얼차려는 공개된 장소에서 집행자 감독 하에 실시해야 한다. 얼차려 방법의 경우 훈련소와 야전 부대에 따라 차이가 있고 계급에 따라서도 구분된다. 계급이 올라갈수록 얼차려 강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구분 | 1~2주차 | 3~5주차 |
팔굽혀펴기 | 1회 20번 이내 계속 2회 이내 반복 |
1회 20번 이내 계속 3회 이내 반복 |
앉았다 일어서기 | 1회 20번 이내 계속 2회 이내 반복 |
1회 20번 이내 계속 3회 이내 반복 |
개인호 파고 되메우기 | 1회 20분 이내 | 1회 20분 이내 계속 2회 이내 반복(20분) |
보행 | 1회 1km 이내(단독군장) | 1회 1km 이내(단독, 완전군장) 계속 2회 이내 반복(2km) |
순환식 체력단련 | 1회 10분 이내 | 1회 10분 이내 계속 2회 이내 반복(20분) |
구분 | 일·이병의 얼차려 | 상·병장의 얼차려 |
팔굽혀펴기 | 1회 20번 이내 계속 4회 이내 반복 |
1회 20번 이내 계속 5회 이내 반복 |
앉았다 일어서기 | 1회 20번 이내 계속 4회 이내 반복 |
1회 20번 이내 계속 5회 이내 반복 |
개인호 파고 되메우기 | 1회 20분 이내 계속 2회 이내 반복(40분) |
1회 20번 이내 계속 3회 이내 반복(60분) |
보행 | 1회 1km 이내(단독, 완전군장) 계속 3회 이내 반복(3km) |
1회 1km 이내(단독, 완전군장) 계속 4회 이내 반복(4km) |
뜀걸음 | 1회 2km 이내(단독군장) | 1회 4km 이내(단독, 완전군장) |
순환식 체력단련 | 1회 10분 이내 계속 3회 이내 반복(30분) |
1회 10분 이내 계속 4회 이내 반복(40분) |
특정지역 청소 | 1일 이내 | 1일 이내 |
반성문 작성 | 1회 500자 이내 | 1회 500자 이내 계속 2회 이내 반복 |
참선 | 1회 20분 이내 | 1회 20분 이내 계속 2회 이내 반복(40분) |
그러나 이러한 얼차려 규정에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있다. 우선 규정 자체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역 중사로 근무 중인 한 아무개 씨(28)는 “규정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내용을 세세하게 다 알고 있는 간부는 드물 것”이라며 “실제로 규정을 지켜가면서 얼차려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규정을 알고 있어도 이를 교묘하게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한 씨는 “예를 들어 앉았다 일어서기는 횟수만 명시돼 있는데 투명의자 같은 특정 자세로 놔두면 횟수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이렇게 구분동작으로 힘든 자세로 오랜 시간을 버티게 하는 등 규정 내에서도 가혹행위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