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네이버 지식iN에서 시작됐다. 자료를 얻으려는 초등학생이 지식iN에 해당 내용을 질문했고 한 유저가 식용곤충 목록에 운지벌레를 슬쩍 끼워 넣었다. 같은 내용의 답변이 다른 지식iN 질문과 블로그 등에 퍼지면서 빠른 속도로 퍼졌다. 3월 28일에는 극우 온라인 사이트인 일간베스트(일베)에 해당 내용의 글이 올라갔고 일베 회원들은 빠른 속도로 운지벌레에 대한 내용을 퍼뜨렸다. 온라인에 올라온 운지벌레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운지벌레는 50~70㎜ 크기로 동물계 절지동물문 운지벌레과 속하는 고생대 삼엽충을 비슷하게 닮은 곤충이다. 운지벌레(학명: Eyesteru Unomuhyuna Ailbegasifan)는 필리핀, 인도네시아같이 열대에 비가 내리는 지역에서 주로 분포하던 곤충이었지만 최근 기후의 변화로 우리나라에서는 전라남도에 주로 분포한다고 한다. 운지벌레는 특히 두부보다 더 높은 단백질 함량을 갖고 있어 최근 주목을 받고 있으며 체내 50% 이상이 외상단백질임을 감안한다면 이를 가공하여 높은 수준의 단백질 공급원 식품으로 가공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이미 학명에서부터 특정 인물과 사이트를 추정할 수 있다. 학명에 등장하는 Unomuhyuna에서 앞의 U와 뒤의 a를 빼면 nomuhyun(노무현)이 되고 Ailbegasifan에서 앞의 A를 빼면 ilbegasifan(일베게시판)이 된다. 일베는 다문화를 반대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어 동남아 국가에 대해 부정적이다. 또한 극우적인 성향을 띠고 있어 전라도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다. 설명에 동남아 국가와 전라남도가 언급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온라인에서 떠돌고 있는 운지벌레 사진. 껍질에 일베임을 나타내는 마크 ‘ㅇㅂ’가 있다. 사진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일베 회원들은 운지벌레 외에 ‘현무당벌레’라는 또 하나의 가상곤충을 만들어 블로그 등을 통해 퍼뜨렸다. 현무당벌레에서 현무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인 무현을 거꾸로 해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일베 회원들이 온라인에 퍼뜨린 가상곤충 현무당벌레. 사진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서울지역 예선을 주관하는 박순엽 서울과학전시관 교육연구사는 “우리도 처음에는 몰랐다가 제보를 받고 알았다”며 “창의재단 측에서 이런 내용이 있다고 메일이 왔고 우리도 각 담당자들과 초등학교에 메일을 돌려 참가 학생 가운데 운지벌레를 작성한 학생이 있는지 학교 내 심사과정에서 확인해보라고 전달한 상태”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운지벌레 관련 글을 올린 사람에 대해 법적인 처벌이 가능할까. 국내에서 허위사실 유포로 처벌받는 경우는 보통 명예훼손, 사기, 허위공시, 상표권 침해, 선거법 위반 등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의도도 없었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려는 시도가 없어서 사실상 처벌이 힘들다. 이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사자명예훼손죄는 친고죄로 노 전 대통령의 친족이나 자손만 고소가 가능하고 제3자는 개입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은 일종의 해프닝으로 그쳤지만 학생들의 온라인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드러냈다. 운지벌레 자료를 낸 팀 모두가 사실 확인 없이 온라인에 떠도는 정보를 그대로 베꼈다는 것이다. 박순엽 연구사는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온라인 자료를 사실처럼 취하는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인 것 같다”며 “물론 내용에 대한 사실 확인도 해야 하지만 거기까지는 잘 생각을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도 사실을 모르면 걸러내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